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강릉박씨시조(江陵朴氏),박순(朴純),강릉박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9 13:04 수정일 : 2018-02-21 21:40

시 조

강릉박씨(江陵朴氏)는 신라 제 5대 파사왕(破娑王)의 35세손 박순(朴純)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강릉박씨세보(江陵朴氏世譜)」에 의하면 그는 1174년(고려 명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1187년(명종 17)남경 유수(南京留守)로 병부 상서(兵部尙書) 조원정(曺元正)과 상장군(上將軍) 석린(石隣)의 모반(謀反)을 평정(平定)하는데 공(功)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신종(神宗) 때는 좌복야(左僕射)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져서 치사(致仕)하고 강릉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치니 후손들이 그를 시조(始祖)로 받들고 강릉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본관의 유래

강릉(江陵)은 강원도(江原道) 영동(嶺東)지방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본래 예국(濊國:1세기초에 임둔의 옛 땅에서 자립한 부족국가)의 도성지(都城地)였으며, 상고시대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했다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에 개칭하여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何瑟羅)라 하였다.

550년(진흥왕 11)에 신라(新羅)의 영토가 되어 선덕여왕(善德女王) 때 소경(小京)으로 삼았다가 태종무열왕조(太宗武烈王朝)에 하서주(河西州)로 개편, 경덕왕(景德王) 때는 명주(溟州)로 고쳤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세웠으며 940년(태조 23)에 다시 명주로 고쳤다.

성종(成宗) 때는 처음에 하서부(河西府)로 하다가 986년(성종 5)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로 개칭하고 뒤에 목(牧)으로 하였으며, 995년(성종 14) 지방행정구역을 10도(道)로 나눌 때 삭방도(朔方道)의 중심지가 되어 함경도를 비롯한 영동 일대와 영서(嶺西)의 춘천(春川) 이북 등지를 관할하였다.

1178년(명종 8) 연해명주도(沿海溟州道)로 개칭하고 원종조(元宗朝)에는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뒤에 강릉도(江陵道)로 충렬왕(忠烈王) 때 강릉부(江陵府)로 공민왕(恭愍王) 때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로, 우왕(禑王) 때 교주강릉도(交州江陵道)로 하다가 공양왕(恭讓王) 때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별호를 임영(臨瀛)이라 하였다.

조선(朝鮮) 태조조(太祖朝)에 강원도로 개칭되어 세조(世祖) 때 진(鎭)을 설치하였고, 1666년(현종 7) 원양도(原襄道)로 고쳐 강릉현(江陵縣)으로 강등되었으며, 정조(正祖) 때 원춘도(原春道)라 하다가 강릉부가 되었다. 1896년(고종 33) 13도제(道制) 실시로 강원도 강릉군(江陵郡)이 되어 21개 면(面)을 관할하다가 1931년 강릉면이 읍(邑)으로 승격되고, 1955년 9월 1일 성덕면(城德面)과 경포면(鏡浦面)을 편입하여 강릉시(江陵市)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박순의 아들 희(希)가 고종(高宗) 때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내고 원종조(元宗朝)에서는 종성 부사(鍾城府使)와 남경 유수를 지내며 선정(善政)을 베풀어 그가 죽은 후 장사지낼 때 고을 백성들이 소복을 입고 함께 슬퍼했다고 하며, 그의 아들 종태(從台)는 고종(高宗)의 장사 감무(長沙監務)와 남경 판관(南京判官)을 거쳐 충렬왕 때 민부 전서(民部典書)에 올라 크게 명성을 떨쳤다.

한편 순(純)의 현손(玄孫) 지계(之桂)는 공민왕(恭愍王)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 등과 함께 정사(政事)를 의논했으며, 그의 아들 5형제 중 넷째 자검(自儉)은 조선 세종(世宗)때 단천 군사(端川郡事) 겸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중종조(中宗朝)에 조광조(趙光祖) 등이 설치한 현량과(賢良科)에 유일(遺逸)로 천거된 신진사류(新進士類) 공달(公達:자검의 증손, 부승지 시행의 아들)과 수량(遂良:회양 교수 영근의 손자, 승휴의 아들)은 병조 좌랑(兵曹佐郞)과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를 각각 지내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관직에서 물러나 강릉으로 낙향(落鄕)하여 서로 술벗을 삼고 시(詩)를 즐기며 쌍한정(雙閒亭)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 외 갑산 부사(甲山府使)를 지낸 공수(公遂:평해 군수 시문의 아들)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낸 시룡(時龍:공수의 6세손)이 유명했고, 인순(仁淳:수량의 증손)은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당(棠)․종리(宗利:청풍 부사 억추의 증손)와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강릉박씨(江陵朴氏)는 남한에 15,86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박희(朴 希) 자는 극명(極明). 조선(朝鮮) 때 유수(留守)를 역임하였다.

박유철(朴惟轍) 조선조(朝鮮朝)에 영동정(令同正)을 지냈다.

박종태(朴從台) 자(字)는 중보(仲甫). 조선 때 전서(典書)를 지냈다.

박연(朴 演) 자(字)는 말백(末伯). 조선 때 전객령(典客令)을 지냈다.

박종인(朴宗仁) 자(字)는 성백(成伯). 조선에서 교수(敎授)를 역임하였다.

박지계(朴之桂) 자(字)는 문숙(文叔), 호(號)는 돈수(豚叟). 조선조(朝鮮朝)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박자신(朴自信) 조선 때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박자온(朴自溫)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자량(朴自良) 호(號)는 초수(樵叟). 조선(朝鮮)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박자공(朴自恭) 조선조에 예부 시랑(禮部侍郞)을 역임하였다.

박자검(朴自儉) 조선조(朝鮮朝)에 군사(軍事)를 지냈다.

박자신(朴自愼) 조선(朝鮮) 때 사간(司諫)을 역임하였다.

박자창(朴自昌) 자(字)는 덕순(德順), 호(號)는 우산(遇山). 조선조(朝鮮朝)에 부위(副尉)를 지냈다.

박중실(朴中實)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박중신(朴中信) 자(字)는 숙립(叔立). 조선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박중경(朴中敬)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박시원(朴始元) 조선 때 승지(承旨)를 지냈다.

박시창(朴始昌) 호(號)는 수암(修庵). 조선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박시형(朴始亨) 호(號)는 국포(菊圃). 조선 때 직제학(直提學)을 지냈다.

박시행(朴始行) 자(字)는 가원(可遠), 호(號)는 송계당(松桂堂), 시호(諡號)는 문헌(文憲). 조선(朝鮮) 때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였다.

박시문(朴始文) 자(字)는 자소(子昭).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박준(朴 浚) 조선조(朝鮮朝)에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박혁(朴 爀) 조선 때 직장(直長)을 역임했다.

박공달(朴公達) 자(字)는 대관(大觀), 호(號)는 사휴(四休). 조선조(朝鮮朝)에 좌랑(佐郞)을 역임하였다.

박태준(朴台俊) 자는 경천(景天), 호는 우암(寓庵). 조선 때 교리(校理)를 역임했다.

박장(朴 樟) 자는 성재(聖才). 조선 때 별제(別提)를 역임했다.

박수량(朴遂良) 1470 (성종 1) ~ 1552 (명종 7)

자는 군거(君擧). 호는 삼가정(三可亭). 단상법(短喪法)이 엄하던 연산군 때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여막(廬幕)에 살아 중종반정(中宗反正:1506) 후 고향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이 세워졌다. 이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7년간 용궁 현감(龍宮縣監), 이어 사섬시 주부(司贍寺主簿) 등을 지내고,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사직, 강릉에 돌아가 재종숙 박공달(朴公達)과 함께 시주(詩酒)로써 여생을 마쳤다.

박견(朴 堅) 자(字)는 자유(子柔). 조선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박지의(朴志誼) 자(字)는 윤문(允文). 조선 때 학자(學者)로 명성을 떨쳤다.

박후기(朴厚基) 조선 때 목사(牧使)를 지냈다.

박시룡(朴時龍) 자(字)는 가행(可行). 조선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박신립(朴信立) 자는 덕재(德載). 조선 (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박수주(朴壽柱) 자(字)는 일수(日叟). 조선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박인순(朴仁淳) 자는 경화(景和). 조선 때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였다.

박당(朴 棠) 자는 사백(思伯). 조선조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박진식(朴震栻) 자는 여직(汝直). 조선조(朝鮮朝)에 찰방(察訪)을 지냈다.

박종리(朴宗利) 자는 이지(利之).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박희도(朴熙道) 자(字)는 희언(希彦). 조선 때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박태승(朴泰昇) 자(字)는 순익(純益). 조선에서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박지승(朴智昇) 자는 원구(元九).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박기호(朴基鎬) 자(字)는 덕여(德汝). 조선 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박봉배(朴鳳培) 자는 중오(仲五). 조선(朝鮮) 때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박문수(朴文守) 자(字)는 영서(永瑞). 조선에서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박기동(朴起東) 자는 우옥(禹玉).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