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거제반씨시조(巨濟潘氏),반부(潘阜),반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4:41 수정일 : 2018-03-04 20:5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반씨(潘氏)는 중국(中國) 형양(滎陽 : 지금의 하남성 개봉도에 속한 지명)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 주(周)나라 문왕(文王: 무왕의 아버지)의 여섯째 아들 필공(畢公) 고(高)의 아들 계손(系孫)이 반(潘) 땅에 봉해져서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 받은 땅이름을 성(姓)으로 삼았다고 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이후로 유학자(儒學者)와 재상을 많이 배출하여 명족(名族)으로 일컬어진 반씨(潘氏)는 송(宋)나라 출신인 반부(潘阜)가 이종(理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이부 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몽고정벌(蒙古征伐)을 간청했다.

그런데 간신(奸臣) 가사도(賈似道)가 그를 미워하여 몽고에 사신으로 보내어 은밀히 죽이게 하였으나, 원(元)의 세조(世祖 : 홀필렬)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그의 재주를 가상히 여겨 죽이지 않고 벼슬을 내려 부하로 삼으려 하였다. 그는 사양한 후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원재의 딸, 충렬왕비가 됨)를 배종(陪從)하고 동래(東來)하여 고려 원종(元宗)과 충렬왕조(忠烈王朝)에서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명장(名將) 김방경(金方慶)을 따라 일본정벌(日本征伐)에 공(功)을 세워 시중(侍中)에 오르고 기성부원군(岐城府院君)에 봉해졌으며, 65세에 벼슬을 사직하고 거제(巨濟)로 내려가 정사(精舍)를 짓고 여생을 마쳤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반씨(潘氏)의 문호(門戶)가 열리게 되었으며, 그의 아들 정(挺)과 유항(有抗)을 시작으로 가세(家勢)가 일어나 후손들이 전국 각지에 산거(散居)하며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따라 기성(奇聲)․충주(忠州)․남평(南平)․결성(結城)․청도(淸道)․홍천(洪川)․광주(光州)․ 등 17본으로 갈리었으나 모두가 동원(同源)이므로「거제반씨정미대동보(巨濟潘氏丁未大同譜)」에는 거제반씨로 합보(合譜)하였다.

거제(居第)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해안(南海岸)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소가야국(小伽倻國)의 일부였던 독로국(瀆盧國)에 속했다가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때 상군(裳郡)이라 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에 거제로 개칭 되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거창(巨創)과 합하여 제창현(濟昌縣)으로 불리다가, 1422년(세종 4)에 거제현(巨濟縣)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氏族史 槪要

가문(家門)을 중흥시킨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시조 부(阜)의 증손(曾孫) 익순(益淳)이 고려 우왕(禑王) 때 문하평리(門下評理)를 거쳐 좌시중(左侍中)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덕해(德海)와 복해(福海)가 현달하여 명문(名門)의 기틀을 마련했다.

문무(文武)를 겸비한 명신(名臣)으로 우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복해는 왕(王)이 사냥을 나가 말에서 떨어져 멧돼지의 습격을 받게 될 순간 활을 쏘아 왕을 위기에서 구해낸 일화가 전하며, 밀직부사(密直副使)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거쳐 추충양절익 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에 올라 제성부원군(濟城府院君)에 봉해졌으나, 최영(崔瑩)장군을 암살하려던 조반(趙阝半)․임견미(林堅味)와의 관련 혐의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가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복권되었다.

한편 복해는 아들 자건(自建)은 시중(侍中) 배극렴(裵克廉)의 사위로 조선(朝鮮)이 개국된 후 태종조(太宗朝)에서 이조 판서(吏曹判書)와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고 영평군(永平君)에 봉해졌으나, 손자 충(忠)도 조선 창업에 공(功)을 세워 개국원종좌명일등공신(開國原從佐命一等功臣)으로 해양군(海陽君)에 봉해졌다가 광주백(光州伯)에 추봉되었다.

세칭 절효선생(節孝先生)으로 불리웠던 유(儒)는 판도판서(版圖判書) 덕해(德海)의 손자(孫子)로서 부친상(父親喪)을 당하자 여막(廬幕)에서 3년동안 시묘(侍墓)하여 나라에서 정려(旌閭)가 내려졌고, 이조 정랑(吏曹正郞) 호(號)의 손자 효손(孝孫)은 세조(世祖) 때 황주 목사(黃州牧使)와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거쳐 회령 부사(會寧府使)로 나갔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급제한 우형(佑亨)은 당세의 석학(碩學) 김굉필(金宏弼)의 제자로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여 정국4등공신(靖國四等功臣)으로 이성군(李城君)에 봉해졌으며, 대사헌(大司憲)과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지내고 기성군(岐城君)에 개봉(改封)되었다.

청렴근엄(淸廉謹嚴)한 관리로 명성을 떨쳤던 석평(碩枰)은 1472년(성종 3) 부사과(副司果) 서린(瑞麟)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광조(趙光祖)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중종(中宗) 때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주요 내외직을 두루 역임한 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그의 손자 인후(仁後)는 선조(宣祖) 때 사마시(司馬試)에 올라 학명(學名)을 떨쳤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령(鳥嶺 : 문경새재)에서 공(功)을 세워, 한산해전(閑山海戰)에서 순절한 중인(仲仁 : 공조 좌랑 응기의 아들)․중경(仲慶) 형제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청병(淸兵)과 싸우다가 강화(江華)에서 전사한 일량(日良)이 유명했고, 한말(韓末)에 와서는 고종(高宗) 때 한일합방(韓日合邦)의 비분으로 할복자결한 하경(夏慶 : 일명 학영)이 가문(家門)을 대표했다.


역대인물(歷代人物)-거제반씨조상인물

반유항(潘有抗) 자(字)는 몽뢰(夢賚), 호(號)는 수졸당(守拙堂), 시호(諡號)는 양절(良節). 고려(高麗) 때 도총부 도총사(都摠府都摠使)를 지냈다.

반숙(潘 淑) 자(字)는 평중(平中), 호는 효상(孝尙). 고려 충정왕(忠定王) 때 군기감(軍器監)을 지냈다.

반연(潘 漣) 고려조(高麗朝)에 군기감정(軍器監正)을 역임했다.

반영원(潘永源) 자(字)는 극우(極于). 고려(高麗) 때 밀직상서(密直尙書)를 지냈다.

반전(潘 腆) 자(字)는 귀오(貴吾). 1387년(우왕 13) 산원(散員)으로 향리(鄕里)에 있었는데 왜구(倭寇)가 침공(侵攻)하여 아버지 숙(淑)을 잡아감으로 전(賟)이 은정(銀錠)과 은대(銀帶)를 가지고 적중(賊中)에 가서 애걸하여 아버지를 구출해 냈다. 그때 아버지를 업고 피난하다가 무릎이 벗겨져 피 흘린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다하여 그 바위를 반전암(潘賟岩)이라고 한다.

반윤준(潘允濬) 고려에서 사재소감(司宰少監)을 지냈다.

반익순(潘益淳) 자(字)는 인여(仁輿), 호(號)는 청계(淸溪), 시호(諡號)는 충양(忠襄). 1377년(우왕 3)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내고, 후에 좌시중(左侍中)을 역임하였다.

반서(潘 湑) 자(字)는 유이(有異), 호(號)는 시진(是진). 고려조(高麗朝)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냈다.

반덕해(潘德海) 자(字)는 관술(觀述), 호(號)는 남파(南坡). 고려(高麗)때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였다.

반복해(潘福海) 자(字)는 유술(有述), 호(號)는 석암(石庵), 시호(諡號)는 문장(文狀), 익순(益淳)의 아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門人). 고려 우왕의 총신(寵臣)으로 밀직승지(密直承旨)를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우왕(禑王)이 멧돼지 사냥을 하다 위기에 빠졌을 때 이를 구출하여 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 왕(王)이라는 성(姓)을 하사받고 수양아들이 되었으며, 벼슬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고 추충량절익대좌명보리공신(推忠亮節翊戴佐命輔理功臣)에 책록되었다. 제성 부원군(濟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반무량(潘茂良) 고려 때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

반자건(潘自建) 자(字)는 희경(希卿), 호(號)는 영모당(永慕堂), 시호(諡號)는 충간(忠簡). 고려 공양왕(恭讓王)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영평군(永平君)에 봉해졌다.

반준(潘 濬) 자(字)는 성백(成伯), 호(號)는 은제(隱濟), 조선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반정(潘 珽) 자(字)는 진향(振享). 조선 때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반충(潘 忠) 자(字)는 평중(平仲). 조선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반수명(潘守明) 자(字)는 사연(士淵), 호(號)는 어은(漁隱). 조선(朝鮮) 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반혼(潘 混) 조선조(朝鮮朝)에 함창 현감(咸昌縣監)을 역임하였다.

반조(潘 慥) 자(字)는 군원(君原). 조선 때 진주 판관(晋州判官)을 지냈다.

반유현(潘有賢) 자는 화지(和之). 조선에서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반사제(潘思濟) 자(字)는 희수(禧叟). 조선(朝鮮)에서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반사덕(潘思德) 자(字)는 경수(敬叟). 조선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반사해(潘思海) 자(字)는 사수(士叟). 조선(朝鮮) 때 병조 정랑(兵曹正郞)․함안 군수(咸安郡守)를 역임하였다.

반호(潘 湖) 자(字)는 정평(正平). 조선에서 이조 정랑(吏曹正郞)을 역임하였다.

반제로(潘悌老) 자는 월남(月南), 호는 단계(端溪). 조선조(朝鮮朝)에 감찰을 지냈다.

반맹강(潘孟江) 자(字)는 해보(海甫). 조선(朝鮮) 때 통사랑(通仕郞)에 이르렀다.

반중강(潘仲江) 자(字)는 해운(海雲). 조선(朝鮮)에서 통사랑(通仕郞)에 올랐다.

반계강(潘季江) 조선에서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반우형(潘佑亨) 조(慥)의 아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1486년 지평(持平)을 거쳐 1493년(성종 24) 수장령(守掌令), 이듬해 사성(司成)에 오르고 각지 명산 대천(名山大川)에서 사직(社稷)의 복을 기도하는 사신으로 뽑혀 양진(楊津)에 파견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사간(司諫)․대사성(大司成), 1504년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를 거쳐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내다 갑자사화(甲子士禍)에 파직당했다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좌윤(左尹)을 지내고, 1506년 박원종(朴元宗) 등과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참여하는 정국공신(靖國功臣) 4등으로 이성군(利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대사헌(大司憲)에 발탁되어 기성군(岐城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유배당했다. 명종(明宗) 때 신원(伸寃)되었다.

반윤규(潘胤奎) 자(字)는 성보(聖甫), 호(號)는 낙암(樂庵). 조선(朝鮮) 때 고산 현감(高山縣監)을 역임하였다.

반효공(潘孝恭) 조선 때 지제고(知制誥)를 지냈다.

반효손(潘孝孫) 자(字)는 남운(南雲), 호(號)는 기야(箕野). 조선 문종(文宗) 때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황주 목사(黃州牧使) 등을 지내고, 세조(世祖) 때 예조 참판(禮曹參判)․회령 부사(會寧府使)를 역임하였다.

반강(潘 崗)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반잠(潘 岑)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반유(潘 濡)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1418년(태종 18) 나라에서 효자(孝子)로 정려(旌閭)를 명(命)하고, 1477년(성종 8) 조원도 찰방(鳥原道察訪)에 추증(追贈)되었다. 예천(醴泉)의 옥천서원(玉川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반계공(潘戒恭) 자(字)는 농포(農圃), 호(號)는 노영(櫓永). 조선조에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반형(潘 衡) 자는 양곡(陽谷), 호는 용서(蓉西). 조선(朝鮮)에서 만호(萬戶)를 지냈다.

반계숙(潘繼淑) 자(字)는 여홍(汝弘).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반예(潘 汭) 자(字)는 남로(南老), 호(號)는 인재(忍齋). 조선(朝鮮)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반희(潘 熙) 자(字)는 군원(君源). 조선 세조(世祖) 때 부산포 절제사(釜山浦節制使), 예종(睿宗) 때 동래 현령(東萊縣令), 1470년(성종 1)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를 역임하였다. 1475년(성종 6) 의주 목사(義州牧使)를 거쳐 다음해 장흥 부사(長興府使)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났다.

반서룡(潘瑞龍) 조선(朝鮮) 때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반구연(潘九淵)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반서린(潘瑞麟) 조선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반효남(潘孝男) 조선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했다.

반인수(潘仁壽) 조선조(朝鮮朝) 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했다.

반중연(潘重淵)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반효손(潘孝孫) 자(字)는 남운(南雲), 호(號)는 기야(箕野). 조선 때 황주 목사(黃州牧使)․회령 부사(會寧府使)를 역임했다.

반석정(潘碩楨) 자는 평문(平文).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반중인(潘仲仁) 자(字)는 여선(汝善), 호(號)는 삼봉(三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공을 세워 공신(功臣)에 책록되었다.

반석철(潘碩撤) 자(字)는 우강(友江), 호(號)는 연촌(烟村). 조선(朝鮮) 때 효자(孝子)로 향민(鄕民)의 칭송을 받았다.

반언부(潘彦溥) 자(字)는 국언(國彦). 조선(朝鮮)에서 자헌대부(資憲大夫)․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추증되었다.

반침(潘 琛) 조선 때 진도 군수(珍島郡守)를 지냈다.

반석평(潘碩枰) ? ~ 1540 (중종 35)

자(字)는 공문(公文), 호(號)는 송애(松厓), 시호(諡號)는 장절(壯節), 서린(瑞麟)의 아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 1507년(중종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검열(檢閱)이 되고, 경흥 부사(慶興府使)를 거쳐 1522년(중종 17) 만포진첨절제사(滿浦鎭僉節制使) 가 되고, 함경남도 병마절도사(咸鏡南道兵馬節度使)․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 1527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가 되었다.

1530년 경연 특진관(經筵特進官), 이듬해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觀察使)를 역임, 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에 재임되었다가 평안도 관찰사(平安道觀察使)를 거쳐 1536년(중종 31)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지내고 1639년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형조 참판(刑曹參判)․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형조 판서(刑曹判書) 등을 지냈고, 이듬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청렴한 관리로 이름났다.

반석권(潘碩權) 자(字)는 평문(平文). 조선 때 영춘 현감(永春縣監)을 지냈다.

반흡(潘 洽) 조선에서 순창군수(淳昌郡守)를 역임했다.

반효홍(潘孝泓) 자(字)는 인행(仁行), 호(號)는 양헌(陽軒). 조선조(朝鮮朝)에 가의대부(嘉義大夫)․오위도통관(五衛都摠管)에 추증되었다.

반윤준(潘允濬) 조선 때 군기시정(軍器寺正)을 역임하였다.

반한우(潘漢祐) 조선조(朝鮮朝)에 익산 군수(益山郡守)를 역임하였다.

반유신(潘有信) 자(字)는 의현(義賢).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반세건(潘世建) 자(字)는 국현(國現), 호(號)는 제헌(濟軒). 조선(朝鮮) 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반일량(潘日良) 조선조(朝鮮朝)에 의병장(義兵將)으로 활약하였다.

반국해(潘國海) 조선에서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하였다.

반중경(潘仲慶) 자(字)는 여경(汝慶), 호(號)는 오봉(五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이순신(李舜臣)을 따라 출전했다가 전사하였다.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올랐고,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반준하(潘俊夏) 자(字)는 이언(而彦). 조선(朝鮮) 때 실학자(實學者)로 유명(有名)했다.

반희언(潘希彦) 조선 때 효자(孝子)로 향민(鄕民)의 칭송을 받았다.

반인후(潘仁後) 호(號)는 국오(菊塢). 조선 때 학자(學者)로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창의(倡義)하여 큰 공(功)을 세우고, 뒤에 군자감 첨정(軍資監僉正)을 지냈다.

반충(潘 沖) 자(字)는 화중(和仲), 호(號)는 관물당(觀物堂).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모친(母親)을 극진히 봉양하다가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간(三年間) 여막(廬幕) 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체소가 푸르렀다가 담제를 마친 후 채소가 말라지자 세인(世人)들이 말하기를 정성이 극진하여 천신이 감응했다고 한다.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상을 당했을 때도 삼년간(三年間) 육식을 금한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충효정려(忠孝旌閭)가 세워졌고, 숙종(肅宗) 때 달계서원(達溪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반하경(潘夏慶) ? ~ 1910

일명(一名) 학영(學榮). 고종(高宗) 때 내시(內侍)로서 승전색(承傳色)을 지내다가 1905년(광무 9)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사퇴하고 경기도 파주(坡洲)에 은거, 1910년 한일합방의 비분을 억제하지 못하여 유서(遺書)를 남기고 대로(大路)에서 할복자결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제69호) 단장(單章)이 수여되었고, 1987년 8월 12일 자료번호 4310번으로 독립기념관에 접수, 유필과 함께 전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