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청송김씨시조(靑松金氏),김정기(金正己),청송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6:12 수정일 : 2018-04-13 12:1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청송김씨(靑松金氏)의 시조(始祖) 김정기(金正己)는 경순왕(敬順王)의 14세손으로 조선(朝鮮) 태조(太祖) 때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고 직간(直諫)을 하다가 태조의 비위에 거슬려 중산(仲山 : 지금의 정평)으로 유배되었다.

그후 청송(靑松)에서 중산부(仲山府) 세유면(細柳面) 세양리(細楊里)로 옮겨 살다가 일생을 마치니, 후손들이 정기(正己)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청송(靑松)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였다.

청송(靑松)은 황해도(黃海道) 송화군(松禾郡)의 옛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마경이(麻耕伊)를 고려초(高麗初)에 청송현(靑松縣)이라 고쳤다가 서기 1018년(고려 현종 9) 풍주군(豊州郡 : 풍천)에 예속시켰으며 예종(睿宗) 때 감무(監務)를 두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태종(太宗)이 청송(靑松)과 이웃 가화(嘉禾)를 합하여 송화군(松禾郡)으로 개면(改免)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정기(正己)의 아들 옥형(玉衡)이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손자 보중(寶重)은 통덕랑(通德郞)에 올라 가문(家門)을 중흥시켰으며, 보중의 맏아들 치성(致誠)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내고 장곡면(長谷面)으로 이거(移居)하였고, 차남 이성(以誠)은 공조 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한편 치성(致誠)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계인(繼仁)은 오위(五衛)의 부사직(副詞直)을 지냈으며, 차남 계의(繼義)와 막내 계지(繼智)는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그외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적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순절한 승빈(勝玭)이 유명했고, 명종(明宗)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여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대춘(大春)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청송김씨(靑松金氏)는 전국에 총 1,01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청송김씨조상인물

김옥형(金玉衡)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김보중(金寶重)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치성(金致誠)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이성(金以誠) 조선조(朝鮮朝)에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계인(金繼仁) 조선조에 어모장군(御侮將軍)으로 부사직(副詞直)을 지냈다.

김계의(金繼義) 조선조에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계지(金繼智) 조선조(朝鮮朝)에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귀용(金貴用) 조선 때 검교(檢校)를 지냈다.

김윤창(金允昌) 조선(朝鮮) 때 참봉(參奉)을지냈다.

김기서(金麒瑞) 조선조(朝鮮朝)에 장사랑(將士郞)으로 참봉(參奉)을 지냈다.

김벽(金 碧) 조선에서 은성 훈도(隱城訓導)를 지냈다.

김부(金 富) 조선(朝鮮) 때 겸교호군(檢校護軍)을 지냈다.

김명택(金明澤) 조선 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김광국(金光國) 자(字)는 국노(國老).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합격(合格)하고, 혹련 만호(玉連萬戶)를 지냈다.

김윤장(金允章) 조선조에 어모장군(御侮將軍)으로 군자감 봉사(軍資監奉事)를 역임했다.

김영보(金英寶) 조선(朝鮮) 때 부사직(副詞直)을 지냈다.

김석주(金碩柱) 조선조(朝鮮朝)에 가설첨지(加設僉知)를 역임하였다.

김중만(金重萬) 자(字)는 진숙(鎭淑), 호(號)는 동곡(桐谷). 조선조(朝鮮朝)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하고 참봉(參奉)을 역임하였다.

김영록(金永祿)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창인(金昌仁)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종탁(金宗鐸) 자(字)는 용경(用警). 조선(朝鮮)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