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주김씨시조(晋州金氏),김추(金錘),김원술(金元述),진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4:01 수정일 : 2018-02-13 18:06

진주김씨시조

진주김씨(晋州金氏)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서도 연원(淵源)을 달리하는 두 계통(系統)이 있는데, 첫째 계통은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가 진성군(晋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진주(晋州)로 삼았다.

다른 한 계통(系統)은 가락국(駕洛國) 김수로왕(金首露王)의 13세손 김유신(金庾信)의 둘째 아들인 김원술(金元述)이 서기 672년(신라 문무왕 12) 당(唐)나라가 말갈군(靺鞨軍)과 연합하여 신라(新羅)를 침공했을 때 출전하여 격전 끝에 담릉(淡陵)의 만류로 후퇴했다.

이 후퇴가 왕명(王命)을 어기고 가훈(家訓)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부모(父母)에게 용서받지 못하여 태백산(太白山)에 들어갔다가, 675년(문무왕 15)에 매소성(買蘇城)에서 당군(唐軍)을 크게 섬멸하였으나 끝내 어머니의 용서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이를 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비관하며 진주(晋州)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진주(晋州)로 하게 되었다.


본관의 유래

진주(晋州)는 경상남도(慶尙南道) 남서족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 백제(百濟)의 거열성(居烈城)이었는데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 제30대 왕, 재위기간 : 661~680) 때 신라의 영토가 되어 거열주(居烈州)라 불리웠으며 서기 757년(경덕왕 16) 9주5소경제(九州五小京制)에 강주(康州)로 환원하였다.

서기 995년(성종 14) 진주(晋州)라는 명칭으로 처음 불리게 된 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진양도호부(晋陽都護府)가 되가도 하였으나 진주목(晋州牧)으로서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각 계통별로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추(錘)의 후손에서 천서(天曙)의 아들 무진(茂珍)이 고려(高麗) 충혜왕(忠惠王) 때 여러 벼슬을 거쳐 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를 역임하고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져서 크게 명성을 떨쳤고, 그의 맏아들 태(台)는 좌찬성(左贊成)에 올랐다.

그 외 조선조(朝鮮朝)에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낸 중국(重國 : 무진의 손자)과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여 정랑(正郞) 선정(善貞), 찰방(察訪) 철완(鐵完) 등과 함께 가문을 일으켰다.

원술(元述)의 후손(後孫)에서는 손자(孫子) 암(巖)이 신라(新羅) 때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음양학(陰陽學)을 연구하고「둔갑법(遁甲法)」을 저술했으며 점복술(占卜術)과 은형술(隱形術)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또한 조선조(朝鮮朝)에서 감찰(監察)을 역임한 천우(天佑)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장련(長鍊)이 유명했고, 첨정(僉正) 덕수(悳秀)의 아들 양언(良彦)은 광해군(光海君) 때 아버지가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군사를 모아 변방수비에 공(功)을 세웠고 정묘호란(丁卯胡亂) 때눈 안주(安州)의 방어전에서 분전하다 장렬하게 전사하여 가문을 빛냈으며 뒤에 진흥군(晋興君)으로 추봉되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며 진주 김씨(晋州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2,3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진주김씨조상인물

<원술계(元述系)>

김암(金 巖) 유신(庾信)의 증손. 신라(新羅) 때의 점복가(占卜家)이 자 병술가(兵術家)로 당(唐)나라에 유학, 음양학(陰陽學)을 연구하고「둔갑법(遁甲法)」을 저술, 점복술(占卜術)과 은형술(隱形術)의 신경 지를 개척하였다.

귀국 후에는 사천박사(司天博士)를 거쳐 양주(良州)․강주(康州)․한주(漢州) 등의 태수(太守)를 역임, 다시 패강두상(浿江頭上)으로 전임되어 농민에게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가르쳤다.

김상(金 祥) 자(字)는 화서(和瑞). 고려조(高麗朝)에 첨정(僉正)을 지냈다.

김천우(金天祐) 자(字)는 영희(永希).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역임 하였다.

김익하(金益河) 자(字)는 청일(淸一). 조선에서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김장련(金長鍊) 자(字)는 군백(君百).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덕수(金悳秀) 자는 자홍(子弘). 조선(朝鮮)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김양언(金良彦) 자(字)는 선익(善益). 1618년(광해군 10) 아버지가 심하(深河) 싸움에서 전사하자 군사를 모집, 변방 수비에 공(功)을 세웠고, 1624년(인조 2) 이 괄(李 适)의 난(亂)때 척후장(斥候將)으로서 안령(鞍嶺) 싸움에 전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올랐으며,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를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安州) 방어전에서 분정, 많은 적을 사살하고 전사했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추증, 진흥군(晋興君)에 추봉(追封)되고, 평양(平壤)의 충무사(忠武祠), 안주(安州)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祭享)되었다.

김세호(金世豪) 자(字)는 맹달(孟達). 조선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세웅(金世雄) 자(字)는 중달(仲達). 조선에서 훈련부정(訓練副正)을 역임하였다.

김세룡(金世龍) 자(字)는 정달(正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활약하다 순절하였다.

<추계(錘系)>

김무진(金茂珍) 자(字)는 원보(元寶). 충혜왕(忠惠王) 때 영서운관사(領書雲觀事)․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사․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등을 역임하고,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김태(金 台) 자(字)는 상천(像天), 호(號)는 회헌(晦軒). 고려조(高麗朝)에 좌참찬(左參贊)을 역임하였다.

김퇴(金 堆) 자(字)는 대이(大而), 호(號)는 반은(盤隱). 고려(高麗)때 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이안(金履安) 자(字)는 노택(魯澤). 고려 때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역임하였다.

김중국(金重國) 자(字)는 내정(乃禎), 호(號)는 어초(漁櫵). 조선(朝鮮)에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귀민(金貴敏) 조선조(朝鮮朝)에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겸(金 謙) 호(號)는 만송당(晩松堂). 시호(諡號)는 공안(恭安). 조선에서 우빈객(右賓客)을 역임하였으며 숙모전(肅慕殿)에 배향되었다.

김선정(金善貞) 자(字)는 정숙(正淑), 호(號)는 어은(漁隱). 조선(朝鮮)때 정랑(正郞)을 지냈다. 장성파조(長城派祖).

김철완(金鐵完) 자(字)는 자주(子周), 호(號)는 태산(台山). 조선조(朝鮮朝)에 찰방(察訪)을 지냈다. 화순파조(和順派祖).

김필석(金弼碩) 자(字)는 양보(良甫). 조선에서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