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홍주김씨시조(洪州金氏),김인의(金仁義),김순(金珣),홍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1:37 수정일 : 2018-04-15 11:3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홍주김씨(洪州金氏)는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동원(同源)이면서도 세계(世系)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첫째 계통은 경순왕(敬順王)의 여섯째 아들로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진 김 건(金 鍵)의 후손 김인의(金仁義)가 조선조(朝鮮朝)에서 의령 군수(宜寧郡守)를 지내고 덕천 군수(德川郡守)가 되어 임지(任地)로 갈 때 자손(子孫)들이 따라가서 철산(鐵山)․벽동(碧童)․강계(江界)․용천(龍川) 등지에 살면서 조상(祖上)의 연고지(緣故地)인 홍주(洪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였다.

다른 한 계통은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으로 전(傳)하는 김순(金珣)을 태천파(泰川派)의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繼代)하는 계통이다.

홍주(洪州)는 충청남도(忠淸南道) 홍성군(洪城郡)에 있었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운주(運州)인데 고려(高麗) 성종(成宗)이 단련사(團練使)를 두었고, 현종(顯宗) 때는 지홍주사(知洪州事)를 두었다가 뒤에 홍주(洪州)로 고쳤다.

조선(朝鮮) 세종조(世宗朝)에는 이곳에다 진(鎭)을 설치했다가 홍양현(洪陽縣)으로 강등하였으며 고종(高宗) 때 군(郡)이 되었으나 1913년 홍성군(洪城郡)에 속한 홍성면(洪城面)으로 고쳐졌다.


대표적인 인물

가맥(家脈)을 계승한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인의(仁義)의 후손에서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상주 영장(尙州營將)을 지낸 효공(孝恭)과 군자감(軍資監)을 역임한 언수(彦壽 : 효공의 손자)가 유명했으며, 수문장(守門將) 윤렴(潤濂)의 아들 진성(振聲)과 진탁(振鐸) 형제는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여 판결사(判決事) 중국(重國)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태천파(泰川派)에서는 부사(府使)를 지낸 건(騫)과 어모장군(禦侮將軍) 대신(大臣)이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른 세 번(世番)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홍주김씨(洪州金氏)는 남한(南韓)에 8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홍주김씨조상인물

〈관서파(關西派)〉

김효공(金孝恭) 조선에서 상주 영장(尙州營將)을 지냈다.

김인공(金仁恭)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언수(金彦壽) 조선조(朝鮮朝)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김한남(金漢南) 조선에서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김의로(金義老) 조선(朝鮮) 때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김 정(金 釘) 조선 때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인경(金仁景) 조선에서 좌부 천총(左部千摠)을 역임하였다.

김윤렴(金潤濂) 조선조(朝鮮朝)에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김진성(金振聲)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진탁(金振鐸)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유남(金有男)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택룡(金澤龍) 조선조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중국(金重國) 조선 때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하였다.

〈태천파(泰川派)〉

김 건(金 騫)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대신(金大臣) 득기(得錡)의 아들. 조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여숭(金汝崇)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응현(金應鉉) 조선에서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성옥(金聲玉)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세번(金世番) 조선조(朝鮮朝)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윤국(金閏國) 조선에서 수문장(守門將)을 지냈다.

김순국(金順國)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