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하음김씨시조(河陰金氏),하음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30 20:12 수정일 : 2018-04-15 11:1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하음김씨(河陰金氏)는 동성동본(同性同本)이면서도 시조(始祖)가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다. 그중 한 계통은 누대(累代)에 걸쳐 하음(河陰)에 세거(世居)한 사족(士族)의 후예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오른 김희정(金希正)을 일세조(一世組)로 하는 계통하고, 다른 한 계통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후손 김효일(金孝逸)이 하음부원군(河陰府院君)에 봉해짐으로서 그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하음(河陰)으로 삼게 되었다.

그외 효일(孝逸)의 6대조(代組)로 태자 소보(太子少保)와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역임한 김경보(金景輔)를 시조(始祖)로 기술하는 문헌(文獻)도 보이며, 하음백(河陰伯) 김 성(金 晟 : 강화 김씨의 시조)의 후손에서 분적(分籍)된 계통으로 전(傳)하기도 한다.

하음(河陰)은 경기도(京畿道) 강화군(江華郡)에 있었던 옛 지면으로 고구려(高句麗) 때에는 동음내현(冬音奈縣) 또는 아음현(牙音縣)으로 불리우다가 통일신라(統一新羅) 때 호음현(互音縣)으로 고쳐 해구군(海口郡)에 속하였고, 고려시대(高麗時代)에 와서 하음현(河音縣)으로 고쳐 개성(開城)에 속하게 하였으나 1413년(조선 태종 13) 현(縣)을 폐하고 강화군(江華郡)에 병합되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음김씨(河陰金氏)는 남한(南韓)에 39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하음김씨조상인물

김만령(金萬領)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몽윤(金夢尹) 조선조(朝鮮조)에 현령(縣令)을 역임하였다.

김 용(金 鎔) 조선(朝鮮) 때 사예(司藝)를 지냈다.

김수황(金洙璜) 조선조에 직장(直將)을 역임하였다.

김득선(金得善) 조선에서 사과(司果)를 역임하였다.

김창만(金昌萬)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