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밀양당씨시조(密陽唐氏),당성(唐誠),밀양당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5 13:57 수정일 : 2018-04-13 12:33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당씨(唐氏)는 중국 진 양(晋陽 : 산서성 기영도)에서 계출(系出)된 성씨(姓氏)로서 본래 도당씨(陶唐氏 : 제요를 일컫음)의 후예(後裔)가 당(唐)나라 제후(諸侯)에 봉해져서 나라 이름을 성(姓)으로 삼은 것이 시초(始初)가 된다고 한다.

「밀양당씨세보(密陽唐氏世譜)」에 의하면 우리나라 당씨(唐氏)는 위(魏)나라 때 대부(大夫)였던 당저(唐雎)의 후손으로, 송(宋)나라 휘종조(徽宗朝 : 북송의 8대 임금, 제위기간 : 1101~1125)에서 승상(丞相)에 올랐던 당각(唐恪)의 7세손 당성(唐誠)이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으로 원(元)나라 말기에 동래(東來)하여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그는 조선개국(朝鮮開國) 초에 공조 전서(工曹典書)로서 외교문서(外交文書)를 전담관장(傳擔管掌)하였고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어 녹권(錄券)과 상전(賞田) 15결(結)을 하사(下賜)받았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로 개성 유수(開城留守)를 거쳐 공안부윤(恭安府尹)에 이르러 밀양(密陽)을 사적(賜 籍)받아 본적(本籍)을 밀양으로 하게 되었다.

밀양(密陽)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하 였으며,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 제23대 왕, 재위기간 : 514~540)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조(高麗朝)에 와서는 995년(성종 16)에 밀주(密州)로 하였고, 1390년(공양왕 2) 밀양부(密陽府)로 승격, 그후 여러 차례의 변천을 거듭하다가 1895년 밀양군(密陽郡)으로 개칭하였다.

특시 당성(唐 誠)은 학문에 정통(精通)하여 문명을 떨쳤으며, 야사(野史)의 기록에는 태종(太宗) 때 영의정(領議政)에 오른 성석린(成石璘)을 위기에서 구해준 일하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고려 말에 왜구(倭寇)가 승천부(昇天府 : 강화도)에 침입했을 때 이를 격퇴시키고 개선한 양백연(楊伯淵)이 법률(法律)을 어기어 죽음을 당하자 막료(幕僚)로 있던 성석린이 연루되었는데, 도통(都統) 최 영(崔瑩) 장군이 “반드시 죽여야 한다”거히지 사평부평사 (司評府評事)로 있던 당 성이 말하기를 “죄(罪)는 법(法)에 맞게 다스리는 것인데, 법문이 이와 같거늘 법률을 고치라 하니 법률이 먼저요? 공(公)이 먼저요?” 하면서 성석린의 억울함을 알고 가볍게 다스렸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한 성석린은 당성이 세상을 뜨자 매우 슬퍼하며 “생전에 마땅히 갚아야 할 은혜를 죽었다고 어찌 잊을 것인가, 일생동안 다 못 갚아 죽어도 못 잊겠네” 라고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예부 상서(禮部尙書) 박정수(朴廷秀)의 손녀를 아내로 맞이한 당성은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는데, 맏아들 몽현(夢賢)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역임했고, 차남 몽량(夢良)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여 가맥(家脈)을 이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원사공(院使公) 몽현(夢賢)의 손자 유징(有徵)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 3형 제가 뛰어났다. 맏아들 언우(彦佑)는 상호군(上護軍)을 지냈고, 둘째 언필(彦弼)은 무과에 급제하여 경원 도호부사(慶源都護 府使)를 역임했으며, 막내 언량(彦良)은 무과에 올라 수문장(守門將)이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무공(武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어 크게 명성을 떨쳤다.

한편 동추공(同樞公) 몽량(夢良)의 후손에서는 세종(世宗) 때 출생하 여 충좌위 부사과(忠佐衛副詞果)를 지낸 효원(孝元 : 몽량의 맏아들)과 그의 아들 적(勣 : 통훈대부로 삭녕 군수를 지냄)이 유명했으며, 윤문(允文)은 중종(中宗) 때 생원시(生員試)를 거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과 봉상시정(奉常寺正), 사복시정(司僕寺正) 등을 지냈다.

그밖의 인물로는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된 득흥(得興)과 계흥(繼興)이 뛰어났고 대호군(大護軍)을 지낸 윤흥(胤興)은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 호건(好健),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 건(健), 학자(學者) 후민(厚民),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국(國)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당씨(唐氏)는 남한에 1,01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밀양당씨조상인물

당몽현(唐夢賢) 자(字)는 은보(殷輔). 조선조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중추원사(中樞院使)을 역임하였다.

당몽량(唐夢良) 자(字)는 은필(殷弼). 조선 때 간선대부(嘉善大夫)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당효명(唐孝明) 자(字)는 백원(百源). 조선 때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참봉(參奉)을 지냈다.

당효달(唐孝達) 자(字)는 선양(善養). 조선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봉사(奉事)를 지냈다.

당효리(唐孝利) 초명(初名)은 효리(孝理), 자(字)는 여례(汝禮). 조선 성종조(成宗朝)에 음보(蔭補)로 선무랑(宣務郞)에 올라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를 역임했다.

당효량(唐孝良) 초명(初名)은 효제(孝悌), 자(字)는 여량(汝良). 조선 성종조(成宗朝)에 효행(孝行)으로 정암(靜唵) 조광조(趙光祖)의 추천으로 천거(薦擧)되어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선공감 판관(繕工監判官)에 오르고 이어 무장 현감(茂長縣監)에 임명되었으나 부임치 않았다. 1487년(선종 18) 금구 현령(金溝縣令) 겸 전주진관 병마절제도위(全州鎭管兵馬節制都慰)를 거쳐 연광 군수(靈光郡守)에 이르렀다.

당효원(唐孝元) 자(字)는 백춘(伯春). 조선조에 충좌위 부사과(忠佐衛副詞果)를 지냈다.

당효형(唐孝亨) 자(字)는 계통(季通). 조선(朝鮮) 때 가정대부(嘉靖大夫)에 올랐다.

당유징(唐有徵) 조선(朝鮮)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영광 군수(靈光郡守)를 지냈다.

당직(唐 稷) 자(字)는 공식(公植), 호(號)는 계양산인(桂陽山人). 조선 때 음보(蔭補)로 현령(縣令)을 거쳐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詞直)을 역임하였다.

당적(唐 勣) 자(字)는 성공. 조선 성종(成宗) 때 주부(主簿)를 거쳐 연산조(燕山朝)에 삭녕 군수(朔寧郡守)를 역임, 재임중 목민관(牧民官)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군민(郡民)의 칭송을 받았다.

당언우(唐彦佑) 조선 때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당언필(唐彦弼)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경원 도호부사(慶源都護府使)를 지냈다.

당언량(唐彦良) 조선(朝鮮) 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당윤온(唐允溫) 자(字)는 여화(予和).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당윤량(唐允良) 자(字)는 자정(子正). 조선(朝鮮)에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당윤공(唐允恭) 자(字)는 경지(敬之). 조선조에 효심(孝心)이 극진하였고, 참봉(參奉)을 지냈다.

당윤검(唐允儉) 자(字)는 약지(約之). 조선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당윤양(唐允讓) 자(字)는 양지(讓之). 조선조에 장악원 주부(掌樂院主簿)를 역임하였고, 학문으로 문명(文名)이 높았다.

당윤휴(唐允休) 조선조에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역임하였다.

당윤문(唐允文) 자(字)는 성장(성장), 호(號)는 정재(靜齋). 조선 중종(中宗) 때 생원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하고, 사성(司成), 시정(寺正)등을 지냈다.

당복흥(唐復興) 자(字)는 선초(善初). 조선조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錄勳), 병사(兵使)를 지냈다.

당득흥(唐得興) 조선조에 대호군(大護軍)에 오르고, 진무원종공신(振武原鍾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당계흥(唐繼興)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고,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책록(策錄)되었다.

당윤흥(唐胤興)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용양위 대호군(龍衛大護軍)에 올랐다.

당헌(唐 憲) 자(字)는 여도(汝度). 조선 때 내금위 부사과(內禁衛副詞果)를 역임하였다.

당득귀(唐得龜) 자(字)는 국서(國瑞).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내금위(內禁衛), 용양위(龍 衛)의 사과(司果)를 지내고,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 금구 현령(金溝縣令)을 역임하였다.

당호준(唐好俊) 자(字)는 사영(士英). 조선조에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당호건(唐好健) 자(字)는 이강(而强). 조선 때 사재감 첨정(司宰監僉正)을 지냈다.

당세창(唐世昌) 조선 때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을 지냈다.

당흘(唐 屹) 자(字)는 여앙(汝仰). 조선에서 무과(武科)에 합격,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당건(唐 健) 자(字)는 여운(汝運). 조선 때 무과(武科)에 합격, 훈련원 부정(訓鍊院副正)을 역임하였다.

당후민(唐厚民) 자(字)는 순원(淳源), 호(號)는 장담(長潭). 조선조(朝鮮朝)에 학자였다.

당석조(唐碩조) 조선조에 선무랑(宣務郞)으로 찰방(察訪)을 지냈다.

당국(唐 國) 조선 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