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7-03-29 16:59 수정일 : 2020-04-21 13:2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칠원김씨(漆原金氏)의 시조(始祖) 김영철(金永哲)은 칠원(漆原)에 토착(土着)해온 사족(士族)의 후예로 조선조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벼슬이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칠원에 세거(世居)하면서 관향(貫鄕)을 칠원(漆原)으로 삼고 김영철(金永哲)을 시조(始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칠원(漆原)은 경상북도(慶尙北道) 함안군(咸安郡)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칠토현(漆吐縣)이었던 것을 신라 경덕왕(景德王 : 제 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이 칠제(漆隄)로 고쳐서 의안군(義安郡) : 지금의 창원)에 예속시켰으며, 고려초에 칠원(漆原)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김해(金海)에 속하게 하였다.
조선조에 와서는 선조(宣祖) 때 창원(昌原)에 속하였다가 광해군(光海君) 때 현(縣)이 되었고, 고종(高宗) 때 군(君)으로 승 격되었으며 후에 함안군(咸安郡)에 속한 면(面)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두드러진 인물로는 시조 영철(永哲)의 손자(孫子) 극행(克行)이 승지(承旨)를 역임했고, 한림(翰林)을 지낸 경(冏 : 시조의 증손)의 아들 계방(繼邦)은 부제학(副提學)에 올라 승지(承旨) 안정(安鼎), 참판(參判) 철원(徹元), 판서(判書) 백련(栢連)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칠원 김씨(漆原金氏)는 남한(南韓)에 4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칠원김씨조상인물
김극행(金克行) 조서조에 승지(承旨)를 지냈다.
김 경(金 冏) 조선 때 한림(翰林)을 역임하였다.
김계방(金繼邦) 조선 때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김학곤(金鶴坤) 조선조에 유수(留守)를 역임하였다.
김안정(金安鼎) 조선 때 승지(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영진(金永鎭)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철원(金徹元)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백련(金栢連) 조선조에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성렬(金成烈)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