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태인박씨시조(泰仁朴氏),박거인(朴居仁),태인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3:58 수정일 : 2018-04-17 19:2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태인박씨(泰仁朴氏)는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자(世子)인 밀성대군(密城大君) 언침(彦忱)의 8세손으로 고려조에서 도평의사(都評議事)를 지내고 밀성부원군(密城府院君)에 봉해진 언상(彦祥)을 중조(中祖)로 하며, 그의 8세손 박거인(朴居仁)이 공민왕(恭愍王) 때 소감(少監)을 역임한 후 화(禍)를 입고 인의현(仁義縣)으로 유배(流配)되어 그 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후손(後孫)들이 거인(居仁)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태인(泰仁)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태인(泰仁)은 전라북도(全羅北道) 정읍군(井邑郡)에 속해 있는 지명(地名)으로 태산현(泰山縣)과 인의현(仁義縣)의 합명(合名)이다. 태산현은 본래 백제(百濟)의 대시산현(大尸山縣)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태산(太山)으로 고쳐 대산(大山)․태산(泰山)등으로 불리우다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군(郡)으로 승격되었다. 인의현은 백제 때 빈굴(賓屈)․빈성(斌城)․부성(賦城)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 때 무성(武城)으로 고쳤고, 고려조에 인의(仁義)로 고쳤다가 1411년(조선 태종 11)에 태산(泰山)과 합하여 태인현(泰仁縣)이 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군(郡)으로 승격되고 1913년에 정읍군(井邑郡)에 합해져서 태인면(泰仁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그후 그의 증손 연생(衍生 : 사정 덕명의 아들)이 조선 단종조(端宗朝)에서 충무위 대호군(忠武衛大護軍)을 역임하다가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어린 조카를 쫓아내고 왕위(王位)를 찬탈하자 이를 개탄하여 사위 이석손(李碩孫)과 함께 담양(潭陽) 월산(月山)에 은거(隱居)하였다.

일찍이 고향의 학자 김 개(金 漑)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한 수량(守良)은 대호군(大護軍) 문아(文雅 : 연생의 아들)의 증손으로 1514년(중종 9)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와 지평(持平)․헌납(獻納) 등을 거쳐 나주 목사(羅州牧使)․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내고 1538년(중종 38)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했으며, 명종(明宗)이 즉위하자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 「중종실록(中宗實錄)」과「인종실록(仁宗實錄)」편찬에 참여했다.

특히 그는 효성(孝誠)이 뛰어나 노모봉양에 지극했으며 상(喪)을 당하자 3년간이나 여막(廬幕)을 지켰다고 한다. 1533년(명종 8)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을 거쳐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고, 선정(善政)을 베풀어 세인의 칭송을 받았으며 38년 동안 관직에 있으면서도 좋은 집 한 채를 못가질 정도로 청렴결백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판관(判官)을 지낸 취극(就克)과 재화(再華)․세언(世彦)을 비롯하여 중추부사(中樞府事) 내용(乃容)이 유명했고, 문과에 급제하여 참판(參判)을 역임했던 순용(順容)은 비서감정(秘書監正) 균종(均宗), 좌승지(左承旨) 동욱(東旭)․우용(雨容), 중추부사(中樞府事) 지춘(知春) 등과 함께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지켜 이름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태인박씨(泰仁朴氏)는 남한(南韓)에 96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태인박씨조상인물

박연생(朴衍生) 호(號)는 둔재(遯齋). 조선 때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박문아(朴文雅) 조선조(朝鮮朝)에 대호군(大護軍)에 이르렀다.

박수량(朴守良) 자(字)는 군수(郡遂), 호(號)는 아곡(鵝谷), 시호(諡號)는 정혜(貞惠). 1514년(중종 9) 진사(進士)로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지평(持平)을 거쳐 헌납(獻納)․장령(掌令) 등을 역임, 1536년(중종 31) 나주 목사(羅州牧 使) 겸 찰리사(察里使)․동부승지(同副承旨)․호조참판( 戶曹參判)을 지냈고, 1546년(명종 1)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가 되어「중종실록(中宗實錄)」․「인종실록(仁宗實錄)」편찬에 참여했고, 이어 1553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에 올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綠選)되었다.

박맹손(朴孟遜) 자(字)는 성환(成宦). 조선 때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박취일(朴就逸) 자(字)는 자언(子彦).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취극(朴就克) 자(字)는 행지(行之), 호(號)는 오헌(汚軒). 조선조(朝鮮朝)에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박재화(朴再華) 자(字)는 선권(善權).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박흥태(朴興泰) 자(字)는 문선(文善), 호(號)는 용암(龍巖).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정진(朴瀞鎭) 자(字)는 경오(敬五).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기호(朴奇琥) 자(字)는 화숙(和淑).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정수(朴廷秀) 자(字)는 내칠(乃七), 호(號)는 애천(愛泉). 조선(朝鮮)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숭선(朴崇善) 자(字)는 양오(養吾), 호(號)는 송암(松菴). 조선(朝鮮)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태룡(朴泰龍) 자(字)는 대현(大現).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중헌(朴重憲) 자(字)는 윤경(允敬), 호(號)는 송석(松石). 조선조에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박중영(朴重永) 자(字)는 성좌(成佐).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영진(朴英震) 자는 춘여(春汝).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박경진(朴景震) 자(字)는 석겸(碩兼), 호(號)는 석운(石雲). 조선(朝鮮)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준기(朴準基) 자(字)는 성택. 조선(朝鮮)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학규(朴鶴圭) 자(字)는 자화(子化). 조선 때 도사(都事)를 지냈다.

박준칠(朴準七) 자(字)는 응두(應斗). 조선에서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재용(朴在容) 자(字)는 윤신(允信), 호(號)는 영재(英齋).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박경용(朴坰容) 자(字)는 세준(世俊). 조선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학용(朴學容) 자는 학삼(學三). 조선(朝鮮) 때 도사(都事)를 지냈다.

박계용(朴啓容) 자(字)는 화계(化季).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지냈다.

박경용(朴慶容) 자(字)는 창훈(昌勳).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

박균업(朴均業) 자(字)는 문수(文洙). 조선 때 도정(都正)에 이르렀다.

박내용(朴乃容) 자(字)는 원손(元孫), 호(號)는 송파(松坡). 조선(朝鮮)때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박만우(朴萬宇) 자(字)는 찬지(燦之), 호(號)는 야은(野隱).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만순(朴萬順) 자(字)는 순지(順之).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만선(朴萬鮮) 자(字)는 사홍(士洪).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순용(朴順容) 자(字)는 치화(致化). 조선조(朝鮮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박만추(朴萬樞) 자는 인여(仁餘). 조선(朝鮮)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만종(朴萬宗) 자(字)는 종진(琮鎭).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균순(朴均珣) 자(字)는 옥조(玉祚). 조선 때 참판(參判)에 이르렀다.

박균종(朴均宗) 자(字)는 흥칠(興七). 조선(朝鮮) 때 비서감정(秘書監正)을 지냈다.

박균문(朴均文) 자(字)는 정문(正文).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동익(朴東益) 자(字)는 권진(權振), 호(號)는 매죽헌(梅竹軒). 조선조(朝鮮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박동욱(朴東旭) 자(字)는 정빈(正彬).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박우용(朴雨容) 자(字)는 춘근(春根). 조선에서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박지춘(朴知春) 자(字)는 내춘(乃春).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동련(朴東連) 자는 응순(應淳). 조선(朝鮮)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동린(朴東麟) 자(字)는 응춘(應春). 조선(朝鮮)에서 도사(都事)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