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제주부씨(濟州夫氏),부을나(夫乙那),제주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7 14:26 수정일 : 2018-03-01 18:20

제주부씨의 연원

제주부씨(濟州夫氏)의 관향은 옛 탐라국(耽羅國)의 고토(故土)인 제주(濟州)이다.

시조 부을나(夫乙那)는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와 함께 제주 한라산 북녁기슭 모흥혈(毛興穴:三姓穴)에서 용출하여 탁라(乇羅)를 열었다. 이 삼신인(三神人)은 훗날 바다건너 벽랑국(碧浪國)으로 부터 오곡의 씨앗과 육축을 가지고온 삼공주를 맞아 각각 배필로 삼고 활을 쏘아 일도(濟州) 이도(大靜) 삼도(旌義)등 세 지역으로 분할, 탐라국으로 통일 될때까지 9백년동안 각각 통치해 왔다.

삼성혈(三姓穴)은 선사시대(先史時代) 이래 탁라시조(乇羅始祖)의 성탄지로 성역화되어 왔고, 유교적(儒敎的) 국시(國是)의 조선조에 와서는 조정의 각별한 배려와 역대 목사(牧使)들의 숭조치적으로 더 한층 존엄시 되어 왔던 곳으로 그 후손들이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춘추대제를 봉향하고 있으며 12월 10일에는 제주도지사가 초헌관이 되어 삼을나의 위업을 기리고 도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도민제(乾始大祭)로 향사하고 있다. 서기 1964년 사적(史蹟) 제 134호로 지정되어 정부의 보조로 1970년에 삼성전(三聖殿)을, 1971년에는 건시문(乾始門)을, 1974년에는 숭보당(崇報堂)을 중건 하였으며, 2000년 9월에 제주도의 지원을 받아 화재로 소실된 전사청(典祀廳)을 다시 중건하였다.

탐라 개국신화에 얽힌 유적지는 제주도 곳곳에 보존되어 있다.

삼신인이 정착지를 찾기 위해 활을 쏘았던 과녁인 삼사석(三射石)과 바다 건너온 벽랑국공주를 맞이했던 혼인지(婚姻址)등이 태고의 전설을 들려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제주부씨는 전국에 10,22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인물 - 제주부씨조상인물

신라시대 인물

부계량(夫繼良) 삼국시대에 탁라시조(乇羅始祖) 夫乙那의 혈통을 이어받아 부씨(夫氏)를 확고하게 전성(傳姓)하신 중시조(中始祖)이다.

신라 무열왕때 탐라국(耽羅國) 사신(使臣)으로 입조(入朝)하여 신라왕으로부터 후한 상금과 왕자작(王子爵)을 받았다.

고려시대 인물

부을잉(夫乙仍) 고려 문종 3년에 77인을 이끌고 입조한 탐라국 진위교위(振威校尉).

부정재(夫貞才) 충렬왕때 원 총관부(元 總管府) 영사(令史) 행서부사(行署府事).

조선시대 인물

부일성(夫日誠) 조선조 초기 이태조의 어릴 때 스승이었던 정암(靜菴) 변남룡(卞南龍)을 사사(師事)했던 학자 로 그 행적이 초계변씨(草溪卞氏) 족보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부종의(夫宗義) 원천석(元天錫)과 더불어 치악산에서 폐망한 고려조에 표절(表節)한 의인(義人)으로서 통일동 산(京畿道 坡州)에 새로 지은 고려종묘(高麗宗廟) 충․ 공신각에 배향할 예정이다.

부언경(夫彦景) 중시조(中始祖)1세. 진용교위(進勇校尉) 호익순위사(虎翼巡衛司) 후령별장(後領別將). 삼국시대나 고려때의 부씨상계(夫氏上系)는 실전되어 정확한 세계(世系)를 밝힐 수 없으므로 보다 그 연대와 행장 에 관한 기록이 확실한 부언경을 중시조 1세로 봉대(奉戴)하여 부씨세보(夫氏世譜)가 편찬 되었다.

부삼로(夫三老) 통훈대부(通訓大夫). 동거문악(東巨文岳) 동록에 실묘가 있다. 유렴(有廉)과 유성(有成) 등 두 아들을 두었는데 이중에서 동생 유성이 육지로 진출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도 양주(楊州) 연천(摙川) 지 방에 부씨의 기반을 닦았다.

부유렴(夫有廉) 어모장군(禦侮將軍).

부세영(夫世榮) 어모장군(禦侮將軍).

부 열(夫 悅) 어모장군(禦侮將軍).

부대학(夫大鶴) 녹도만호(鹿島萬戶),벽진첨사(壁津僉使).

부대기(夫大麒) 어모장군(禦侮將軍).

부응호(夫應豪) 어모장군(禦侮將軍).

부시흥(夫時興) 통정대부, 명월만호(明月萬戶).

부시웅(夫時雄) 통정대부, 다경포만호(多慶浦萬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