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개성내씨시조(開城乃氏),내득균(乃得均),개성내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4-03 11:14 수정일 : 2018-04-14 21:3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내씨(乃氏)의 선계(先系)는「삼국사기(三國史記)」와「동사강목(東史綱目)」에 신라(新羅) 소지왕(제21대 왕, 재위기간 : 479~500)의 비(妃)인 선혜부인(善兮夫人)이 이벌찬 내 숙(乃 宿)의 딸로 기록되어 있고,「고려사(高麗史)」에는 충혜왕(忠惠王 : 제28대 왕, 재위기간 : 1330~1332, 1339~1344)의 사부(師傅 : 고려 때 세자와 세손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정1품 품계)가 내 원(乃 圓)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된 씨족(氏族)으로 추정되나 오늘날 내씨(乃氏)와의 관계는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전하지 않아 정확히 상고(詳考)할 수 없다.

내씨(乃氏)는 조선개국(朝鮮開國) 초에 망국의 한을 달래며 절의(節義)를 지켰던 고려 왕씨(高麗王氏) 일족을 숙청(肅淸)할 때 화(禍)를 면하기 위하여 내씨(乃氏)로 변성(變姓)하고 관향(貫鄕)을 개성(開城)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병란(兵亂) 등으로 보첩(譜牒)과 문헌이 실전(失傳)되어 소목(昭穆)을 밝히지 못하여 조선(朝鮮) 현종조(玄宗朝)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내득균(乃得均 : 일명 득선)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繼代)하고 있다.

개성(開城)은 경기도(京畿道) 북서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려(高麗)의 수도(首都)였으며, 처음에는 송악군(松岳郡)․송도(松都)․개경(開京)․부소갑(扶蘇岬)․동비홀(冬比忽)․촉막군(蜀莫郡) 등으로 불리웠다.

919년(고려 태조 2) 1월 수도를 철원(鐵原)에서 이 곳 송악산(松岳山) 남쪽으로 옮긴 후 개성(開城)과 송악(松岳)을 합쳐 개주(開州)라 불렀고, 960년(광종 11) 황도(皇都)로, 995년(성종 14)에는 개성부(開城府)로 고쳤다.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906년 개성군이 되고, 1949년 시제(市制) 실시에 따라 개성시(開城市)가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일세조 득균(得均)의 아들 용익(鎔翊)이 1655년(효종 6)에 출생하여 숙종(肅宗)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장호(章澔)는 영조(英祖) 때 동지중추부사에 오르고, 슬하에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이들 모두가 현달(賢達)하여 개성 내씨의 3대 산맥(山脈)을 이루었다.

개성 내씨는 장호의 아들 3형제 대(代)에서 크게 번성하여 장호의 아들 3형제 중 장남(長男) 정원(楨元)은 선조의 대(代)를이어 동지중추부사에 올랐으며, 차남 정빈(楨彬)은 1777년(정조 1)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막내 정성(楨成)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그외 인물로는 용익(鎔翊)의 증손(曾孫) 홍섭(弘燮)․경섭(慶燮)․몽섭(夢燮)이 모두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했고,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오른 재욱(在郁)․재한(在漢)․재렴(在廉) 등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학륜(學崙 : 재한의 손자)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근래에 와서 개성 내씨는 전국에 산거(散居)하고 있는 성손(姓孫)들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후손 성규(星圭)를 비롯한 문중(門中) 대표들이 뜻을 모아 족보 편찬(族譜編纂)을추진중에 있으며, 1988년 4월 5일에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오도리(京畿道坡州郡交河面吾道里)에 위치한 일세조(一世祖)의 묘역을 단장하고 묘비(墓碑)를 건립하였다.


인 구

2000년 국세조사(國稅調査) 당시 서울을 비롯한 경기도와 충남 천원(忠南天原), 황해도 봉산(黃海道鳳山), 함북 청진(咸北淸津) 등지에 85가구가 있었으며,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29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曆代人物)-개성내씨조상인물

내용익(乃鎔翊) 일명 익(翊).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정원(乃楨元) 자(字)는 원필(源弼). 조선조(朝鮮朝)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추증(追贈)되었다.

내정빈(乃楨彬) 일명(一明) 성빈(聖彬).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홍섭(乃弘燮)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경섭(乃慶燮) 자(字)는 선문(先文).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몽섭(乃夢燮)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재욱(乃在郁) 조선조에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내재한(乃在漢) 자(字)는 광엽(光葉).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다.

내재렴(乃在廉) 자(字)는 여관(餘冠). 조선 때 선략장군에 이르렀다.

내영진(乃永鎭) 조선조(朝鮮朝)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내학륜(乃學崙) 자(字)는 윤심(允心). 조선조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내성규(乃成奎) 조선(朝鮮)에서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