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삼척박씨시조(三陟朴氏),원경(元鏡),삼척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10 13:07 수정일 : 2018-12-12 11:2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삼척 박씨(三陟朴氏)의 시조(始祖) 원경(元鏡)은 신라 제5대 파사왕(破娑王)의 원손(遠孫)으로,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때 감찰(監察)을 거쳐 개성부윤(開城府尹)으로 홍건적(紅巾賊)의 침입 때 복주(福州:지금의 안동)로 피난가는 왕(王)을 호종(扈從)했고, 군사(軍士)를 모집하여 개경(開京)을 수복(收復)하는 데 공(功)을 세워 호종이등공신(扈從二等功臣)에 책록되었다.

그후 1365년(공민왕 14)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삼척부원군(三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지리산(智異山)으로 은거(隱居)하여 후학육성(後學育成)에 진력,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원경(元鏡)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삼척(三陟)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삼척(三陟)은 강원도(江原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실직국(悉直國)이었는데 102년(신라 파사왕 23)에 신라(新羅)에 합병되었다.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라 하였고, 경덕왕(景德王:제35대 왕, 재위기간:74:765) 때 삼척(三陟)으로 개칭되어 여러 차례 변천을 거듭한 후 1895년 지금의 삼척군(三陟郡)이 되었다.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방실(邦實:시조 원경의 현손)의 아들 3형제 대(代)에서 크게 3계통으로 갈라졌다.

방실(邦實)의 아들 3형제 중 맏아들 염(廉)은 조선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라 정헌공파(正憲公派)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둘째 자천(自芊)은 성종 때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고 효성(孝誠)이 지극하여 고종(高宗) 때 정려(旌閭)가 내려졌으며, 후손들이 그의 아호(雅號)를 따서 성재공파(省齋公派)로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셋째 아들인 간(澗)도 성종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병조 참의(兵曹參議)에 올라 후손들이 참의공파(參議公派)의 파조(派祖)로 받들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성종(成宗) 때 등과(登科)하여 청주 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지낸 산두(山斗)와 중종(中宗) 때 과거에 급제하고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 봉사(濟用監奉事)를 역임한 응성(應星)이 유명했으며, 현좌(賢佐)는 광해군(光海君) 때 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증직(贈職)되고 척흥군(陟興君)에 봉해졌다.

한편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한 여랑(汝樑)은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겸 춘추관(春秋館)의 기사관(記事官)을 거쳐 예․병․형 3조(曹)의 좌랑(佐郞)과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등을 지내고, 광해군(光海君)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으로 증직되어 척성군(陟城君)에 봉해졌으며, 윤종(胤宗)은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했고, 이백(而栢)은 인조(仁祖)때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봉직랑(奉直郞)으로 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을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숙종(肅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오른 익진(翊震)과 직제학(直提學) 진경(震卿)이 유명했고, 창기(昌基)는 철종조(哲宗朝)에서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떨쳐,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던 병택(炳澤)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삼척박씨는 남한에 5,77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삼척박씨조상인물

박자형(朴自亨) 고려 우왕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준제(朴準提) 조선 태조 때 과거에 급제(及第)하였고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다.

박방실(朴邦實) 조선조(朝鮮朝)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염(朴 廉) 조선 성종(成宗)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자천(朴自芊) 자(字)는 공무(公茂), 호(號)는 성재(省齋). 조선조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냈고, 효행이 지극하여 1890년(고종 27)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박간(朴 澗) 자(字)는 경보(敬甫). 조선(朝鮮) 성종조(成宗祖)에 과거(科擧)에 급제하여 통훈대부(通訓大夫)로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하였다.

박세영(朴世英) 조선(朝鮮)에서 직산 현령(稷山縣令)을 역임하였다.

박환(朴 芄) 자(字)는 여형(汝馨), 호(號)는 모헌(慕軒). 성종(成宗) 때 과거(科擧)에 급제하였고 문학(文學)과 덕망(德望)이 높았으며 효우(孝友)가 있어 1890년(고종 27)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박산두(朴山斗) 호(號)는 죽헌(竹軒). 성종(成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청주 병마절제사(淸州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박응성(朴應星) 중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승사랑(承仕郞)으로 제용감 봉사(濟用監奉事)를 지냈다.

박응선(朴應善) 자(字)는 성도(性道), 호(號)는 성주봉(聖主峰). 중종(中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박현우(朴賢佑) 자(字)는 보경(輔卿). 선조(宣祖) 때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박현좌(朴賢佐) 자(字)는 신경(信卿). 광해군 때 순충보조공신(純忠補助功臣)으로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운(朴 芸) 호(號)는 매호당(梅湖堂). 선조(宣祖)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직제학(直提學)에 추증되었다.

박현보(朴賢輔) 자(字)는 인우(仁友), 호(號)는 덕암(德菴). 조선(朝鮮)선조(宣祖)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박여주(朴汝舟) 자(字)는 도중(度仲), 호(號)는 성곡(省谷). 조선 때 종사랑(從仕郞)에 올랐다.

박여량(朴汝樑) 자(字)는 공알(公斡), 호(號)는 감수재(感樹齋). 선조(宣祖)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 겸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지냈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겸 지경연(知經 筵)․춘추관사(春秋館事)․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승종(朴承宗) 자(字)는 효숙(孝淑), 호(號)는 송헌(松軒). 선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부위부장(同知副衛部將)을 역임하였다.

박여상(朴汝尙) 자(字)는 숙강(淑綱), 호(號)는 문암(文巖). 선조(宣祖)때 과거(科擧)에 급제하였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되었다.

박윤종(朴胤宗) 자(字)는 종보(宗甫). 조선(朝鮮)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박윤형(朴胤亨) 자(字)는 하보(夏甫). 조선 선조(宣祖) 때 장사랑(將仕郞)으로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박윤경(朴胤庚) 자(字)는 계백(繼伯). 조선(朝鮮) 선조(宣祖) 때 승사랑(承仕郞)에 올랐다.

박이추(朴而樞) 조선(朝鮮)에서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역임하였다.

박이권(朴而權) 자(字)는 집중(執中). 조선 선조(宣祖)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박이백(朴而栢) 자(字)는 군식(君植), 호(호(號)는 습암(襲菴). 조선 선조(宣祖) 때 문의 현령(文義縣令)을 지냈고 인조(仁祖) 때 상의원 첨정(尙衣院僉正)에 천거되었다.

박이회(朴而檜) 자(字)는 군직(君直), 호(號)는 서강(西崗). 조선조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의영 직장(義盈直長)을 역임하였다.

박익진(朴翊震) 자(字)는 이륜(而輪). 숙종(肅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박홍진(朴弘震) 자(字)는 거경(擧卿), 호(號)는 춘계(春溪). 조선 숙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진경(朴震卿) 자(字)는 현필(賢弼), 호(號)는 매헌(梅軒). 숙종(肅宗)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박정림(朴廷霖) 자(字)는 척지(脊之), 호(號)는 행정(杏亭). 조선 숙종 (肅宗) 때 부사용(副司勇)을 지냈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정윤(朴廷胤) 자(字)는 봉경(鳳卿), 호(號)는 누계(杻溪). 조선조(朝鮮朝)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박정구(朴廷九) 자(字)는 경섭(敬攝), 호(號)는 옥천(玉川). 조선(朝鮮)숙종(肅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박기풍(朴基豊) 자(字)는 은중(殷中), 호(號)는 충암(沖岩). 조선 헌종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상만(朴尙萬) 자(字)는 복원(福源), 호(號)는 농은(農隱). 조선 숙종 (肅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박형순(朴亨純) 자(字)는 의겸(義兼). 조선 헌종(憲宗) 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창모(朴昌模) 자(字)는 사의(士義), 호(號)는 경암(敬菴). 조선 고종(高宗)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추증되었고, 효행이 지극하여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옥계리(玉溪里)에 정려(旌閭)와 비석이 세워졌다.

박영수(朴永秀) 자(字)는 중립(重立), 호(號)는 송암(松菴). 조선(朝鮮) 고종(高宗)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추증(追贈)되었다.

박창한(朴昌翰) 자(字)는 익보(益輔), 호(號)는 초은(樵隱). 1895년(고종32) 정려(旌閭)가 세워졌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이조 참의(吏曹參議)에 추증되었다.

박창수(朴昌壽) 자(字)는 성단(聖湍). 조선 고종(高宗) 때 장사랑(將仕郞)으로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박철주(朴哲柱) 자(字)는 원단(元湍), 호(號)는 지봉(芝峰). 조선 고종(高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직제학(直提學)에 추증되었다.

박채환(朴彩煥) 자(字)는 선화(善和). 조선에서 좌부승지(左部承旨)에 추증되었다.

박성환(朴成煥) 자(字)는 성균(成均), 호(號)는 도암(陶菴). 조선(朝鮮)때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