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영양김씨시조(英陽金氏),김충(金忠),김충황(金忠晃),영양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4:53 수정일 : 2018-03-02 12:05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영양김씨(英陽金氏)는 중국(中國)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에서 계출(系出)되었다고 한다.

「영양김씨세보(英陽金氏世譜)」의 기록에 의하면 당(唐)나라에서 형주자사(荊州刺史) 겸 안렴사(按廉使)를 지낸 김충(金忠)이 사신(使臣)으로 일본(日本)에 가다가 심한 풍랑으로 신라(新羅)인근의 해안(海岸)인 경북(慶北) 영덕군(靈德郡) 축산(丑山)에 표착(漂着)하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경덕왕(景德王 : 제35대왕, 재위기간 : 742~765)은 영양(英陽)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하고 남씨(南氏)로 사성(賜姓)하였으며, 그가 죽은 후 영의(英毅)라는 시호(諡號)를 내려주었다.

충(忠)의 아들 석중(석중)은 아버지의 본래의 성(姓)인 김(金)을 사용하며 영양 (英陽)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그의 아들원(源)으로 하여금 김씨(金氏)의 혈통(血 統)을 잇게 하였다. 그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계대(系代)를 밝히지 못함으로 고려조(高麗朝)에서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한 김충황(金忠晃)을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영양(英陽)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조선씨족통보(朝鮮氏統譜)」영양 김씨(英陽金氏)를 석릉(石陵 : 안동의 별호) 김씨라고도 하며, 고창군(古昌郡) 태수(太守)인 김선평(金宣平)의 후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양(英陽)은 경상북도(慶尙北道) 북동부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본래의 고은현(古隱縣)을 신라말(新羅末)에 와서 영양(英陽)이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家門)을 일으킨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충황(忠晃)의 증손(曾孫) 상윤(商允)이 고려조에서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역임하였고, 그의 아들 원(原)은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으며, 손자 예(銳 : 밀직부사 역임)와 적(鏑 : 영동정을 역임)이 뛰어났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생원(生員) 덕부(德溥)의 아들 3형제가 모두 현달하여 가문을 빛냈는데 맏아들 도생(道生)은 진도 군수(珍島郡守)를, 둘째 이생(理生)은 전객시사(典客시事)를 지냈으며, 막내 의생(義生)은 총랑(聰郞)을 역임했다.

그외 감사(監司) 성기(成器)의 아들 인배(仁裵)가 참판(參判)을 지냈고, 부사(府使) 성협(成鋏)의 아들 덕온(德溫)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여 현감(縣監) 유중(有中), 부사(府使) 자온(自溫) 등과 함께 이름을 나렸다.

1477년(세종 29) 문과(文科)에 급제한 극행(克行)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를 지냈으며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어 가문(家門)의 전통(傳統)을 살렸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영양 김씨(英陽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8,77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영양김씨조상인물

김석중(金錫中) 고려(高麗)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올라 상서복야(尙書僕射)를 지냈다.

김 원(金 源) 고려조에 봉익대부(奉翊大夫)․밀직부사(密直副使)․상호군(上護軍)등을 역임하였다.

김상윤(金商允) 고려때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역임하였다.

김 원(金 原) 고려(高麗)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다.

김 예(金 銳) 고려조(高麗朝)에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다.

김 적(金 鏑) 고려조에 동정(同正)을 지냈다.

김성검(金成劍) 고려 때 판윤(判尹)을 역임하였다.

김성기(金成器) 고려(高麗)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김성협(金成鋏) 고려에서 부사(府使)를 지내다.

김덕온(金德溫) 호(號)는 야부(野夫). 고려 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지냈다.

김이생(金理生) 고려조(高麗朝)에 전객시사(典客寺事)를 지냈다.

김의생(金義生) 고려 때 총랑(摠郞)을 역임하였다.

김인배(金仁裵) 조선(朝鮮) 때 참판(參判)을 역임했다.

김도생(金道生) 조서 때 진도 군수(珍島郡守)를 지냈다.

김목보(金睦寶) 조선조에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득호(金得濩) 조선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김 난(金 鸞) 조선조(朝鮮朝)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지로(金智老) 조선에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신천 부사(信川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중공(金仲恭) 조선(朝鮮) 때 관찰사(觀察使)를 역임하였다.

김유중(金有中) 조선조에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유용(金有庸) 조선 때 부사직(府司直)을 역임했다.

김자온(金自溫) 자(字)는 심언(深彦). 조선 때 부사를 역임하였다.

김자강(金自江) 조선에서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경손(金庚孫) 조선(朝鮮)때 내금위(內禁衛)를 지냈다.

김극행(金克行) 자(字)는 진오(振五). 호(號)는 옥봉(玉峰). 1447년(세종 29)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成均館博士)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