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천김씨시조(鎭川金氏),김맹아(金孟雅),진천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4:09 수정일 : 2018-04-06 17:0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진천김씨(鎭川金氏)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의 후손으로 전한다. 시조(始祖) 김맹아(金孟雅)는 명주군왕(溟洲郡王 : 강릉 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22세손이며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김사혁(金斯革)의 증손이다.

「진천김씨세보서(鎭川金氏世譜序)」에 의하면 진천김씨는 맹아(孟雅)의 맏아들 빈(檳)의 계통(系統)에서 그의 아들 옥성(玉聲)이 어모장군(御侮將軍)으로 홍원파(洪原派)를 계승(系承)였고, 옥규(玉奎)는 어모장군(御侮將軍)으로 단천파(端川派)를 이루었으며, 맹아의 3남(三男) 봉(鳳)은 종성파(鍾城派)로, 4남(四男) 학(鶴)은 곡산파(谷山派)로 분파(分派)되었다.

그리고 맹아(孟雅)는 봉(鳳)․학(鶴) 두 아들과 옥성(玉聲)․옥규(玉奎) 두 손자를 데리고 입북(入北)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종성파(鍾城派)는 봉(鳳)으로부터 5대(五代)에 이르기까지 독자(獨子)로 이어지다가 상의(尙義)가 아들 3형제를 두어 장남 경인(敬仁)은 참판공파(參判公派)로, 차남 경례(敬禮)는 첨추공파(僉樞公派)로, 막내 경지(敬智)는 군자감공파(軍資監公派)로 하여 선조(先祖)들의 전세거지(前世居地)인 진천(鎭川)을 관향(貫鄕)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천(鎭川)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북서쪽 끝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 때 금물노군(今物奴郡) 또는 만노(萬弩)․수지(首知)․신지(新知) 등으로 불리우다가 신라시대(新羅時代)애는 흑양군(黑壤郡), 그 뒤 황양군(黃壤郡)이라 하였다.

고려초(高麗初) 에 와서 강주(降州)로 불렸다가 진주(鎭州)로 개칭하였고, 1259년(고종 46) 창의현(彰義縣)으로 승격하여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천(鎭川)으로 고쳐서 현감(縣監)을 두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옥성(玉聲)의 아들 휘(輝)가 직장(直長)을 지냈고, 옥규(玉奎)의 아들 숭백(崇伯)은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올랐으며, 손자 광조(廣祖)는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하였다.

옥규의 증손(曾孫) 응진(應珍)은 벼슬이 대제학(大提學 : 홍문관․예문관의 정2품 벼슬)에 이르고 창렬공신(彰烈功臣)에 책록되어,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오른 아들 극례(克禮)와 함께 가문을 일으켰다.

특히 진천 김씨(鎭川金氏)는 누대(累代)로 함경도(咸鏡道) 홍원(洪原)․종성(鍾城)․곡산(谷山) 지방에 집중세거하면서 가문(家門)이 크게 번영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남한(南韓)에 총 1,99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진천김씨조상인물

김옥성(金玉聲) 조선조(朝鮮朝)에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김 휘(金 輝) 조선 때 직장(直長)을 역임하였다.

김응진(金應珍) 조선(朝鮮)에서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김명현(金鳴鉉) 자(字)는 군백(君伯).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정원(金政源) 자는 군정(君正). 1835년(헌종 1) 문과(文科)에 급제, 사헌부 장령(司軒府掌令)․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을 거쳐 함경도 도사(咸鏡道都事)를 지냈다.

김인원(金仁源) 자(字)는 경세(京世). 조선(朝鮮)에서 의관(議官)을 역임하였다.

김병화(金秉和) 자(字)는 이선(彝善), 호(號)는 오봉(梧峰). 진사(進士)로 문장(文章)과 경학(經學)에 능했으며, 육영사업(育英事業)에 공(功)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