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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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04-05 14:19 수정일 : 2018-01-31 09:10

성주도씨유래(연원)

도씨의 수성시조는 중국 전한 때의 휘 계이다. 한나라 남월(주장강 남방지역)의 재상인 여가가 왕 건덕과 함께 한조를 거역하여 반란을 일으키니(원정 5, 기원전 112) 월랑 도계는 복파장군 로박득과 루선장군 양복과 남월군의 강복을 받고 특히 여가를 잡은 공으로 임채후에 봉하고, 그의 아들 휘 양은 대를 이어 임채후가 되었다.

도씨는 단일본으로 옛 신라시대 수창군 4현의 중심지였던 팔거현(, 대구 북구 읍내동 일원)에 지배계층인 대표적 씨족 집단이었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명망이 있는 지방호족장인 도진 선조께서 건국공신으로 식채지 800 경의 하사 및 칠곡(일운 성산) 부원군에 봉하여 짐으로서 관향의 시조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팔거도씨로 통칭하였다.


1752년 대동보를 편찬할 때 종회의 결의로써 당시 팔거현이 속한 성주목의 지명을 따서 성주도씨로 개칭하였다. 고려중기 이전의 세계가 명확하지 아니하여 고려 명종조에 전리상서 도순 선조를 기세시조로 삼으며 이후 고려 말까지 대를 이어 문무관직에 진출함으로써 명문으로서 크게 번성하였다.

조선이 개국되는 왕조 교체기에는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켜 벼슬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학문과 적덕에 전염하였으며, 중기이후로 각 세거지마다 문운이 크게 떨쳐 여러 등과자가 배출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국난에 즈음하여서는 구국의 선봉으로 활약하여 공신으로 록훈된 분도 많다.

학덕으로서 선현으로 추앙된 분의 원사와 효행과 열행으로 알려진 분들의 정여가 전국 여러 곳에 있으며, 그 아름다운 행적들은 사서 등 많은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 선조들의 충․효․열의 전통과 올곧은 선비정신을 자손만대 유구히 발전적으로 계승코자 오늘의 후손들은 다짐하여 실천한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성주도씨는 남한에 53,06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주도씨조상인물

고구려시대 인물

도조 : 중국 전한의 서울이던 장안에서 동가강상류의 부여로 건너 왔으며 고구려 첫 임금인 동명성왕의 맞아들 유리가 그 아버지를 찾아 송화강 류역 졸본으로 갈 때 도조․옥지․구추 삼인이 함께 들어갔는데, 그 해 동명성왕이 서거하니 유리와 이복 동생 비류․온조 등과 왕권 쟁탈 싸움을 벌일 때 도조 등은 유리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하여 정국치민한 공이 매우 컸음.

백제시대 인물

도미 : 백제 4대 임금 개루왕(128-166)때의 정승급의 고관(도미부인 정절에 대한 것은 열부편에 설명함).

신라시대 인물

도도 : 신라 24대 진흥왕(540-575)때의 비장으로 삼년산군(보은) 고간(지방관직 경직에 비하면 제구등관 급 창)이었다. 라제동맹을 파기한 신라가 한강 류역을 점령하자, 백제 26대 성왕이 신라의 관산성(옥천)을 공략하고, 도도는 무력장군(김유신의 조부)의 비장으로서 백제군을 공격하여 성왕을 죽이고, 좌평 4 명과 군졸 3 만여명을 참살.

고려시대 인물

도진 :.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940)할 때 명망있는 지방 호족장으로서 건국과 통일에 수훈한 개국 공신으로 칠곡부원군에 봉하고 벼슬과 식채지 800 경을 하사함으로써 득관의 시조로 삼는다.

도순 : 고려 고종(1214-1259)때의 전리상서이고 성주도씨의 기세조(일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