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해풍김씨시조(海豊金氏),김숭선(金崇善),해풍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1:31 수정일 : 2018-02-27 14:3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해풍(海豊)은 경기도(京畿道) 개풍군(開豊郡)의 옛 지명(地名)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정주(貞州)를 고려(高麗) 예종(睿宗 : 제16대 왕, 재위기간 : 1105~1122) 때 승천부(昇天府)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가 1310년(충선왕 2) 해풍군(海豊郡)으로 개칭하였다. 그후 1442년(세종 24) 이웃 덕수현(德水縣)과 합하여 풍덕(豊德)으로 고쳤으며, 1930년에 개성(開城)의 개(開)자와 풍덕(豊德)의 풍(豊)자를 따서 개풍군(開豊郡)으로 하였다.

해풍김씨시조(海豊金氏 始祖) 김숭선(金崇善)이 고려조(高麗朝)에서 예부상서(禮部尙書)와 병부전서(兵部典書)를 지내고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해풍(海豊)으로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일찍이 고려(高麗)의 도성(都城)인 개경(開京)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지방(京畿地方)에서 무반(武班)의 지위를 굳혀 온 해풍 김씨(海豊金氏)는 시조(始祖)의 아들 천일(天一 : 지후를 역임)과 손자(孫子) 대(岱 : 문하찬성사), 증손(曾孫) 재인(在人 : 감무를 역임)이 고려조에서 명성을 떨쳤고, 대사헌(大司憲) 장(樟)의 맏아들 수종(壽宗)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길주 목사(吉州牧使) 겸 길주진관 병마첨절제사(吉州鎭管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하여 가통(家統)을 이었다.

한편 효행(孝行)이 뛰어나 〈절효처사(節孝處士)〉로 이름났던 시창(始昌)은「삼강록(三綱錄)」에 올랐고 황간(黃澗)의 모현서원(慕賢書院)과 금산(金山)의 경렴서원(景濂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영(煐)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 금위대장(禁衛大將 : 금위영의 종2품 무관직 으뜸벼슬)에 올랐다.

숙종(肅宗)과 영조(英祖) 때의 문신(文臣)인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의 문하(門下)에서 학문을 연마했던 상진(相進)은 학행(學行)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건(鍵)은 철종(哲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1868년(고종 5) 정헌대부(正憲大夫)로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올라 어영대장(御營大將 : 어영청의 종2품 으뜸벼슬)을 겸임하였다.

한말(韓末)에 와서는 연방(然昉)이 왜적(倭賊)에 항거하여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장렬하게 순절하여 충절(忠節)의 무신(武臣) 집안인 해풍 김씨를 더욱 빛냈다.

특히 해풍 김씨(海豊金氏)는 지명(地名)의 변천과 종문(宗門)간의 연락 두절로 동일 시조하(始祖下)에서도 제파(諸派)가 해풍(海豊)․덕수(德水)․정주(貞州) 등으로 칭관(稱貫)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최근에 대종회(大宗會)를 창립(創立)하고 문중(門中)의 결속을 다지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모든 성손(姓孫)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라고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해풍김씨(海豊金氏)는 남한(南韓)에 10,93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해풍김씨조상인물

김천일(金天一) 고려조(高麗朝)에 지후(祗候)를 역임하였다.

김 대(金 岱) 고려(高麗) 때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역임하였다.

김재인(金在人) 고려조에 감무(監務)를 지냈다.

김 천(金 釧) 고려(高麗)에서 동정(同正)을 지냈다.

김 니(金 泥) 조선조(朝鮮朝)에 고령 현감(高靈縣監)을 지냈다.

김 원(金 沅) 조선 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역임하였다.

김 평(金 枰) 조선에서 부사직(副司直)을 지냈다.

김 장(金 樟) 조선(朝鮮) 때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다.

김 졸(金 椊) 조선조(朝鮮朝)에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수연(金壽延) 조선 때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이르렀다.

김수윤(金壽胤) 조선(朝鮮) 때 병조참판(兵曹參判)․교수(敎授) 등을 지냈다.

김수종(金壽宗)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목사(牧使)를 역임하였다.

김수형(金壽衡) 조선조(朝鮮朝)에 도호부사(都護府使)를 지냈다.

김 질(金 秩) 조선(朝鮮)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김 겸(金 鎌)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였다.

김 건(金 鍵) 조선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 영(金 鍈) 조선에서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희성(金希聖) 조선조(朝鮮朝)에 직강 군수(直講郡守)를 역임하였다.

김하순(金夏淳)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예종(金禮宗) 조선조(朝鮮朝)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김하중(金夏重) 조선조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수질(金粹質)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석철(金錫哲) 조선조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김석규(金錫圭)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석강(金碩綱)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추성(金秋星) 조선조(朝鮮朝)에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 춘(金 春) 조선조에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다.

김선중(金善重)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경(金 瓊)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 의(金 王義) 조선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 주(金 珠)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 수(金 守) 조선에서 부장(部將)으로 선무원종공신(宣務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김우추(金遇秋) 자(字)는 미중(美仲). 조선(朝鮮) 대 우후(虞侯)를 지냈으며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었다.

김택추(金宅秋) 조선조(朝鮮朝)에 우후(虞侯)를 역임하였다.

김 의(金 疑) 조선(朝鮮) 때 전적(典籍)을 지냈다.

김두익(金斗翼)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대춘(金大春) 조선(朝鮮)에서 중추부사(中樞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준익(金準翼) 조선조(朝鮮朝)에 현감을 지냈다.

김대건(金大乾) 조선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김처하(金處河)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지(金 砥)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용건(金用乾) 조선조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김하중(金夏重) 조선조(朝鮮朝)에 목사(牧使)를 지냈다.

김원준(金元俊)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징명(金徵明) 조선에서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진광(金振光) 조선(朝鮮)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광악(金光岳) 조선조(朝鮮朝)에 승지(承旨) 겸 수찬관(修撰官)을 역임하였다.

김 수(金 洙) 조선(朝鮮) 때 포도대장(捕盜大將)을 지냈다.

김상옥(金相玉) 조선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다.

김 영(金 煐)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형조판서(刑曹判書)․금위대장(禁衛大將) 등을 지냈다.

김 연(金 鍊) 조선조(朝鮮朝)에 절도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김 건(金 鍵) 조선(朝鮮) 때 어영대장(御營大將)을 역임하였다.

김 윤(金 鈗) 조선에서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기호(金基鎬)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역임하였다.

김태항(金泰恒) 조선조(朝鮮朝)에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