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해주김씨(海州金氏),김문동계(金文東),김맹계(金孟),해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0:55 수정일 : 2018-03-06 21:59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해주김씨(海州金氏)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서도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이를 계통별로 분류하면 첫째 계통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말(高麗末)에 안렴사(按廉使)를 지내고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두문동(杜門洞)에 은거(隱居)했던 김사렴(金士廉)을 원조(遠祖)로 하고, 조선조(朝鮮朝)에서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지낸 김문동(金文東)을 중조(中祖)로 하는 계통(系統)이다.

다른 한 계통(系統)은 조선(朝鮮) 인조조(仁祖朝)에 김 헌(金 巘)이 병조판서(兵曹判書)로 남한산성(南漢山城)을 축조할 때 직간(直諫)을 하다가 해주(海州)로 유배(流配)되어 그곳에 살았는데 그의 7세손 맹(孟)이 평안도(平安道)로 이거(移居)하여 조상(祖上)의 세거지(世居地)인 해주(海州)를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해주(海州)는 황해도(黃海道) 남해안(南海岸)에 위치한 도청소재지로 일찍이 고조선(古朝鮮) 이후 대방군에 속하여 고죽(孤竹)으로 불리웠고 고구려(高句麗) 때에는 내미홀(內米忽) 또는 지성(池城)․장지(長池) 등으로 불리웠다.

통일신라(統一新羅)시대에 폭지군(瀑池軍)으로 고쳤고,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남(南)쪽이 대해(大海)에 임하고 있다고 하여 해주(海州)로 사명(賜名)했으며 성종(成宗) 때 와서는 별호(別號)로 대령(大寧)․서해(西海)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문동(文東)의 아들 우한(佑漢)이 연산군(燕山君) 때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대동찰방(大同察訪)을 지냈고, 그의 손자(孫子) 정(鼎)은 중종(中宗) 때 등과(登科)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을 거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올라 가문을 중흥시켰으며, 정두(鼎斗)는 현감(縣監)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양호(良浩)와 함께 이름을 떨쳤다.

맹(孟)의 후손에서는 승의부위(承議副尉)에 오른 응(膺)의 아들 세광(世光)이 선무랑(宣務郞)에 올라 상호군(上護軍) 만겸(萬兼), 도정(都正) 계정(啓晶)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해주김씨(海州金氏)는 남한(南韓)에 6,6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해주김씨조상인물

〈김맹계(金孟系)〉

김응(金 膺) 조선조에 승의부위(承議副尉)에 이르렀다.

김세광(金世光) 조선(朝鮮) 때 선무랑(宣務郞)에 이르렀다.

김희윤(金熙潤) 조선(朝鮮)에서 장사랑(將仕郞)에 올랐다.

김만겸(金萬兼) 조선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였다.

김계희(金啓熙)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계정(金啓晶) 자(字)는 성휘(聖輝), 호(號)는 유곡(幽谷). 조선(朝鮮)때 도정(都正)을 지냈다.

김변규(金釆奎) 자는 찬삼(燦三). 조선에서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김우한(金佑漢) 조선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택룡(金澤龍) 조선조(朝鮮朝)에 주사(主事)를 지냈다.

〈김문동계(金文東系)〉

김정(金 鼎) 자는 응구(應九). 조선조에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정두(金鼎斗) 조선(朝鮮)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성시(金聲始) 자(字)는 성옥(成玉). 조선(朝鮮) 때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시영(金時榮) 자는 보경(輔敬). 조선조에 호군(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양호(金良浩) 자(字)는 익현(益賢), 호(號)는 만오(晩悟), 시호(諡號)는 헌간(憲簡). 조선(朝鮮)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