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여주박씨시조(驪州朴氏),박지석(朴之碩),여주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1 14:43 수정일 : 2018-04-15 16:2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여주박씨(驪州朴氏)의 시조(始祖) 박지석(朴之碩)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재위기간:917~924)의 맏아들인 밀성대군(密城大君)의 20세손으로 전(傳)한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 환(奐)이 여주(驪州)에 살다가 함경남도 함흥(咸鏡南道咸興)으로 이거(移居)하여 그 곳에서 정착(定着)하게 되었으며, 그는 고려 말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중훈대부(中訓大夫)로 사재감 부정(司宰監副正)을 재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선조(先朝)의 본향지(本鄕地)인 여주(驪州)를 본관(本貫)으로 삼고 지석(之碩)을 시조(始祖)로 받들게 되었다.

여주(驪州)는 경기도(京畿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골내근현(骨乃斤縣)을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제 35대 왕, 재위기간:742~765)이 황효현(黃驍縣)으로 개칭되었고, 고려(高麗) 초에 황려현(黃驪縣) 또는 황리(黃利)라 하였다.

1257년(고종 44)에 영의(永義)로 고치고 충렬왕(忠烈王) 때 와서는 경순왕후김씨(敬順王后金氏)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여흥군(驪興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469년(예종 원년)에 여주(驪州)로 개명(改名)하여 목(牧)으로 승격, 그후 경기도 여주군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웠던 성장(聖章:지석의 아들)과 그의 아들 영수(榮秀:절제사를 역임)가 유명했으며, 인열(仁悅)은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 흥원(興元), 참의(參議) 세만(世萬) 등과 함께 가통(家統)을 이었고, 의우(義佑)는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공조 참의(工曹參議) 휘잠(輝岑)과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낸 팽로(彭老), 중추부사(中樞府事) 재세(載世)가 뛰어났으며, 부호군(副護軍) 기춘(己春)은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한 흥철(興哲)과 더불어 충절(忠節)의 가문(家門)인 여주 박씨를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여주박씨(驪州朴氏)는 남한(南韓)에 1,00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여주박씨조상인물

박성장(朴聖章) 조선(朝鮮)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 형제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평정(平定)하는데 많은 공(功)을 세웠다.

박영수(朴榮秀) 조선조(朝鮮朝)에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박의빈(朴義彬) 조선(朝鮮) 때 절제사(節制使)를 지냈다.

박연주(朴連柱) 조선조에 부장(部將)을 지냈다.

박승남(朴承楠) 조선에서 참봉(參奉)을 지냈다.

박후룡(朴厚龍) 조선조(朝鮮朝)에 만호(萬戶)를 역임하였다.

박인열(朴仁悅) 조선(朝鮮) 때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였다.

박흥원(朴興元)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다.

박철종(朴哲淙)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박세만(朴世萬)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에 이르렀다.

박팽제(朴彭齊) 조선조에 봉사(奉事)를 지냈다.

박의우(朴義佑) 조선조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박휘잠(朴輝岑) 조선(朝鮮) 때 문과(文科)에 급제,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박팽로(朴彭老) 조선조에 문과(文科)에 급제,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하였다.

박재세(朴載世)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박기춘(朴己春)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흥철(朴興哲) 자(字)는 명보(明甫). 조선조(朝鮮朝)에 문과(文科)에 급제, 공조 참의(工曹參議)에 이르렀다.

박승길(朴承吉)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오위장(五衛將)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