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목천돈씨시조(木川頓氏)

작성일 : 2017-04-05 15:27 수정일 : 2018-04-15 14:2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목천(木川)은 충청남도 천원군(天原郡)에 속해 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인데 신라(新羅) 경덕왕 (景德王)이 대록군(大麗郡)으로 고쳤고. 고려조(高麗朝)에 와서 목주(木州)로 개칭하여 청주(淸 HJ)에 속하였다가 성종(成宗) 때는 별칭 (別稱)으로 신정 (新定)으로도 고쳤다. 조선 태종조(太宗朝)에 목천(木川) 으로 고쳐 현감(縣監)을 두었고, 1895년(고 종 32) 군 (郡)으로 승격되어 오다가 1913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이웃 병천군(並川郡)과 합하여 천안군(天安郡)에 속했으며 , 1963년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됨에 따라 천원군(天原 郡) 목천면(木川面)이 되었다.

돈씨(頓氏)는 중국 창오(蒼梧 : 지금의 광서성 창오현. 고대 순제가 죽었다고 전하는 곳) 출신으로 한(漢)나라 때 효자로 유명했던 돈기(頓琦)의 후예(後裔)로 전해진다. 그러나「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려 (高麗) 태조(太祖)가 후삼국(後三國)을 통일하고 고려를 창업하자 목천(木川)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순응(順應)하지 않고 자주 소란(驛亂)을 일으켜 태조가 그 곳 사람들에 게 동물의 이름으로 돈(頓) · 상(尙) · 우(禹) · 장(5章) 등 의 성(姓)을 가지게 했는데. 그 후손들이 돈(頓). 상(尙) · 우(禹) · 장씨(張氏)로 개성(改姓)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돈씨가보(頓氏家寶)」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조의 명성(名姓)인 을씨(乙氏)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 때부터 을지씨(乙支氏)로 개성(改姓)하였다가. 고려 인종(仁宗) 때 묘청(妙淸)의 난(亂)에 의병장(義兵將)으로 서경(西京)을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을지수 (乙支遂). 을지달(乙支達), 을지원(乙支遠)이 돈산백(頓山伯)에 봉해지고 돈뫼(頓山)를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아 그 곳에서 누대로 세거(世居)해 오면서 성(姓)을 돈씨(頓氏)로 개성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의 조방장 (助防將)인 돈정신(頓貞臣)은 을지수(乙支遂)의 17대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묘청(妙淸)의 난(亂) 때 공을 세웠다 는 을지수 · 을지달 · 을지원에 대한 기록이 사기(史記)에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은 돈 뫼(頓山)의 지명이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확성이 없다고 한다.


인 구

근대에 와서 돈씨는 1930년 국세조사(國稅 調査) 당시 평남(平南) 대동(大同)과 강서 (江西)를 비롯하여 황해도 (黃海道) 안악(安岳), 황주(黃州)에 36가구가 있었고.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에 8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