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주김씨시조(淸州金氏),김보(金甫),김하통(金夏通),김사지(金四知),청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6:31 수정일 : 2018-02-07 13:43

청주김씨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주김씨(淸州金氏)는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본관(本貫)을 같이하면서 시조(始祖)를 달리하는 세 계통(系統)이 있다.

이를 계통별(系統別)로 분류(分類)하면 그중 한 계통은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 김 정(金 錠 : 청주군)의 후손인 김보(金甫)가 고려에서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을 거쳐 상락백(上洛伯)에 봉해지고 청주(淸州)의 구봉산(九峯山) 밑에 은거하여 후손들이 그를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繼代)하고 있다. 그러나 경순왕의 여섯째 아들은 강릉군(江陵君)에 봉해진 김건(金 鍵)이 분명하므로 이를 정확히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없다.

다른 한 계통은 김방경(金方慶 : 구안동 김씨 중시조)의 증손 천(蕆)의 아들 사의(士儀)가 고려말에 벼슬을 버리고 지내다가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忠節)로 관직을 버리고 청주(淸州)에 은거(隱居)하였는데, 그의 후손 김하통(金夏通)이 함경도(咸鏡道) 함흥(咸興)으로 이거(移居)하여 살면서 조상(祖上)의 원향지(原鄕地)인 청주(淸州)를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마지막 한 계통은 경순왕(敬順王)의 일곱째 아들 언양군(彦陽君) 김선의 15세손(世孫 : 언양 김씨 족보에는 18세손으로 기록되었음) 김사지(金四知)가 연산군(燕山君) 때 참의(參議)를 지내다가 함경도 홍원(洪原)으로 유배(流配)되어 그곳에 살면서 조상(祖上)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청주(淸州)를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고 하나 이들 세 계통을 정확하게 상고(詳考)할 문헌(文獻)이 없다.

청주(淸州)는 충청북도(忠淸北道) 중앙(中央)에 위치하는 도청소재지로써 원래는 마한(馬韓)의 땅이었는데 백제(百濟) 때 상당현(上黨縣)이라 하였고 일명 낭비성(娘臂城) 또는 낭자곡(娘子谷)으로도 불리웠다. 서기 685년(신라 신문왕 5) 서원소경(西原小京)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에는 서원경(西原京)이 되었으며, 고려시대(高麗時代)인 940년(태조 23)에 청주(淸州)로 개칭(改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주 김씨(淸州金氏)는 남한(南韓)에 33,68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주김씨조상인물

김예(金 藝) 고려 시대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했다.

김휘중(金輝仲) 고려조(高麗朝)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김휘백(金輝伯) 고려(高麗) 대 민부 의랑(民部議郞)을 역임했다.

김휘연(金輝連) 고려시대에 예빈경(禮賓卿)을 지냈다.

김연(金 鍊) 1270(원종 11) 추밀부사(樞密副使)로 있을 때, 강화에서 삼별초(三別抄)의 난이 일어나자 탈출에 성공하였으며 왕세자의 청혼문제로 몽고(蒙古)에 다녀왔다. 그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김지숙(金之淑) 1237 (고종 24) ~ 1310(충선왕 2)

연(鍊)의 아들. 판삼사(判三司)로 원나라에 다녀온 후 판감찰사사(判監察司事)에 이르렀다.

김분(金 汾) 조선(朝鮮) 때 판윤(判尹)을 지냈다.

김식(金 湜) 조선 때 판서(判書)를 역임했다.

김린(金 麟) 조선조(朝鮮朝)에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했다.

김내생(金乃生) 조선 시대에 좌통례(左通禮)를 지냈다.

김우생(金又生)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보생(金甫生)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문지(金問之)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사지(金思之)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변지(金辯之) 조선조에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극중(金克中) 조선 시대에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김처정(金處正)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몽진(金夢辰) 조선 때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김몽인(金夢寅) 조선조(朝鮮朝)에 교수(敎授)를 역임했다.

김령(金 玲) 조선(朝鮮)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김서무(金瑞武) 조선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우필(金友珌)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우봉(金友琫) 조선조에 훈련판사(訓練判事)를 지냈다.

김휴경(金休慶) 조선(朝鮮) 때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휴덕(金休德) 조선에서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경(金 鏡) 조선(朝鮮)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승서(金承緖)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충정(金忠貞) 조선 시대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충서(金忠恕) 조선(朝鮮)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충효(金忠孝) 조선 때 훈련판사(訓練判事)를 지냈다.

김충질(金忠質) 조선조에 판관(判官)을 지냈다.

김광윤(金光潤)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효모(金孝模) 조선 시대에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효간(金孝諫) 조선조(朝鮮朝)에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했다.

김언호(金彦浩) 조선(朝鮮) 때 부정(副正)을 역임했다.

김억추(金億秋) 자(字)는 방노(邦老). 임진왜란 때 순창 군수(淳昌郡守)로 평양 대동강(平壤大洞江)의 주사대장(舟師大將)이 되어 공(功)을 세워 평안 방어사(平安防禦使)에 오르고, 이어 여주 목사(驪州牧使)와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를 지냈으며,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鳴梁大捷)으로 선무일등공신(宣務一等功臣)에 올랐다.

김만추(金萬秋) 조선 때 우후(虞侯)를 지냈다.

김응추(金應秋) 조선(朝鮮) 때 우수사(右水使)를 지냈다.

김백추(金百秋) 조선 시대에 우후(虞侯)를 역임했다.

김원복(金元福)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김대복(金大福) 조선조에 부정(副正)을 역임하였다.

김덕복(金德福) 조선조(朝鮮朝)에 훈련원정(訓練院正)을 역임하였다.

김형복(金亨福) 조선(朝鮮)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김진장(金晋章)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경의(金敬義)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여현(金汝鉉) 조선 시대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여길(金汝吉) 조선조(朝鮮朝)에 도사(都事)를 역임했다.

김여진(金汝進) 조선(朝鮮)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여남(金汝南) 조선 때 판관(判官)을 지냈다.

김여명(金汝銘) 조선 시대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여한(金汝翰)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창혁(金昌赫)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인채(金麟采)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회신(金懷信)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지냈다.

김진억(金鎭億)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김귀정(金龜禎)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역임했다.

김진연(金振淵) 1664 (현종 5) ~ 1737(영조 13)

자는 서미(瑞微). 고려조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보(甫)는 30세손.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라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겸 오위도 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에 추증되었다.

김몽상(金夢祥) 조선 영조 때 내대숭록분무원종공신(內待崇錄奮武原從功臣)에 책록(冊錄)되었다.

김영정(金永禎) 조선(朝鮮) 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금준(金今俊) 조선 시대에 시정(寺正)을 역임했다.

김덕기(金德起) 조선조(朝鮮朝)에 판사(判事)를 지냈다.

김일생(金日生) 조선(朝鮮) 때 우윤(右尹)을 역임했다.

김승윤(金承尹)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을 역임하였다.

김과(金 釴)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김응복(金應福) 조선 시대에 별장(別將)을 역임했다.

김응강(金應剛) 조선조(朝鮮朝)에 만호(萬戶)를 지냈다.

김창현(金昌鉉) 조선(朝鮮) 때 판관(判官)을 역임했다.

김명혁(金命爀)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재호(金在灝) 조선 시대에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호신(金浩信) 조선조에 참판(參判)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