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춘천박씨시조(春川朴氏),박항(朴恒),춘천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3 13:21 수정일 : 2018-02-18 18:14

춘천박씨시조

춘천박씨(春川朴氏)는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권(江南大君) 언지(彦智)의 11세손 박항(朴恒)을 시조(始祖)로 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는 고려 고종(高宗 : 제23대 왕, 재위기간 : 1213~1259)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보직되고, 이어 충주(忠州牧使)로 나가 많은 치적(治績)을 남겼으며 충렬왕(忠烈王) 때 승선(承宣)을 거쳐 동지밀직사(同知密直使)에 올라 왕(王)을 호종(扈從)하고 원(元)나라에 다녀와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되고 춘성부원군(春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후 참문학사(參文學士)와 찬성사(贊成事)에 이르렀고, 문장(文章)에 뛰어났으며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명망이 높았다.

그로 인하여 후손들이 춘천(春川)에 세거(世居)하면서 항(恒)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춘천(春川)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춘천(春川)은 강원도(江原道) 서쪽 중앙(中央)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맥국(貊國)의 땅이었던 것을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우수주(牛首州) 또는 우두주(牛頭州)라 불렀고, 673년(문무왕 13)에 수약주(首若州) 또는 조근내(鳥斤乃)․수차약(首次若)으로 개칭하였으며, 경덕왕(景德王) 때 삭주(朔州)로 고쳤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 춘주(春州)로 고치고 성종(成宗) 떄 단련사(團練使)를 두어 안변부(安邊府)에 예속시켰다가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가 되었으며, 1413년(태종 13) 춘천군(春川郡)으로 고쳐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인조(仁祖) 때 방어사(防禦使) 및 포토사(捕討使)를 두었다가 영조(英祖) 때 부사(府使) 겸 좌영(左營)을 두었다.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896년(건양 1) 전국을 도제(道制)로 구획할 때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를 이 곳에다 두었으며, 1910년 관찰부를 도청(道廳)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가 광복(光復) 후에 춘천군(春川郡)을 춘성군(春城郡)으로 고치고 춘천읍(春川邑)을 시(市)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인물

가통(家統)을 이어온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일세조인 항(恒)의 맏아들 원굉(元宏)이 고려조에서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했고, 그의 아우 원비(元庇)는 판서(判書)를 지냈으며, 손자 안구(安具 : 원굉의 아들)는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안구의 손자 의공(義公)이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시중(侍中) 영기(英奇)의 맏아들 충간(忠幹)은 목사(牧使)를 역임했다.

그 밖의 인물로는 판사(判事) 동원(東雲 : 원비의 6세손)의 손자 은혁(恩赫)이 현감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형제 중 맏아들 명정(命鼎)은 정랑(正郞)을, 막내 명익(命益)은 감찰(監察)을 역임하여 판윤(判尹) 근무(根茂),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근징(根徵), 참의(參議) 이검(履儉), 좌승지(左承旨) 세영(世泳) 등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며 춘천박씨(春川朴氏)는 남한(南韓)에 19,38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춘천박씨조상인물

박원굉(朴元宏) 고려(高麗)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박안구(朴安具) 고려 때 대제학(大提學)을 지냈다.

박광선(朴光先) 고려조(高麗朝)에 직강(直講)을 역임하였다.

박광정(朴光廷) 자(字)는 진수(珍秀). 고려조에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다.

박거실(朴居實) 고려(高麗) 때 시정(侍正)을 지냈다.

박농(朴 農) 고려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의공(朴義公) 고려조에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박충간(朴冲幹) 조선(朝鮮)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박흠(朴 欽) 조선 떄 좌수사(左水使)를 지냈다.

박충선(朴冲善)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신간(朴信幹) 조선 때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박구동(朴九東)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세필(朴世弼) 조선조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영(朴 英) 조선 때 방어사(防禦使)를 역임하였다.

박언광(朴彦光) 조선(朝鮮) 때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박홍원(朴弘遠) 조선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박도형(朴道亨)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봉장(朴鳳章) 조선에서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박경필(朴慶弼)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근징(朴根徵)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근무(朴根茂) 조선(朝鮮) 때 판윤(判允)을 지냈다.

박지병(朴之屛) 조선에서 목사(牧使)를 지냈다.

박신도(朴信道) 자(字)는 여장(汝章). 조선 때 영장(營將)을 지냈다.

박종운(朴宗運) 자(字)는 완표(完表).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박한철(朴漢喆) 조선조(朝鮮祖)에 부호군(府護軍)을 지냈다.

박동양(朴東養) 자(字)는 효숙(孝叔).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박동수(朴東壽) 자(字)는 성보(成甫).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이검(朴履儉)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박세영(朴世泳)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였다.

박진원(朴晋源) 조선조(朝鮮朝)에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정규(朴貞奎)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박동환(朴彤煥)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박시병(朴時秉) 조선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시규(朴時奎) 자(字)는 학여(學汝).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시현(朴時賢) 자(字)는 학현(學玄). 조선조에 절충장권(折衝將軍)에 이르렀다.

박성환(朴成煥) 조선 때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박시태(朴時泰) 조선(朝鮮)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인희(朴仁熙) 자는 성업(成業).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경희(朴敬熙) 자(字)는 사현(士賢). 조선조에 참판(參判)을 지냈다.

박응희(朴應熙)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세웅(朴世雄)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박인수(朴麟壽) 조선조(朝鮮朝)에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서영(朴瑞英)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박성조(朴聖祚) 조선 때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박영영(朴英影) 조선조(朝鮮朝)에 방어사(防禦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