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정주김씨시조(貞州金氏),김수(金守),정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9 11:40 수정일 : 2018-04-06 14:44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정주김씨(貞州金氏)는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김숭선(金崇善)의 후손으로 해풍 김씨(海豊金氏)에서 분적(分籍) 된 계통(系統)이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정주 김씨(貞州金氏)의 시조(始祖) 김수(金守)는 고려 때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한 김장(金 樟)의 현손(玄孫)으로 조선조(朝鮮朝)에서 부장(部將) 을 지내며 나라에 공(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務原從功臣)에 책록되고 누대(累代)를 정주(貞州)에 세거(世居)해 오면서 해풍 김씨(海豊金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김 수(金 守)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정주(貞州)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선계(先系)를 상고(詳考)할 수 없다.

정주(貞州)는 경기도(京畿道) 풍덕(豊德)의 고구려(高句麗) 때 지명으로 서기 1018년(고려 현종 9) 개성군(開城郡)의 속현이 되었다가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 개성유후사(開城留後司)의 관할이 되었다. 1442년(세종 24)에 덕수현(德水縣)과 함쳐 풍덕(豊德)으로 개칭되었으나 개성(開城)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개성군(開城郡)과 함하여 개풍군(開豊郡)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의 두드러진 인맥(人脈)을 살펴보면 조선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산해(山海 :일세조의 수의 손자)와 좌승지(左承旨) 종엽(宗燁)이 유명했으며, 방렬(邦烈)․재후(載垕)․우헌(瑀憲)은 감찰(監察)을 역임하여 좌승지(左承旨) 언벽(彦壁), 판관(判官) 재연(載淵)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주 김씨(貞州金氏)는 총 2,37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정주김씨조상인물

김산해(金山海)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무응(金武應) 조선조에 효력 부위(效力副尉)를 지냈다.

김천진(金天眞) 조선에서 창신 교위(彰信校尉)를 지냈다.

김대춘(金大春) 자(字)는 원백(元伯).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승휘(金承輝) 자(字)는 가회(可晦). 조선에서 집의(執義)에 추증(追贈)되었다.

김득엽(金得燁)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종엽(金宗燁) 자(字)는 자야(子冶). 조선조에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김수천(金壽千) 조선조에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수만(金壽萬)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숙엽(金淑燁) 조선조(朝鮮朝)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동완(金東完) 자(字)는 원후(元厚).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냈다.

김상경(金尙絅) 자(字)는 응장(應章). 조선 때 오위장(五緯將)을 지냈다.

김봉기(金鳳紀)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형운(金亨運) 자(字)는 태보(泰甫). 조선에서 양무공신(揚武功臣)에 올랐다.

김형태(金亨兌) 자는 중열(仲說).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익광(金益光) 자(字)는 윤경(潤景). 조선에서 참판(參判)을 지냈다.

김형기(金亨基) 자(字)는 덕수(德叟). 조선조(朝鮮朝)에 오위장(五緯將)을 지냈다.

김상련(金尙璉) 자는 국진(國珍). 조선(朝鮮) 때 사과(司果)를 지냈다.

김정려(金精勵) 조선 때 어모장군(御侮將軍)에 이르렀다.

김방렬(金邦烈) 자(字)는 계경(季卿).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재후(金載垕) 자(字)는 배현(配玄). 조선조(朝鮮朝)에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우헌(金瑀憲) 자(字)는 우옥(禹獄).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역임했다.

김언벽(金彦壁) 자(字)는 계헌(季獻). 조선(朝鮮) 때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김재연(金載淵) 자(字)는 성양(聖養).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