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웅천김씨시조(熊川金氏),김중재(金重材),웅천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7:30 수정일 : 2018-04-14 20:56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웅신백 사적기(熊神伯事蹟記)」에 의하면 신라 말에 견훤(甄 萱 : 후백제의 초대왕, 재위기간 : 900~935)이 수차에 걸쳐 후고구려를 침범(侵犯)하자 웅신백(熊神伯)이 경애왕(景哀王 : 신라 제 55대 왕, 재위기간 : 924~927)의 명(命)을 받아 5천 장병(將兵)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이를 격퇴시키고 돌아오니 왕이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웅신현(熊神縣)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 곳에 정착세거(定着世居)하면서 관향(貫鄕)을 웅천(熊川)으로 하게 되었으나 상계(上系)가 실전(失傳) 되어 시조(始祖)의 이름이 전하지 않으므로 조선조에서 수의부위(修義副尉 : 무관에게 내린 정 8품 관계)에 오른 김중재(金 重材)를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웅천(熊川)은 경상남도(慶尙南道) 진해시(鎭海市)에 속한 옛 지명으로 신라초에는 웅지현(熊只縣)이라 하다가 통일신라 때에 웅신현(熊神縣)으로 바뀌었고, 조선 문종(文宗 : 제 5대 왕, 재위기간 : 1450~1452) 때 와서 웅천현(熊川縣)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원종공신(原從功臣) 의령(宜寧 : 일세조 중재의 손자)과 그의 아들 희춘(希春 : 통정대부에 오름)이 유명했으며, 희춘(希春)의 아들 학수(鶴叟)는 집의(執義)에 추증되었고, 좌승지(左承旨 : 정 3품 당상관 벼슬) 신진(信珍)의 아들 남원(南元)은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한편 남원(南元)의 다른 형제 중 맏아들 우경(禹慶)은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고, 차남 우용(禹鎔)과 셋째 진창(振昌)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그밖의 인물로는 우경(禹慶)의 아들 홍택(弘澤)이 1728년(영조 4)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뒤에 양무공신(揚武功臣)에 책록되 었으며, 그의 계자(系子) 취환(就煥 : 생부는 홍필)이 1750년(영조 26)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러 감찰(監察) 홍렴(弘濂), 지평(持平) 취공(就恭), 예조 좌랑(禮曹佐郞) 취행(就行) 등과 함께 명성을 날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결과에 의하면 웅천김씨(熊川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1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 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웅천김씨조상인물

김희춘(金希春) 자(字)는 춘길(春吉).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학수(金鶴叟) 자는 운선(雲仙). 조선에서 집의(執義)에 추증되었다.

김신진(金信珍) 자는 중보(重寶). 조선 때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했다.

김남원(金南元) 자는 성장(聖長).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김홍택(金弘澤) 자(字)는 덕윤(德潤). 조선(朝鮮) 때 양무공신(揚武功臣)에 올랐다.

김우용(金禹鎔) 자는 여화(汝和).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취행(金就行) 자는 원오(元五). 조선에서 좌랑(左郞)을 지냈다.

김진창(金振昌) 자는 윤옥(允玉).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홍렴(金弘濂) 자는 경혐(景賢). 조선조에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취공(金就恭) 자는 사검(士儉). 조선에서 지평(持平)을 지냈다.

김정원(金鼎元) 자는 군숙(君叔).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헌기(金憲基) 1774 (영조 50) ~ 1842 (헌종 8)

자는 치도(穉度), 호는 초암(初菴)․요천(堯泉), 좌랑(左郞) 취행(就行)의 아들. 개성(開城) 출신. 일찍부터 문장가로 알려졌고, 평생을 후학을 위하여 학문을 강론하였으며, 순조(純祖) 말기에 분교관(分敎官)으로 채용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철종(哲宗)초에 좌부승지(左 副承旨)에 추증(追贈), 개성의 요천사(堯泉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