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3-29 18:20 수정일 : 2020-04-21 14:5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평양(平壤)은 평안남도(平安南道) 남서부(南西部)에 위치한 4천여년의 역사를 가진 고도(古都)로서 역사상 왕조(王朝)에 따라 왕검성(王儉城)․기성(箕星)․낙랑(樂浪)․서경(西京)․호경(鎬京)․유경(柳京)등으로 불리웠고, 단군(檀君)․기자(箕子)․위만(衛滿)의 3조선(朝鮮)과 고구려(高句麗)의 도읍(都邑)을 정했던 곳이다.
고려(高麗) 태조(太祖) 때 서경(西京)이라 부르다가 광종(光宗) 때 서도(西都)로 개정되었으며 목종(穆宗) 때 와서는 호경(好景)이라 하였으나 1369년(공민왕18)에 만호부(萬戶部)를 두고 후에 평양부(平壤府)로 개칭하였고, 1895년 (고종 32) 전국을 13도(道)분할함에 따라 평안남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평양김씨(平壤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慇說)의 후손으로 고려(高麗)때 향공진사(鄕貢進士)를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평양군(平壤君)에 봉해진 김대진(金大振)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그후 중시조(中始祖) 환(環)이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안변 도호부사(安邊都護府使)겸 북청진관 병마절도사(北靑鎭官兵馬節度使)를 지내고 평강(平康)으로 낙향(落鄕)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으며, 후손들은 유정파(喩井派)․문봉파(文峰派)․종광파(宗廣派)․광동파(廣洞派) 등 네 파(派)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通報)」에는 1411년(태종11)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군수(郡守)를 지낸 김여하(金廬遐)를 평양 김씨의 선조(先祖)로 기록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 예종(睿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통훈대부(通訓大夫)로 현감(縣監)을 역임한 윤온(允溫)과 성종조(成宗朝)에 등과(登科)하여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권(權 : 윤온의 손자)이 유명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안주 교수(安州 敎授)를 역임한 준걸(俊傑)이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양김씨(平壤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784명이 살고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평양김씨조상인물
김 운(金 運) 고려조(高麗朝)에 사공(司空)을 역임하였다.
김의창(金義昌) 고려(高麗)에서 태자첨사(太子詹子)를 지냈다.
김 눌(金 訥) 고려 때 시랑(侍郞)을 지냈다.
김 환(金 桓) 고려에서 봉어(奉御)를 역임하였다.
김용하(金龍河) 고려(高麗) 때 시랑(侍郞)을 역임하였다.
김사원(金士元) 고려조에 중서령(中書令)을 지냈다.
김 이(金 理) 고려(高麗)에서 봉어(奉御)를 역임하였다.
김대진(金大振) 고려 때 평양군(平壤君)에 봉쇄졌다.
김윤온(金允溫) 고려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 권(金 權) 조선조(朝鮮조)에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 환(金 環)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준걸(金俊傑) 조선(朝鮮)에서 교수(敎授)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