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희천김씨시조(熙川金氏),김우(金佑),희천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1:52 수정일 : 2018-04-04 21:47

시조 및 본관의유래

신라종성(新羅宗姓)으로 선산 김씨(善山金氏)에서 갈려진 희천 김씨(熙川金氏)는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로 일선군(一善君)에 봉해진 김 추(金 錘)의 셋째 아들 김우(金佑)가 고려(高麗) 강종(康宗 : 제22대 왕,재위기간 : 1211~1213)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나라에 공(功)을 세우고 신호위 대장군(神虎衛大將軍)에 올라 온양군(溫陽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온양(溫陽)으로 하였다.

그러나 13세손 김 우(金 宇)가 조선조(朝鮮朝)에서 왕자(王子)의 난(亂)을 평정(平定)하는 데 공(功)을 세워 희천군(熙川君)에 봉군되었으므로 그를 중조(中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희천(熙川)으로 개관(改貫)하게 되었다.

희천(熙川)은 평안북도(平安北道)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영토였으나 발해(渤海)를 거쳐 오랫동안 여진족(女眞族)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고려 초(高麗初)에 수복되어 청색진(淸塞鎭)이라 하였다.

1217년(고종 4) 서희(徐 熙)가 거란(契丹)의 침공을 막아 위주방어사(威州防禦使)로 승격되었는데 후에 서희의 이름을 따서 희주(熙州)로 고쳐 개주(价州 : 개천) 현감(縣監)이 겸하게 되었으나 1413년(태종 13) 희천(熙川)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호조 전서(戶曹典書) 영비(英庇)의 아들인 우(宇)는 무예(武藝)에 뛰어났고, 태종(太宗)과의 잠저(潛邸) 때 친분으로 태종의 즉위와 더불어 공신(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슬하에 유지(有智 : 예조 참판을 역임)․존신(存信 : 군수를 역임)․유절(有晢 : 공조 참판을 역임)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문(家門)을 일으켰다.

우(佑)의 7세손 용(用)은 고려조(高麗朝)에 광정대부(匡靖大夫)에 이르렀고, 우(宇)의 현손(玄孫) 백순(伯醇)은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친 후 외직으로 나가 수원군수(水原郡守)와 의주 목사(義州牧使)를 역임하며 치적(治蹟)으로 이름이 났으나 서북 출신이라 재상(宰相)의 반열에 오를 수 없었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낸 백균(百均)과 부사(府使) 낙(洛), 현감(縣監) 엄(渰), 병조 참의(兵曹參議) 서진(瑞震), 감찰(監察) 양수(養秀) 등이 유명했고, 익환(益煥)은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여 호조 판서(戶曹判書) 흥순(興順)과 함께 이름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희천김씨(熙川金氏)는 남한(南韓)에 3,221명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희천김씨조상인물

김용(金 用) 조선(朝鮮) 때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김인(金 仁) 조선 때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하였다.

김복태(金福泰) 조선(朝鮮) 때 중랑장(中郞將)을 역임하였다.

김진(金 振) 조선(朝鮮)에서 판예빈시사(判禮賓寺事)를 역임하였다.

김양익(金良益) 조선조에 찬성사(贊成事)를지냈다.

김영비(金英庇) 조선 때 예조 전서(禮曹典書)․문하시중(門下侍中) 등을 역임하였다.

김우(金 宇) 조선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유지(金有智) 조선 때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존신(金存信) 조선에서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유절(金有晢) 조선 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인문(金仁門) 조선조(朝鮮朝)에 도승지(都承旨)를 지냈다.

김총(金 聰)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지냈다.

김일취(金日就)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역임하였다.

김백순(金伯醇) 1494 (성종 25) ~ 1548 (명종 3)

자는 순지(淳之), 총(聰)의 아들. 1519년(중종 14) 생원(生員), 1528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이 된 후 함경도․경상도의도사(都事)를 거쳐 호조․공조의 정랑(正郞), 수원 군수(水原郡守)․사예(司藝)․대동도찰방(大同道察訪)․인산진 첨절제사(麟山鎭僉節制使)를 역임, 1545년(인종 1) 의주 목사(義州牧使)가 되고, 승지 (承旨)에 이르렀다.

김중순(金仲醇)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극희(金克熙)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규(金 戣)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역임하였다.

김전(金 전) 조선조(朝鮮朝)에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김정(金 鼎) 조선 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준계(金遵階) 조선(朝鮮) 때 훈련대장(訓鍊大將)을 역임하였다.

김준폐(金遵陛)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연(金 演) 조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김백균(金百均) 조선 때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지냈다.

김혁(金 爀) 조선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락(金 洛)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지냈다.

김형(金 浻)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신(金 新)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여성(金麗成) 조선 때 군자첨정(軍資僉正)을 지냈다.

김서진(金瑞震) 조선에서 병조 참의(兵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표(金 彪)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빈(金 彬)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수범(金秀範) 조선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충남(金忠男)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호(金 皥) 조선에서 성균박사(成均博士)를 지냈다.

김일(金 鎰) 조선(朝鮮) 때 좌랑(佐郞)을역임하였다.

김여흠(金汝欽) 조선에서 좌윤(左尹)을 지냈다.

김귀영(金貴榮) 조선 때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연기(金璉奇) 조선 때 도정(都正)을 역임하였다.

김양수(金養秀) 조선에서 감찰(監察)을 지냈다.

김운기(金運奇) 조선조(朝鮮朝)에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정구(金廷龜) 조선 때 의금부사(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동채(金東彩)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상문(金相文) 조선(朝鮮) 때 의금부사(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만중(金萬重)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김택실(金澤實) 조선에서 좌승지(左承旨)를역임하였다.

김종철(金宗哲) 조선 때 병조 참의(兵曹參 議)를 지냈다.

김진희(金鎭熙) 조선 때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김정희(金鼎熙)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였다.

김익환(金益煥) 조선조(朝鮮朝)에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기혁(金基赫) 조선에서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지냈다.

김기방(金基邦) 조선 때 호조 참판(戶曹參 判)을 지냈다.

김기환(金基煥) 조선(朝鮮) 때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성규(金聖奎) 조선 때 호조 참의(戶曹參 議)를 지냈다.

김기술(金基述) 조선조에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흥순(金興順) 조선(朝鮮) 때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순석(金淳錫)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를 지냈다.

김영풍(金永豊) 조선 때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영상(金永常)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