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진잠김씨시조(鎭岑金氏),김극복(金克福),진잠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1:52 수정일 : 2018-04-14 21:47

시조 및 본관의 유래

1926년 발간(發刊)된「진잠김씨족보(鎭岑金氏族譜)」의 기록에 의하면 진잠김씨(進岑金氏)는 선조(先祖)가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후손(後孫)으로 나라에 공(功)을 세워 진잠군(鎭岑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貫鄕)을 진잠(鎭岑)으로 하게 되었다고 하며, 선대(先代)의 유적(遺蹟)과 보첩(譜牒)이 실전(失傳)되어 조선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도승지(都承旨)를 지낸 김극복(金克福)을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계대(系代)를 알 수 없는 희(熙)를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繼代)하고 있다.

진잠(鎭岑)은 충청남도(忠淸南道) 대덕군(大德郡)에 속해 잇는 지명(地名)으로 백제(百濟) 때에는 진현(眞峴) 또는 정현(貞峴)이라 불렀으나, 신라(新羅) 경덕왕(경덕왕 : 제35대왕. 재위기간 : 742~765) 때 진영(鎭嶺)으로 고쳤다가 고려(高麗) 초에 진잠(鎭岑)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희(熙)의 손자(孫子)인 보견(寶堅)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증손(曾孫) 섬(暹)은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여 임진왜란 때 대가(大駕 : 임금이 타는 가마)를 호종(扈從)하여 공신(功臣)에 오른 정(珵)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특히 진잠김씨(鎭岑金氏)는 정(珵)의 아들 3형제 대(代)에서 크게 번성하였는데, 맏아들 경운(慶雲)은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냈으며, 둘째 상운(祥雲)은 예조(禮曹)의 판서(判書)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한편 상운(祥雲)의 아들 석(錫)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손자(孫子) 우급(友伋)과 우숙(友叔)은 각각 통훈대부(通訓大夫)와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낸 흡(潝 : 우급의 아들)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상덕(象德)이 유명했으며, 우백(友伯)의 아들 염(濂)은 좌찬성(左贊成 : 의정부에 속해 있던 종1품의 벼슬)에 올라 아들 세구(世龜 : 통정대부에 오름)와 함께 가문을 대표하였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진잠김씨는 남한에 총 9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진잠김씨조상인물

김극복(金克福) 조선(朝鮮) 때 도승지(都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섬(金 暹) 자(字)는 중은(仲殷). 조선에서 참판(參判)을 역임했다.

김정(金 珵) 자(字)는 사원(士元). 조선 때 진사(進士)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오름.

김경운(金慶雲) 자(字)는 익선(益善). 조선조(朝鮮朝)에 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역임했다.

김상운(金祥雲) 자(字)는 익순(益淳). 조선 때 예조 판서(禮曹判書)를 지냈다.

김석(金 錫) 자(字)는 임천(林泉).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우급(金友伋) 자(字)는 양보(良保).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김우숙(金友叔) 자는 남벽(南壁). 조선 때 판서(判書)를 지냈다.

김우성(金友聖) 자(字)는 상덕(尙德). 조선 때 장사랑(將士郞)으로 전옥서 참봉(典獄薯參奉)을 지냈다.

김흡(金 潝) 자(字)는 선무(善武).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하였다.

김상덕(金象德) 자(字)는 문산(文山).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염(金 濂) 자(字)는 재오(載五). 조선(朝鮮)에서 좌찬성(左贊成)을 지냈다.

김세구(金世龜) 자(字)는 덕명(德明).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