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밀양노씨시조(密陽魯氏),노중연(魯仲連),밀양노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3 19:29 수정일 : 2018-04-15 11:5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밀양노씨(密陽魯氏)의 선계(先系)는 전국시대 제(薺)나라 사람인 노중연(魯仲連)으로 전한다.「사기(史記)」에 의하면 노중연은 위(魏)나라와 조(趙)나라가 진시황(秦始皇) 을 제(帝)로 모시려 할 때 “차라리 동해(東海)물에 빠져 죽을지언정 진(秦)을 제(帝)로 모신다는 말은 듣기를 원치 않는다” 하며 반대하여 진시황을 축출(逐出)하는데 공을 세웠다 한다.

우리나라 노씨는 노중연의 손자 노 계(魯 啓)가 기자(箕子)가 동래(東來)할 때 함께 조선에 들어와 강화(江華)에 정착(定着)하여 연원(淵源)을 이루게 되었다. 그후 그의 원손(遠孫)인 노형권(魯衡權)이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지내고 홍건적(紅巾賊)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밀산(密山 : 밀양의 옛 지명)군(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시조(始祖) 노중연(魯仲連)으로 하고, 형권(衡權)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관향(貫鄕)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世界)를 계승하여 왔다.

밀양(密陽)은 경상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원래 삼한시대(三韓時代)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하 였으며,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 제23대 왕, 재위기간 : 514~540) 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도었다. 고려 때 와서는 995년(성종 16)에 밀주(密州)로 하였고,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고양왕(恭讓王 : 제34대 왕, 제위기간 : 1389~1392) 때 밀양(密陽)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형권의 아들 서(恕)가 조선조에 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서의 손자 복(馥)은 외직인 군수(郡守)를 역임하여 참의(參議)를 지낸 요좌(堯佐 : 군수 복의 아들), 참판(參判) 식(植 : 참의 요좌의 아들)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그밖에 사재판사(司宰板事) 천보(天輔)의 아들 의(誼)가 밀직사(密直使)를 지냈고, 오위장(五衛將) 공보(公輔)의 아들 3형제 중 장자 겸(謙)은 통훈대보(通訓大夫)에 올랐으며, 차남 찬(讚)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여 가통(家統)을 살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밀양노씨(密陽魯氏)는 남한에 총 77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밀양노씨조상인물

노형권(魯衡權) 고려(高麗) 때 공조 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였다.

노서(魯 恕)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노복(魯 馥) 조선(朝鮮)에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노요좌(魯堯佐)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노식(魯 植)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노숙(魯 橚)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노천보(魯天輔) 조선(朝鮮)에서 사재판사(司宰板事)를 역임하였다.

노공보(魯公輔) 조선(朝鮮)에서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노세보(魯世輔) 조선(朝鮮)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노열(魯 說)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노천민(魯天民)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노학(魯 鶴) 조선(朝鮮) 때 제학(提學)을 역임하였다.

노인(魯 認) 조선(朝鮮)에서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노득귀(魯得貴)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노복선(魯福善) 조선(朝鮮) 때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노봉동(魯鳳東) 자(字)는 봉룡(鳳龍). 조선(朝鮮) 때 군자감(軍資監)을 지냈다.

노태호(魯泰浩) 조선(朝鮮)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노섭옥(魯燮玉) 자는 응섭(應燮).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