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평산박씨시조(平山朴氏),박지윤(朴智胤),평산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4:01 수정일 : 2018-04-11 17:0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신라 종성(宗姓)의 후예인 평산박씨(平山朴氏)는 고려 초에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공신(功臣)에 책록되어 시중(侍中)에 오른 박지윤(朴智胤)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고 있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본래 평주(平州) 출신으로 딸과 손녀(孫女 : 대광 수문의 딸이 월경원 부인이 됨)가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비(妃)가 되어 고려 초기에는 세도가문(勢道家門)으로서의 지위(地位)를 굳혔다고 한다. 지윤의 차남 수경(守卿)은 후백제(後百濟)가고려에 침공해 왔을 때 장군(將軍)으로 조물군(曹物郡) 전투에서 크게 공(功)을 세워 원보(元甫)에 올라 평주군(平州君)에 봉해지고 토지(土地) 200결(結)을 하사(下賜)받아, 후손들이 그 곳에 살면서 선조(先祖)가 누대(累代)로 세거(世居)해 온 평산(平山) 땅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평산(平山)은 황해도(黃海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 때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화실(多和悉)이었던 것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영풍(永豊)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 초에 평주(平州)로 하였고 1272년(원종 13) 부흥군(復興郡)에 합쳤다가 충렬왕(忠烈王) 때 다시 북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으로 바꾸고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고종(高宗) 때 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문종(文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인량(寅亮)은 밀직부사(密直府使) 성충(成忠)의 아들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한 후, 예부 시랑(禮部侍郞)이 되어 송(宋)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들어가 문명(文名)을 떨쳤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숙종조(肅宗朝)에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한편 인량의 아들 형제 중 장남 경인(景仁)이 1107년(예종 2)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병마부사(兵馬副使)를 겸하여 윤 관(尹 瓘)과 함께 여진(女眞) 정벌에 출정했으며, 4조(四曹)의 상서(尙書)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수국사(修國史)․낭중(郎中)을 거쳐 상서(尙書)에 오른 아우 경백(景伯), 막내 경산(景山 : 대경을 지냄)과 함께 가문(家門)을 중흥시켰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전객시사(典客寺事)를 지낸 조열(祖烈)과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한 열(說)이 유명했고, 삼중대광 수경(守卿)의 5대손 소(翛)는 인종(仁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교감(校勘)과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의 등을 거쳐 지홍주사(知洪州事)로 나가 선정(善政)을 베풀었고, 전후 3차에 걸쳐 서남안찰사(西南按察使)가 되어 민폐를 수습하는 데 앞장섰다.

한편 명종(明宗) 때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웠던 종현(宗賢)은 뒤에 벼슬이 문하성 시랑(門下省侍郞)에 이르렀으며, 효수(孝修)는 충숙왕(忠肅王)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내고 청절(淸節)로 명성을 떨쳐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져서크게 가문을 일으켰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참의(參議)를 지낸 윤홍(允弘)과 통덕랑(通德郞) 대진(大震)이 뛰어났고, 도사(都事) 영수(英秀)와 부위(副尉) 원필(元弼)은 효성으로 이름난 죽포(竹圃) 재협(在冾)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산박씨(平山朴氏)는 전국에 총 1,319명이 살고 있고, 평주박씨는 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평산박씨조상인물

박수문(朴守文) 고려 때 태위 삼중대광(太尉三重大匡)에 이르렀다.

박수경(朴守卿) ? ~ 964년(광종 15). 대광(大匡) 지윤(知胤)의 아들. 태조(太祖)의 비(妃) 몽양원부인(夢良院夫人)의 아버지.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 원윤(元尹)이 되었고, 후백제(後百濟) 견 훤(甄 萱)이 침입했을 때 장군(將軍)으로 추증되었다.

박승위(朴承位) 고려 때 좌승(左丞)을 역임하였다.

박승례(朴承禮) 고려조(高麗朝)에 우승(右丞)을 역임했다.

박세좌(朴世佐) 고려 때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박세걸(朴世傑) 고려(高麗)에서 좌복야(左僕야)를 역임하였다.

박성충(朴成忠) 고려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박인량(朴寅亮) 자(字)는 대천(代天), 호(號)는 소화(小華), 시호(諡號)는 문렬(文烈). 1047년(문종 1)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예부 시랑(禮部侍郞)이 되어 1080년(문종 34) 류 홍(類 洪)․김 근(金 覲) 등과 함께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갔을때 시문(詩文)이 뛰어나 격찬을 받았다. 귀국 후 한림학사(翰林學士)․승지(承旨)․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숙종(肅宗) 때 우복야(右僕射)․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박경인(朴景仁) 자(字)는 영우(令祐), 시호(諡號)는 장간(章簡).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한 후 1107년(예종 2)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지낼때 병마부사(兵馬副使)가 되어 윤 관(尹 瓘)의 여진(女眞) 정벌에 출정하였으며, 그 후 이․호․예․형조 상서(吏戶禮刑曹尙書) 및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수국사(修國史)에 이르렀다.

박경백(朴景伯) 호(號)는 평주(平洲), 참지정사(參知政事) 인량(寅亮)의 아들. 1086년(선종 3) 문과에 급제한 후 11 07년(예종 2) 고공 낭중(考功郎中)을 거쳐 상서(尙書)에 이르렀다.

박경산(朴景山) 고려(高麗)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대경(大卿)에 이르렀다.

박효선(朴孝先) 고려 때 시중(時中)을 역임하였다.

박조열(朴祖烈) 고려 때 전객시사(典客寺事)를 역임하였다.

박열(朴 說) 시호(諡號)는 이정(夷靖). 고려 때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박소(朴 翛) 1097년(숙종 2) ~ 1156년(의종 10)

자(字)는 자수(子隨), 삼중대광(三重大匡) 수경(守卿)의 5대손. 26세 때 문과(文科)에 급제, 자주(慈州)를 다스리고, 보문각 교감(寶文閣校勘)을 거쳐 우정언(右正言)․지제고(知制誥)가 되었다. 뒤에 지홍주사(知洪州事)로 선정(善政)을 베풀고, 대각(臺閣)의 벼슬을 역임했다. 전후 3차에 걸쳐 서남 안찰사(西南按察使)가 되어 민폐를 없앴고, 금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동북로 지병마사(東北路知兵馬事)에 올라 대복경(大僕卿)․지예부사(知禮部事)가 더해졌으며, 국자 좨주(國子祭酒)를 거쳐 지합문사(知閤門事)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즐기고 경사(經史)에 능통했다.

박광민(朴光旻) 고려 때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박종현(朴宗賢) 고려 명종(明宗) 때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문하성 시랑(門下省侍郞)에 올랐다.

박열(朴 悅) 시호(諡號)는 문정(文靖). 고려 때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박성건(朴成健) 고려 명종(明宗)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박신(朴 紳) 고려 명종(明宗) 때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를 지냈다.

박효수(朴孝修) 호(號)는 석재(石齋).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때 대언(代言)을 거쳐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으며, 청절(淸節)로 명성을 떨쳤고 뒤에 연창군(延昌君)에 봉해졌다.

박윤홍(朴允弘)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박대진(朴大震)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박영수(朴英秀)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박화종(朴華宗)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냈다.

박영희(朴榮熙) 조선(朝鮮)에서 참봉(參奉)을 지냈다.

박원필(朴元弼) 조선 때 부위(副尉)를 역임하였다.

박재협(朴在冾) 자(字)는 제남(濟南), 호(號)는 죽포(竹圃). 조선(朝鮮) 때 효자(孝子)로 칭송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