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우봉김씨시조(牛峰金氏),김오(金澳),우봉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7:17 수정일 : 2018-03-24 15:50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우봉김씨(牛峰金氏)의 시조(始祖) 김오(金澳)는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의 맏아들이다.

그는 고려 성종(成宗 : 제6대왕, 재위기간 : 981~997) 때 시어사(侍御史 : 어사대에서 백관의 감찰을 맡아보던 관직)로 나라에 공(功)을 세워 수지의후(首知衣候)에 봉해졌다가 다시 우잠군(牛岑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관향(貫鄕)을 우봉(牛峰)으로 삼게 되었으며, 오(澳)의 손자(孫子) 항일(恒逸)이 고려 문종(文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잠성군(岑城君)에 봉군됨을 시작으로, 그의 손자 원길(元吉)이 전공도위(典工都尉)로서 우봉군(牛峰君)에, 관의(寬毅 : 원길의 아들)는 금성군(錦城君)에 질(櫍 : 원길의 손자)은 우령군(牛嶺君) 에 봉해졌다.

우봉(牛峰)은 황해도(黃海道) 금천군(金川郡)의 옛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시대에는 우잠(牛岑)이라 불리우다가 신라(新羅)경덕왕(景德王 : 제35대왕, 재위기간 : 742~765) 때 우봉(牛峰)으로 고쳤으며, 서기1652년(조선 효종 3)에 이웃 강음(江陰)과 합쳐 금천군(金川郡)으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우봉김씨는 우령군(牛嶺君) 질(櫍)이 한림 학사(翰林學士)․문하시중(門下侍中)․시어사(侍御史)․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등을 지내며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졌고, 계속하여 <오대봉군(五代封君)>과 <사대정승(四大政丞)>을 낳아 고려조에서 크게명성을 떨쳤다.

조선조(朝鮮朝)에서는 아홉 명의 판서(判書)와 다섯명의 공신(功臣)을 배출하여 문무(文武)를 겸한 문장도덕(文章道德)으로 가문(家門)의 중흥을 이룩하였는데, 세종(世宗)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과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내고 원종일등공신(原從一等功臣)에 오른 탁(鐸)이 유명했으며, 성종(成宗) 때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지복(之福)은 학행(學行)이 뛰어나청백리(淸白吏 : 청렴결백한 벼슬아치)에 녹선되어 명성을 떨쳤다.

한편 1536년(중종 31) 무과(武科)에 급제한 우서(禹瑞)가 갑산(甲山)․부령(富寧)․경원(慶源) 등지의 만호(萬戶)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를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이르렀으며, 도명(道鳴)은 숙종(肅宗) 대 온성부사(穩城府使)와 청주 영장(淸州營將)을, 정명(鼎鳴)은 여산(礪山)․상주(尙州)등지의 영장(營將)을 역임하여 부호군(副護軍) 언기(彦基), 절충장군(折衝將軍) 언영(彦英) 등과 함께 유명했다.

현종(顯宗) 때 역과(譯科)에 급제한 지남 (指南)은 일본(日本)과 청(淸)나라에 다녀와서「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과「통문관지(通文館志)」를 편찬하여 대외관계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자료를 남겼으며, 경문(慶門)은 1712년(숙종 38년) 역관(譯官)으로서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울 때 통역을 맡았다.

그외 진명(振鳴)․언기(彦耆)․언기(彦朞)․언질(彦耋)․상두(象斗)등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을 날려 전통(傳統)의 가문(家門)을 더욱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우봉김씨(牛峰金氏)는 남한(南韓)에 총3,32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우봉김씨조상인물

김경희(金慶禧) 고려 때 시어사(侍御史)를 지냈다.

김항일(金恒逸) 고려(高麗)에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했으며, 문종(文宗) 때 보리공신(輔理功臣)으로 잠성군(岑城君)에 봉해졌다.

김원길(金元吉) 고려 때 전공도위(典工都尉)를 지냈고, 우봉군(牛峰君)에 봉해졌다.

김관의(金寬懿) 시호는 문원(文元). 여러 사람들이 보관하고 있던 문서를 수집하여 의종 때「편년통록(編年通錄)」을 저술했다.벼슬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냈으며, 의종 때 문하시중 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좌정승(左政丞)으로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다.

김 질(金 櫍) 고려(高麗)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역임 하였다.

김수강(金守剛) 고려 때 시어사(侍御史)․중서사인(中書舍人)등을 역임 하였다.

김명신(金明臣) 고려 시대에 사공(司空)을 지냈다.

김세웅(金世雄)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김 녹(金 祿) 조선(朝鮮) 때 동래 부사(東萊府使)․철성 부사(鐵城府) 등을 역임했다.

김익성(金益成) 조선(朝鮮) 때 사재부정(司宰副正)을 역임했다.

김 탁(金 鐸)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진사과(進士科)로 급제, 호당(湖當)에 뽑혔고, 후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사인(舍人)을 거쳐 종부시정(宗簿侍正)에 이르렀다.

김 유(金 鏐)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여러벼슬을 거쳐 1507년(중종 2) 중시문과(重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부제학(副提學)을 역임했다.

김지수(金之壽) 학행(學行)으로 세마(涗馬)가 되고, 왕자사부(王子師傅), 집의(執義), 안산(安山)․고성(高城)․평산(平山) 등의 수령을 거쳐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이르렀다. 학행이 뛰어나 청백리(淸白吏)에 뽑혔다.

김 학(金 鶴) 조선 때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역임하였다.

김 붕(金 鵬) 조선(朝鮮) 때 군수(郡守)를지냈다.

김 홍(金 鴻) 조선 때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다.

김우상(金禹祥)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 충청 우후(忠淸虞侯)를 지냈다.

김우서(金禹瑞) 1536년(중종 31) 무과(武科)에 급제, 경원 만호(慶原萬戶)를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지훈련원사(知訓鍊院事) 등을 지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김극성(金克惺)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함안(咸安)․울진 현감(蔚珍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김응구(金應九)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 해(金 瀣) 조선(朝鮮) 때 감찰(監察)을 지내고, 정려(旌閭)가 세워 졌다.

김 호(金 灝) 조선 대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고,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 홉(金 潝) 조선조(朝鮮朝)에 도정(都正)을 지냈다.

김한명(金翰鳴)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여명(金呂鳴) 조선(朝鮮) 때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김도명(金道鳴) 1676년(숙종2) 무과(武科)에 급제, 온성 부사(穩城府使)․청주 영장(淸州營將)을 지냈다.

김진명(金振鳴)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고, 효행으로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정명(金鼎鳴) 1679년 (숙종 2) 무과(武科)에 급제, 삼수 부사(三水府使)를 거쳐 대구(大邱)․여산(礪山)․상주(尙州) 등의 영장(營將)을 지냈다.

김언기(金彦基)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언영(金彦英)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김언기(金彦耆) 1725년(영조 1) 무과(武科)에급제, 선전과(宣傳官)을 지냈다.

김지남(金指南) 1654 (효종 5) ~ ?

자는 계명(季明). 1672년(현종 13) 역과(譯科)에 급제, 1682년(숙종 8) 역관으로 일본․청나라에 다녀왔고, 1698년(숙종 24) 청나라에 다녀와서「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을 저술했다. 또한「통문관지(通文館志)」를 편찬, 대외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벼슬 은 지중추부사 (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김익중(金益重)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경문(金慶門) 자는 수겸(守謙), 호는 소암(蘇巖), 지남(指南)의 아들. 숙종 때 역관 (譯官)이 되고, 1712년(숙종 38)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를 세울 때 통역을 맡았다. 벼슬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김세항(金世恒)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익종(金益鐘)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