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통천김씨시조(通川金氏),김교(金較)

작성일 : 2017-03-29 17:48 수정일 : 2020-04-21 13:56

통천김씨의 연원

통천김씨(通川金氏 . 通州金氏)는 신라 경순왕이 나라를 고려에 손국하자 개골산(皆骨山)으로 입산하여 고려에 항전했다는 마의태자(麻衣太子) 일(鎰)의 후손으로 기록된다. 통천김씨 구보에 의하면 시조는 마의태자의 아들 교(較 . 通川君)로 기록되고, 중시조는 광정대부(匡靖大夫) 판도판서 (版圖判書) 문한학사(文翰學士) 원등 (遠登)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원등의 휘는 안선(安善)이 고, 부인 해주최씨(海州崔氏)는 천일(天初)의 딸, 백심(百深)의 손녀, 원택(員澤)의 증손녀 유후(有候)의 현손녀로 기록된다.

통천군은 원래 휴양군(休壤郡) 일명 금뇌 (金恨)라고 하였는데 신라 때에는 금양군(金壤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는 현령(縣令)을 두었는데, 충렬왕 11년에 등급을 올려서 방어사를 두었고 조선조 태종 13년에 전례대로 지금 이름인 통천군으로 고치었다.

통천김씨 구보에 의하면 마의태자의 장남이신 교(較)가 통천군(通川君)으로 사성을 받고 후손들이 통천 지방에 세거하다 중시조 이후 3세 여산(如山 • 珍山敎導), 중령(仲齡 三全州郡守), 중복(仲福仲福 . 殿直) 삼형제가 조선 초에 관직을 따라 전라도로 이주한 것으로 기록된다.

중시조 이후 3세 진산교도(珍山敎導) 여산(如山)의 후손을 진산공파(교도공파), 3세 군수(郡守) 중령 (仲齡)의 후손을 군수공파, 3세 전직(殿直) 중복(仲福)의 후손을 전직공파라 부른다. 전직공파가 충청도 일원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전직공 4세 훈(勛)이 남포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임지를 따라 이주하게 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9세에 이르러 정여립(鄭汝立) 사건으로 빙(愚)이 억울하게 연루되어 옥사한 뒤에 일부 계파가 묘연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10세, 11세에 이르러 정유재란 때 의병에 가담하여 또 일부 계파가 전몰하여 오늘날 소족으로 남게 되었다.

세거지는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청명동. 산막동, 전주 송천동, 소양면 일임리 . 용진 관중리 그리고 충남 서천군 비인면 관리. 장포리. 충남 서천군 판교면 문곡리, 층남 보령시 남포면 신홍리, 전북 전주시 안덕원 반암리, 전북 완주군 삼례읍 태평리. 익산시 오산면 장신 리. 김제시 귀신면 등이다. 그리고 선영은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청명동 태봉산 아래 명당록(明堂麗)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적은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422-1번지와 전주시 안덕원, 완주군 소양면 일임리. 충청남도 서천 군 종천면 종천리 , 보령시 응천면 두룡리, 남포면 옥동리 등에 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통천김씨는 남한에 총 5,66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