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창원김씨시조(昌原金氏),김을진(金乙軫),창원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4:16 수정일 : 2020-04-08 11:0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창원김씨(昌原金氏)의 시조(始祖) 김을진(金乙軫:초명은 광준)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의 18세손이다.

그는 고려조(高麗朝)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문관의 종2품 관계)에 올라 태자첨사(太子詹事)로 동궁(東宮)의 사무(事務)를 관장하였고, 공민왕(恭愍王) 때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하는 데 공(功)을 세워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창원(昌原)으로 하게 되었다.

창원(昌原)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로 고대(古代)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 : 경상남도 김해지방에서 부족국가를 형성하였던 6가야 중의 하나)에 속했었다.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에 의하면 창원(昌原)은 본래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의 합명(合名)이다. 의창(義昌)은 신라(新羅) 때 굴자군(屈自郡) 또는 의안군(義安郡)으로 불리우다가 1282년(충렬왕 8)에 의창(義昌)으로 개칭되었고, 회원(회원)은 신라 때의 굴포현(屈浦縣)을 경덕왕(景德王 : 제35대 왕, 재위기간 : 742~765)이 합포(合浦)로 고쳤다가 고려조(高麗朝)에 와서 회원(會原)으로 개칭하여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 두 현(縣)을 합하여 창원부(昌原府)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시조 을진(乙軫)의 아들 왈원(曰元)이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상호군(上護軍)에 올라 피난가는 왕(王)응 호종(扈從)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으며, 충정왕(忠定王) 때 삼사(三司)의 으뜸 벼슬인 판삼사사(判三司事)로 나라에 공을 세워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군(封君)되어 크게 명성을 떨첬다.

왈원(曰元)의 손자로 참판(參判)을 역임한 갱(鏗)의 아들 3형제 중 장남 맹창(孟昌)이 군수(郡守)를 지내고 그의 후선에서 부안파(扶安派)와 연천파(連川派)를 이루었으며, 차남 중창(仲昌)은 현감(縣監)을 역임하고 그의 후대에서 금천파(金川派)로 갈리었다.

막내 계창(季昌)은 1462년(세조 7)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예종(睿宗) 때 부제학(副題學)을 거쳐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지냈으며 후대에서 파주파(坡州派)․상주파(尙州派)․창원파(昌原派) 등으로 나누어졌다.


인 구

2015년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창원 김씨(昌原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95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창원김씨조상인물

김왈원(金曰元) 충혜왕(忠惠王) 때 참지정사(參知政事)․상호군(上護軍) 등을 지내고 왕(王)을 호종한 공(功)으로 1등공신(一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충정왕(忠定王) 때 판삼사사(判三司事)에 이르러 의창부원군(義昌府院君)에 봉해졌다.

김갱(金 鏗)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맹창(金孟昌) 조선조(朝鮮朝)에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중창(金仲昌)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계창(金季昌) 자(字)는 세축(世蓄). 1462년(세조 7)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영(金 榮) 조선조에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김공작(金公綽) 조선(朝鮮) 때 사직(司直)을 지냈다.

김사웅(金士雄)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연(金 鍊) 조선조(朝鮮朝)에 공조 좌랑(工曹佐郞)을 역임하고 승의랑(承議郞)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연(金 淵) 조선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낸 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윤화(金允和) 조선(朝鮮) 때 전적(典籍)을 지냈다.

김득광(金得光) 조선 때 규장각 부제학(奎章閣副題學)을 역임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김계준(金繼俊) 조선(朝鮮) 때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김팔준(金八俊) 조선조에 병조 참판(兵曹參判)․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오위부총관(五緯副摠管)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