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용궁김씨시조(龍宮金氏),김존중(金存中),용궁김씨조상인물,김태백(金太白)

작성일 : 2017-03-28 17:02 수정일 : 2018-02-26 11:19

시 조

용궁김씨시조(龍宮金氏 始祖) 김존중(金存中)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8세손으로, 누대(累代)에 걸친 전통적(傳統的)인왕사(王師 : 임금의 스승)의 가문(家門)에서출생하여 소과(小科)인 남성시(南省試 : 고려때 진사를 뽑던 국자감시를 달리 이르던 말)를 거쳐 인종(仁宗) 때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태자시학(太子侍學)이 되었다.

서기 1146년 의종(毅宗)이 즉위하자 내시원(內侍院)에 들어가 한림원(翰林院)에 겸직, 좌정언(左正言)․지제고(知制誥)를 거쳐 왕명(王命)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및 군기글 맡아보던 관청인 추밀원(樞密 院)의 좌우승선(左右承宣)에 올랐고, 이어 전조(銓曹 : 이부와 예부를 통합한 관청)를 겸하여 문무백관(文武百官)의 선권(選權)을장악하였다.

뒤에 태자 소부(太子少傅)가 되어 한충내보공신(翰忠內輔功臣)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이부 상서(吏部尙書)․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수문전 대학사(修文殿大學士)를 제수(除授)받고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김존중(金存中)을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용궁(龍宮)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본관의 유래

용궁(龍宮)은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에 속한 지명(地名)으로, 신라(新羅) 시대에 축산현(竺山縣)․원산현(園山縣)으로 불리웠으며, 고려(高麗) 초에는 용주(龍州)라 하다가 서기 1012년(현종 3) 용궁현(龍宮縣)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 신종(神宗 : 제20대 왕, 재임기간 : 1197~1204)때 예부 전서(禮部典書)를 지낸 지철(之鐵),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지록(之錄)형제와 대장군(大將軍) 우(祐)가유명했으며, 우(祐)의 아들 진(璡)은 1361년(공민왕 10)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상장군(上將軍) 이성계(李成桂)의 원군(援軍)과 합세하여 박 의(朴 儀)의 모반군(謀叛軍)을 평정(平定)하는데 공(功)을 세워 민부 전서(民部典書)에 올랐다.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창령 현감(昌寧縣監)을 지낸 전(全)과 판관(判官) 직(直)은 한성부윤(漢城府尹) 견호(堅浩), 원주 목사(原州牧使) 옥광(玉光), 의령현감(宜寧縣監) 견수(堅壽) 등과 함께 가문(家門)을빛낸 인물들이며, 태백(太白)은 임진왜란 때 순절하여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고, 통훈대부(通訓大夫)와이조 좌랑(吏曹佐郞)에 추증되었다.

한편 훈(勛)의 맏아들 황(璜)은 임란이등공신(壬亂二等功臣)으로 고창 현감(高敞縣監)을 지내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전사(戰死)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공조 참판(工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에추증되었으며, 필재(弼載)는 한성부 좌윤(左尹)을 거쳐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의 부총관(副摠管)을 지냈다.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지낸 득유(得酉)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공(功)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으며, 중원(重元)은 호조 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어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낸 광백(光百), 부호군(副護軍) 종호(鍾壕)․종복(鍾復)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그외 순조(純祖) 때의 성리학자(性理學者)호성(昊星)과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 홍권(弘權)이 유명했고, 국현(國鉉)은 항일투사(抗日鬪士)로 명성을 날려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용궁김씨(龍宮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2,56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용궁김씨조상인물

김존중(金存中) ? ~ 1156 (의종 10)

자는 치허(致虛), 시호는 경숙(景肅). 인종때 태자 시학(太子侍學)이 되고, 문과(文 科)에 급제, 첨사부 녹사(詹事府綠事)가 된뒤 1146년 의종이 즉위하자 태자 때의 은혜로 내시(內侍)가 되었다. 그후 기거주(起居注)․보문각 동제거(寶文閣同提擧)를 거쳐 우승선(右承宣)을 지냈다.

김지철(金之鐵) 고려 신종 때 예부 전서(禮部典書)를 역임했다.

김지록(金地錄) 고려 신종 때 밀직사 우부대언지(密直司右副代言知)․판도사사(判圖司事)를 역임했다.

김 우(金 祐) 고려 1349년(충정 1) 감무위대장군(監門衛大將軍)을 역임했다.

김 진(金 璡) 1361년(공민왕 10)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상장군(上將軍) 이성계(李成桂)의 원군(援軍)과 합세하여 박 의(朴儀)의 모반군을 멸했으며, 뒤에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냈다.

김 전(金 全) 조선 세종 때 창령 현감(昌寧縣監)을 지냈다.

김 직(金 直) 조선 세종 때 판관(判官)을역임했다.

김견호(金堅浩) 조선 성종(成宗) 때 한성 부윤(漢城府尹)을 지냈다.

김옥광(金玉光) 조선 때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순찰사(巡察使)를 거쳐 원주 목사(原州牧使)를 역임했다.

김견수(金堅壽) 조선 성종(成宗) 때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냈다.

김원돈(金元惇)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김응진(金應振)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부사과(副司果)를 거쳐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었다.

김 치(金 錙)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거쳐 절충장군(折衝將軍)을 지냈다.

김 보(金 寶) 1539 (중종 34) ~ 1615 (광해군 7)

자는 방언(邦彦), 호는 술고재(述古齋). 1572년(선조 5) 효행(孝行)으로 천거 받아 후릉 참봉(厚陵參奉)을 지냈다.

김경헌(金景獻)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김태백(金太白) 임진왜란 의순공신(義殉功臣)으로 선무원종 1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훈(策勳)되고, 통훈대부(通訓大夫)․통정대부(通政大夫)․호조 좌랑(戶曹佐郞)․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에 추증(追贈)되었다.

김 벽(金 璧)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호분위 좌부장(虎賁衛左部將)을 지내고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었다.

김윤선(金胤善)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김 일(金 鎰) 조선조에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지냈다.

김준걸(金俊傑) 조선조에 통정대부(通政大夫)․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에 추증(追贈)되었다.

김후적(金厚積)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 선략장군(宣略將軍)이 되었다.

김 황(金 煌)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 사과(司果)를 지냈다.

김수동(金壽仝)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사직(司直)을 지냈다.

김세건(金世健)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사직(司直)을 지냈다.

김인복(金仁福) 조선조에 제용주부(濟用主簿)를 거쳐 군수(郡守)를 역임했다.

김 량(金 樑) 조선조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 한(金 翰)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고원 군수(高原郡守)를 지냈다.

김 추(金 樞) 조선 선조(宣朝) 때 별제(別提)를 지냈다.

김 주(金 柱) 조선조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대경(金大慶) 예빈봉사(禮賓奉士)를 지냈다.

김원상(金元詳) 조선조에 주부(主簿)를 지냈다.

김득서(金得瑞)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었다.

김 황(金 璜)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임진왜란 때 서무원종 2등 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책훈(策勳)되고, 고창 현감(高敞縣監)을 지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공조 참판(工曹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추증(追贈)되었다.

김 황(金 璜)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임진왜란 때 서무원종 2등 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책훈(策勳)되고, 고창 현감(高敞縣監)을 지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공조 참판(工曹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추증(追贈)되었다.

김구노(金求老)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김필재(金弼載)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했다.

김 범(金 範)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훈련첨정(訓鍊僉正)을 지냈다.

김 탁(金 鐸) 조선(朝鮮) 때 무과(武科)에 급제, 훈련부정(訓鍊副正)을 지냈다.

김득유(金得酉)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수문장 주부(守門將主簿)․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지내고, 병자호란 때 공훈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의 훈록을 받았다.

김상침(金尙琛) 아들 중원(重元)의 공훈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호조참판(戶曹參判)이 증직(贈職)되었다.

김중원(金重元) 1728년(영주 4) 김 경(金 鏡)의 잔당이 병란(丙亂)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양무원종1등공신(楊武原從一等功臣)에 올랐고, 가선대부(嘉善大夫)․호조참판(戶曹參判)에 증직(贈職)되었다.

김중상(金仲詳) 무과(武科)에 급제, 사과(司果)를 거쳐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역임했다.

김효건(金孝健) 무과(武科)에 급제, 첨정(僉正)을 지냈다.

김두만(金斗萬) 무과(武科)에 급제, 훈련주부(訓鍊主簿)를 지냈다.

김익상(金益祥) 율학교수(律學敎授)를 지냈다.

김창호(金昌濠)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마량진 수군첨절제사(馬梁鎭水軍僉節制使)를 지내고 어모장군(禦侮將軍)이 되었다.

김광백(金光百)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보성 군수(寶城郡守)를 거쳐 순천진관병마동첨절제사(順川鎭管兵馬同僉節制使)를 지냈다.

김종호(金鍾壕)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고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김종복(金鐘復)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김호성(金昊星) 조선 때 성리학자(性理學者)이면서 수리학(數理學)에도 통달, 당시에 이미 서양전래(西洋傳來)의 신수학(新數學)을 터득, 대수(代數)․기하(幾何) 등 현대수학을 망라한 삼산강령(三算綱領)을 저술하였다. 뒤에 동몽교관(童蒙敎官)․조봉대부(朝奉大夫)에 올랐다.

김홍권(金弘權) 일제시대 때 백산(白山) 안의제(安義濟)등과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운영, 독립운동자금 조달에 힘써 상해 임시정부의 유지․활동에 크게 공헌하였다. 1963년 3월 1일 건국공로 대통령표창(建國功勞大統領表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