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은율김씨시조(殷栗金氏),김상동(金尙銅),은율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8:02 수정일 : 2018-04-14 21:02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은율김씨(殷栗金氏)는 신라(新羅)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에서 분적(分籍)되었다가 하나 상계(上系)를 고증(考證)할 문헌(文獻)이 전(傳)하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상고(詳考)할 수 없다.

「신라김씨분종보(新羅金氏分宗譜)」와 「은율김씨족보(殷栗金氏族譜)」에 의하면 시조(始祖) 김상동(金尙銅)은 조선(朝鮮) 명종(明宗 : 제 13대 왕, 재위기간 : 1545~1567) 때 사직(司直 : 오위에 속한 정5품 문무관의 관계)으로서 누차에 걸쳐 시정(施政)을 간(諫)하다가 은율(殷栗)로 유배(流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후에 사면(赦免)이 되어 돌아오던 중 해상(海上)의 풍랑(風浪)으로 평안북도(平安北道) 정주(定州)로 표류(漂流)되어 그 곳에서 정착(定着)하게 되었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은율(殷栗)로 삼았다.

은율(殷栗)은 황해도(黃海道) 북서단(北西端)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고구려(高句麗) 시대에는 율구(栗口) 또는 율쳔현(栗川縣)으로 불리웠다가 고려(高麗) 초에 은율(殷栗)로 고쳐졌다.


대표적인 인물

은율김씨(殷栗金氏)는 시조(始祖) 상동(尙銅)의 둘째 아들 험훈(險訓)이 장사랑(將仕郞)에 올라 가문을 빛냈으며, 손자(孫子) 복순(福順)과 증손(曾孫) 귀만(貴萬)은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부호군(副護軍 : 정 4품 문무관의 관계)을 역임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태중(泰仲), 통사랑(通仕郞) 경진(京珍), 부사과(副司果)에 오른 이관(利寬)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은율 김씨(殷栗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8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은율김씨조상인물

김험훈(金險訓) 조선(朝鮮)에서 장사랑(將仕 郞)에 올랐다.

김복순(金福順)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귀만(金貴萬)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국윤(金國允) 조선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정서(金廷瑞)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태중(金泰仲)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경진(金京珍) 조선에서 통사랑(通仕郞)에 이르렀다.

김이관(金利寬) 조선조(朝鮮朝)에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