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평택박씨시조(平澤朴氏),박지영(朴之永),평택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4:09 수정일 : 2018-04-17 19:1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평택 박씨(平澤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다섯째 아들인 사벌왕(沙伐王) 언창(彦昌)의 후예로 전(傳)해지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되어 정확(正確)한 계대(系代)를 상고(詳考)하지 못한다.

다만, 그의 후손으로 알려진 박지영(朴之永)이 조선조(朝鮮朝)에서 평택 현사(平澤縣事)를 역임하고, 그의 아들 산(山)이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내다가 1456년(세조 2) 단종복위(端宗復位)사건에 연루되어 그 곳에 살면서 선조(先祖)의 임지(任地)였던 평택(平澤)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으며 지영으로부터 기일세(起一世)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평택(平澤)은 경기도(京畿道) 남동단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 장수왕 때는 부산현(釜山縣)이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진위현(振威縣)으로 개칭되어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수성군(水城郡)에 편입되고 동시에 평택현(平澤縣)으로 개칭되었다.

1505년(연산군 11) 처음으로 충청도로부터 경기도에 이속되었고, 중종 초에 다시 환원, 1596년(선조 29)에 직산현(稷山縣)에 예속되었다가 광해군 때 복구하여 현이 되엇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하고 그 뒤 경기도 진위군에 병합, 1924년 진위군이 평택군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인물로는참판(參判) 산(山)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현달(顯達)하여 가문의 3대인맥(三大人脈)을 이루었는데, 맏아들 문창(文昌)은 정랑(正郞)을 역임하고 참판(參判)에 추증되었으며, 둘째 문원(文遠)은 진사(進士)를, 막내 문홍(文洪)은 정랑(正郞)을 지냈다.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인원(仁元)과 인형(仁亨) 형제는 문창(文昌)의 아들로서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른 계장(繼章)과 함께 이름을 떨쳤으며, 감찰(監察) 희욱(熙郁)은 오위장(五衛將) 제균(齊均)과 더불어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살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택 박씨(平澤朴氏)는 남한(南韓)에 53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평택박씨조상인물

박산(朴 山)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문창(朴文昌) 조선 때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박인원(朴仁元) 조선조에 사직(司直)을 지냈다.

박인형(朴仁亨) 조선(朝鮮)에서 사직(司直)을 역임하였다.

박인정(朴仁貞) 조선(朝鮮)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박연종(朴運宗) 조선에서 훈도(訓導)를 지냈다.

박문원(朴文遠) 조선 때 진사(進士)를 역임하였다.

박춘방(朴春邦) 조선조(朝鮮朝)에 첨정(僉正)을 역임하였다.

박계장(朴繼章)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박희욱(朴熙郁)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박제균(朴濟均)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박규능(朴圭能) 조선(朝鮮)에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박상호(朴尙好) 조선조(朝鮮朝)에 권관(權管)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