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노성박씨시조(魯城朴氏),박연(朴延),노성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9 17:50 수정일 : 2018-04-15 15:5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노성박씨(魯城朴氏)의 시조(始祖) 연(延)은 조선 개국(開國) 초에 감찰(監察)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천을(天乙)은 직장(直長)을지냈다. 그후 후손들이 노성(魯城)에 살면서 연(延)을 시조(始祖)로 하고 노성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노성(魯城)은 충청남도(忠淸南道) 논산군(論山郡)에 속해있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열야산현(熱也山縣)인데,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이산현(尼山縣)으로 개명하여 웅주(熊州)에 속하게 하였다.

1018년(현종 9)에는 공주(公州)에 합(合)하였고 조선(朝鮮) 때 다시 이산으로 하였으며 태종조(太宗朝)에 석성(石城)과 합하여 이성(尼城)이라 하다가 1416년(태종 16) 다시 나누고, 인조(仁祖) 때 연산(連山)․은진(恩津)을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 하였다.

그후 몇 차례 변화를 거쳐 정조(正祖) 때 노성현(魯城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895년(고종 32) 군(郡)이 되었다가 후에 그 땅을 나누어 소사면(素砂面)은 부여군(扶餘郡)에 합하고 나머지는 논산군에 편입시켜 노성면(魯城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종사랑(從仕郞) 흥적(興迪:시조 연의 증손)과 참봉(參奉) 의정(義貞)이 유명했고, 의정의 아들 만령(萬齡)과 억령(億齡)은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라 선무랑(宣務郞)으로 공신(功臣)에 책록된 덕령(德齡)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그외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를 호종(扈從)하여 공신(功臣)에 책록된 충남(忠男:천령의 아들)․경남(敬男) 형제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른 주철(周哲)이 유명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노성박씨(魯城朴氏)는 남한(南韓)에 75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노성박씨조상인물

박천을(朴天乙) 조선(朝鮮)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박흥적(朴興迪) 조선 때 종사랑(從仕郞)에 이르렀다.

박의정(朴義貞) 조선조(朝鮮朝)에 참봉(參奉)을 지내었다.

박만령(朴萬齡)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박억령(朴億齡)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박중령(朴重齡) 조선조에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박덕령(朴德齡)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박충남(朴忠男) 조선 때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록(策錄)되었다.

박경남(朴敬男) 조선(朝鮮) 때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책록되었다.

박주철(朴周哲) 조선조(朝鮮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