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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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03-28 12:12 수정일 : 2018-01-31 10:27

언양김씨시조 및 언양김씨유래(본관)

언양김씨신유보(彦陽金氏辛酉譜)」와「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의 기록에 의하면 그가 고려(高麗)언양군(彦陽君)에 봉군되었으므로, 후손들이 본관(本貫)을 언양(彦陽)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양(彦陽)은 경상남도 동북부(東北部)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신라(新羅)때의 거화현(居火縣)인데 경덕왕(景德王 : 35대 왕, 재위기간 742765)이 헌양(巘陽)으로 고쳤으며, 고려(高麗)때 와서 언양(彦陽)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시조(始祖) ()의 손자 정보(精寶)가 고려에서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지냈고, 증손(曾孫) 경숙(鏡淑)은 대장군(大將軍 : 3품 무관직 벼슬)을 역임하여 신호위 별장(神號衛別將) (: 경숙의 아들)와 함께 이름을 날렸으며, ()의 아들 언련(彦連)은 신호위 중랑장(神號衛中郞將)을 지냈다.

한편 언양 김씨(彦陽金氏)가 자랑하는 취려(就礪)는 음보(蔭補 : 조상의 덕으로 벼슬에 오름)로 정위(正尉)에 임명되어 동궁위(東宮衛때)를 거쳐 장군(將軍)으로서 동북계(東北界를)를 진압한 후,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1216(高麗 고종 3) 거란군(거丹軍)의 침입을 물리치고, 1219(고종 6) 국경 경비병 출신인 부방(副將) 다지(多知)의 반란을 평정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판호부사(判戶部事)에 올랐다.

이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태자 태사(太子太師)로 특진한 후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이르렀으며, 평소 강직하고 청백한 성품으로 군기를 엄정히 하고 부하를 아꼈으며, 전장에서는 기발한 계교로써 많은 공()을 세웠다.

취려(就礪)의 아들 전()도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상장군(上將軍)․판리부사(判吏部事)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양감(良鑑 : 상장군으로 언양군에 봉군)과 변(: 첨의평리를 역임)이 유명하다.

한편 양감(良鑑)의 셋째 아들 문연(文衍)은 첨의중호(僉議中護)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고, ()의 아들 윤()은 충목왕(忠穆王 : 29대 왕, 재위기간 : 13441348) 초에 찬성사(贊成事)를 거쳐 좌정승(左政丞)에 이르러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경직(敬直)이 문하시중(門下侍中)․검교첨의찬성사(檢校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언양백(彦陽伯)에 봉군되어 가문을 중흥시켰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선천 군수(宣川郡守)를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내고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진 숙보(叔甫)의 아들 관()1451(문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병조 정랑(兵曺正郞)을 지내고, 세조(世祖) 때는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平定)하는데 공()을 세워적개이등공신(敵愾二等功臣)으로 종부시정(宗簿寺正 : 왕실의 보첩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 3품 벼슬)이 되었으며, 강원도(江原道)와 황해도(黃海道)의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뒤 예종(睿宗) 초에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지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된 언침(彦琛)의 아들 천일(千鎰)은 임실 현감(任實縣監)을 지내고, 임진왜란 때 나주(羅州)에서 고경명(高敬命)․박광옥(朴光玉)․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조정(朝廷)으로부터 판결사(判決事)의 벼슬과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왜군(倭軍)과의 전투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진주성(晋州城)을 사수(死守)하다가 적에게 성()을 함락당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자결하여 뒤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어 가문을 더욱 빛냈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병조 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광필(匡弼)의 아들 준()이 선조(宣祖)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교동 현감(喬桐縣監)을 지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난정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죽산 부사를 지내고 안주 목사(安州牧使) 겸 방어사(防禦使)가 되어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 안주성(安州城)이 함락되자 처자와 함께 자결하여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으며, 중만(重萬)은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를 역임하여 병조 참판(兵曹參判) 석중(石重)․취련(取鍊)․군자감정(軍資監正) 도손(道遜), 중추부사(中樞府使) 덕순(德純)․창우(昌宇)․희채(禧采), 이조 참판(吏曺參判) 순봉(舜鳳), 공조 참의(工曹參議) 사호(士豪)․두열(斗烈)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언양김씨(彦陽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52,652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언양김씨조상인물

김 진(金 進) 고려때 예부시랑(禮部侍郞)을 역임하였다.

김정보(金精寶) 예부 시랑 진()의 아들. 고려때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

김경숙(金鏡淑) 호부 상서 정보(精寶)의 아들. 고려때 대장군(大將軍)을 지냈다.

김 수(金 壽) 경숙(鏡淑)의 아들. 신호위 별장(神號衛別將)을 역임.

김언련(金彦連) 일명(一名) 언량(彦良). 신호위 중랑장(神號衛中郞將)을 역임.

김 부(金 富) 언련(彦連)의 아들. 금오위 별장․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하였다.

김취려(金就礪) ? 1234 (고종 21)

시호(諡號)는 위열(威烈), 예부시랑(禮部侍郞) ()의 아들. 음보(蔭補)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후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이 되었다.

1216(고종 3)에 거란(契丹) 왕자 금산(金山)․금시(金始)가 대요수국왕(大遼收國王)이라 칭하고 몽고군에게 쫓기어 쳐들어온 것을 무찌르고, 1218년의 재침도 평정, 한순(韓恂)등이 의주(義州)에서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는 등, 공로가 많아 편병부사(判兵部事)․시중(侍中)까지 되었다. 성미가 곧고 청백하여 군기를 엄정히 하고 부하를 골고루 아끼었으며 싸움에서는 기발한 계교를 많이 꾸며서 큰 공을 세웠다.

김 전(金 佺) 시호는 익대(翼戴). 고종때 좌복야(左僕射), 원종(元宗)때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1271(원종 12)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김단병(金丹兵) 고려(高麗) 때 정주(廷州)․개평(開平)의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김 변(金 賆) ? 1301 (충렬왕27)

자는 손지(損之), 히소는 문신(文愼), 시중(侍中) 취려(就礪)의 손자, 문화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의 아들. 음보(蔭補)로 동면도감 판관(東面都監判官)에 기용된 후 문과에 급제, 예부낭중(禮部郎中)이 되었으며, 충렬왕이 세자로 원나라에 있을 때 시종한 공으 로 서권(誓券)을 하사받았다. 1295(충렬왕 21) 사관 찬수관(史館撰修官)으로 원나라 세조의 사적(事跡)을 편찬했고, 이어 승지(承旨)․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를 거쳐 서북면 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를 역임하고, 1301(충렬왕 27) 첨의참리(僉議參里)에 이르렀다.

김광연(金光衍) 고려때 상장군(上將軍)을 역임하였다.

김문연(金文衍) ? 1314(충숙왕 1)

시호는 영희(榮僖), 무장(武將) 취려(就礪)의 증손자. 여동생이 충렬왕의 숙창원비(淑昌院妃)가 된 후에 기용되어 좌우위산원(左右衛散員).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등을 역임하였다. 1305(충렬왕 31)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갔을 때 원나라에 체재중인 충선왕과 충렬왕 부자(父子)간을 이간시키려는 왕유소(王愉紹) 등의 죄상을 폭로했고, 뒤에 본국의 정치를 다시 장악하게 된 충선왕의 명을 받고 고려로 돌아와 구신(舊臣) 및 간신(奸臣)들을 제거했다. 충선왕이 즉위한후 첨의중호(僉議中護)가 되고, 뒤에 볼모를 데리고 원나라에 가서 신무장군(信武將軍)․진변만호(鎭邊萬戶)에 언양군(彦陽君)으로 봉해졌다.

김백수(金伯綬) 고려 시대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김 윤(金 倫) 1277 (충렬왕 3) 1348 (충목왕 4)

자는 무기(無己), 호는 죽헌(竹軒), 시호는 정렬(貞烈). 음보(蔭補)로 노부 판관(鹵簿判官)이 되고, 신호위 호군(神號衛護軍)을 거쳐 변정도감 부사(辯正都監副使)․감찰시승(監察侍丞)을 지냈으며, 충렬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시종했다. 귀국해서 첨의평리․삼사 우사를 지낸 뒤 충목왕 초에 찬성사(贊成事)․좌정승(左政丞)을 역임했다.

김 혁(金 奕) 고려시대에 사복시사(司僕寺事)를 지냈다.

김윤덕(金允德) 고려조에 좌사윤(左司尹)을 지냈다.

김가기(金可器) 고려(高麗) 때에 김해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를 지냈 으며, 봉정대부(奉靖大夫)에 이르렀다.

김경직(金敬直) 시호는 충경(忠敬), 언양군(彦陽君) ()의 아들. 1351(충정왕 3)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첨의평리(僉議評理)에 올랐고, 1354(공민왕 3)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와서 찬성사(贊成事)를 지냈으며, 1355(공민왕 4)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 졌다. 1356(공민왕 5) 전라도 도순문사(全羅道都巡問使)로 나갔으며, 1359(공민왕 6) 수사도 상주국(守司徒上住國)으로 언양백(彦陽伯)에 봉해지고 검교시중(檢校侍中)에 이르렀다.

김숙명(金淑明) 고려조에 개성판관(開城判官)을 지냈다.

김희조(金希祖) 문과(文科)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356(공민왕 5)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이 되고, 1359(공민왕 8) 추밀원사(樞密院事)에 올랐다. 홍건적(紅巾賊)이 쳐들어왔을 때 남행(南行)에 호종(扈從), 뒤에 그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었다.

김승구(金承矩) 고려 때 통례문 부사(通禮門副使)를 지냈다.

김용휘(金湧揮) 고려에서 봉익대부(奉翊大夫)에 올라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내고,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김수익(金受益) 고려조에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으며 가 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계생(金繼生) 조선(朝鮮) 시대에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했다.

김복생(金復生) 조선조에 공조 전서(工曺典書)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효례(金孝禮) 조선때 성균관 좨주(成均館祭酒)를 지냈다.

김 상(金 賞) 조선 시대에 도원수(都元帥)․진주 목사(晋州牧使)․좌찬성(左贊成) 등을 지냈으며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김 곡(金 穀) 조선 때 문과(文科)에 급제, 부사(府使)․소윤(少尹)을 지냈다.

김 소(金 素) 조선조에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이조판서(吏曺判書) 등을 역임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계소(金繼召) 조선(朝鮮) 때 형조참판(刑曺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도총부 부총관(都摠府副摠管) 등을 지냈다.

김 혁(金 赫) 1416(태종 16) 문과중시(文科重試)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직예문관(直藝文館)이 되고, 세종때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좌대언(左代言)에 이르렀다.

김 문(金 汶) ? 1448 (세종 30)

자는 윤보(潤甫), 호는 서헌(西軒), 복생(復生)의 아들. 1420(세종 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성균관(成均館)에 보직되고 주부(主簿)를 거쳐 1435(세종 17) 집현전 수찬(集賢殿修撰)에 올라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특히 사학(史學)에 정통했고, 1446(세종 28) 세종의 명으로 사서(四書)를 번역했다.

김 약(金 躍) 조선 때 능성현령(綾城縣令)을 거쳐,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김백행(金伯行) 조선조에 개성부 단사관(開城府斷事官)을 지냈다.

김극경(金克敬) 조선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경장(金慶長) 조선(朝鮮) 시대에 부사(府使)를 역임했다.

김경번(金慶蕃) 조선 때 정산현감(定山縣監)을 지냈다.

김 윤(金 潤) 조선 때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를 역임하였다.

김자건(金子騫) 조선조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직산현감(稷山縣監)을 거쳐 삭주판관(朔州 判官관)․황해도 병마사(黃海道兵馬使)에 이르렀다.

김명석(金命碩) 조선시디에 덕원 부사(德源府使)를 지냈다.

김맹보(金孟甫) 조선 때 사직(司直) 겸 감찰(監察)․장성 현감(長城縣監) 등을 지냈다.

김숙보(金叔甫) 조선 때 선천군수(宣川郡守)․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다.

김계보(金季甫) 조선조에 형조 도관(刑曹都官)을 거쳐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냈다.

김맹돈(金孟敦) 조선때 안주 목사(安州牧使)를 역임하였다.

김효진(金效震) 조선(朝鮮)에서 순안 현령(順安縣令)을 지냈다.

김계문(金繼門) 조선때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약흠(金若欽) 조선 시대에 보성 군수(輔成郡守)를 역임하였다.

김계요(金繼堯) 조선조에 부평 부사(富平府使)를 지냈다.

김경조(金慶祖) 조선때 의령 현감(宜寧縣監)을 지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 관(金 瓘) 시호는 공양(恭壤). 1451(문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병조 정랑(兵曹正郞)을 지내고, 1467(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오르고 종부시정(宗簿寺正)이 되었다.

1469(예종 1)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지고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겸 영흥 부윤(永興府尹)․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등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김 종(金 淙) 조선 때 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를 지냈다.

김석천(金石川) 조선조에 순안 현령(順安縣令)을 역임하였다.

김증수(金增壽) 조선(朝鮮) 때 순안 현령(順安縣令)을 역임했다.

김연수(金連壽) 조선 때 연기 현감(燕岐縣監)을 역임했다.

김 기(金 記) 조선(朝鮮) 때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희수(金熙壽) 조선 때 현령(縣令)을 지냈다.

김 연(金 鍊) 조선 때 개령 현감(開寧縣監)을 지냈다.

김극연(金克鍊) 조선 시대에 장극 부사(長戟府使)를 역임했다.

김극장(金克鏘) 조선(朝鮮) 때 숙천부사(肅川府使)를 지냈다.

김극섬(金克銛) 조선 때 사포별제(司圃別提)를 지냈다.

김자휘(金自輝)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 개(金 漑) 조선 때 예빈시 직장(禮賓寺直長)을 역임했다.

김 언(金 彦) 조선 때 군자감 직장(軍資監直長)을 역임했다.

김효준(金孝俊) 조선조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세진(金世珍) 조선 때 대흥현감(大興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세순(金世珣) 조선조(朝鮮朝)에 문화 현령(文化縣令)을 지냈다.

김언옥(金彦玉) 조선시대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찬(金 鑽) 조선조에 청송부사(靑松府使)를 역임했다.

김삼경(金三敬) 조선(朝鮮) 때 용궁 현감(龍宮縣監)을 지냈다.

김사지(金四知) 1492(성종 2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전적(典籍)을 지냈다.

김삼준(金三俊) 1486(성종17)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김제 군수(金堤郡守) 등을 지냈으며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랐다.

김 담(金 潭) 조선 때 상호군(上護軍)․좌찬성(左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김 눌(金 訥) 조선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 휘(金 諱) 조선조에 흥양 현감(興陽縣監)을 지냈다.

김자수(金自修) 1507(중종 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황해도 도사(黃海道都事)를 지냈다.

김덕중(金德仲) 조선시대에 흥양 현감(興陽縣監)을 지냈다.

김광우(金光祐) 조선(朝鮮) 시대에 옥천군수(沃川郡守)를 지냈다.

김덕연(金德淵) 조선조에 신창 현감(新昌縣監)을 지냈다.

김 탁(金 濯) 조선 때 안변 교수(安邊敎授)를 지냈다.

김덕유(金德裕) 조선때 예조정랑(禮曺正郞)을 거쳐 봉정대부(奉靖大夫)에 올랐다.

김의국(金義國) 조선 때 고부군수(古阜郡守)를 역임하였다.

김대우(金大愚) 조선(朝鮮) 때 부사정(副司正)을 역임하였다.

김세근(金世瑾) 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김 겸(金 謙) 조선 시대에 해미 현감(海美縣監)을 지냈다.

김 지(金 軹) 조선시대에 충좌위 대호군(忠佐衛大護軍)을 역임하였다.

김 지(金 輊) 조선시대에 어모장군(禦侮將軍)․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

김 식(金 軾) 조선조(朝鮮朝)에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 혜(金 譓) 조선 때 남원 교수(南原敎授)를 지냈다.

김 운(金 雲) 조선조에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냈다.

김옥희(金玉希)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長軍)을 지냈다.

김 홍(金 泓) 조선 때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역임하였다.

김양보(金良寶) 조선 시대에 진도 군수(珍島郡守)를 지냈다.

김숙관(金淑灌) 조선 때 통천 군수(通川郡守)를 지냈다.

김수증(金壽增)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평국(金平國)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옥령(金玉齡) 조선 때 군자감(軍資監)을 거쳐 전주 판관(全州判官)을 역임했다.

김안제(金安濟) 조선 때 지평(持平)을 지냈다.

김응군(金應國) 조선조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 숙(金 淑) 조선시대에 절충장군(折衝長軍)을 역임하였다.

김 섬(金 銛) 자는 자진(子晋), 계조(繼祖)의 아들. 1513(중종 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지평(持平)을 거쳐 수찬(修撰)․사간(司諫)․직제학(直提學) 등을 지내고 1531(중종 26) 김안로(金安老)를 탄핵한 일로 풍덕(豊德)에 유배 되었다가 1537(중종 32) 풀려나와 함경도 관찰사․호조 참판(戶曹參判)․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김 정(金 挺) 1519(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공조좌랑을 지냈다.

김 봉(金 鋒) 조선시대에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냈다.

김 건(金 鍵) 1572(선조 5) 친시문과(親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덕원 부사(德源府使)를 지냈다.

김응상(金應祥) 자는 서백(瑞伯), 현감(縣監) 덕윤(德潤)의 아들. 직산(稷山) 출신. 선조 때 종계변무사(宗系辨誣使) 황 임(黃 琳)의 종사관(從事官)으로 북경에 다녀왔으며,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했다.

김서생(金瑞生) 1572(선조 5)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김경생(金景生) 1573(선조 6)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김응생(金應生) 1574(선조 7) 문과(文科)에 급제, 예조정랑(禮曺正郞)을 지냈다.

김승업(金承業) 조선조에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김승렬(金承烈) 조선시대에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를 지내고 조봉대부에 이르렀다.

김 박(金 珀) 조선때 사헌부사(司憲府使)를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만일(金萬鎰) 조선(朝鮮) 때 진원 현감(珍原縣監)을 지냈다.

김천일(金千鎰) 1537 (중종 32) 1593 (선조 26)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 시호는 문열(文烈). 이 항(李 恒)의 문하에서 수업.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1573(선조 6) 군기시 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선조 11)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나주(羅州)에 있 다가 의병을 일으켜 조정으로부터 판결사(判決事)의 벼슬과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았다. 왜적이 남으로 퇴각하자 진주성(晋州城)에 주둔, 맞서 싸웠으나 성이 함락당하자 남강(南江)에 투신 자살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김 초(金 礎) 조선 시대에 문천 군수(文川郡守)를 지냈다.

김성진(金聲振) 조선 때 장악원 정만(掌樂院正萬)을 지내고 통훈대부에 올랐다.

김성원(金聲遠) 조선 때 훈련 판관(訓鍊判官)을 거쳐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다.

김승업(金承業) 조선(朝鮮)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김담령(金담齡) 조선 때 흡곡 현령(翕谷縣令)을 지냈다.

김정목(金廷睦) 1583(선조 16)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 강(金 矼) 조선 때 군자감 부정(軍資監副正)을 지냈다.

김여충(金汝忠)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여순(金汝純) 1589(선조 22)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김종윤(金宗胤) 1592(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을 따라 전전(轉戰), 안산(安山) 일대를 수호하는데 성공했다. 후에 노인직(老人職)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 되었다.

김종한(金宗漢) 조선 때 충훈부 도사(忠勳府都事)를 지냈다.

김종해(金宗海) 조선(朝鮮) 때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지냈다.

김우신(金遇新) 조선(朝鮮)시대에 율봉도 찰방(栗峰道察訪)을 역임했다.

김상건(金象鞬) 천일(千鎰)의 아들. 사포서 별좌(司圃署別座)를 지냈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진주성(晋州城)에서 아버지와 함께 순절(殉節)하였다.

김구정(金九鼎) 조선조(朝鮮朝)에 통천군수(通川郡守)를 역임하였다.

김효전(金孝佺)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長軍)을 지냈다.

김남갑(金南甲) 조선(朝鮮) 때 문경현감(聞慶縣監)을 지냈다.

김 숙(金 熟) 조선 때 만호(萬戶)를 지냈으며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이르렀다.

김 호(金 壂) 조선 때 양덕현감(陽德縣監)을 지냈다.

김 전(金 壂) 조선 때 청산 현감(靑山縣監)을 역임하였다.

김 준(金 浚) 1582 (선조 15) 1627 (인조 5)

자는 징언(澄彦), 시호는 장무(壯武). 1605(선조 38) 무과(武科)에 급제, 선전관(宣傳官)․교동현감(喬桐縣監) 등을 지내다가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낙향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 죽산부사(竹山府使)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일어난 이괄(李 适)의 난을 평정한 후에는 의주부윤(義州府尹)․봉산군수(鳳山郡守)를 거쳐 1625(인조 3) 안주목사(安州牧使) 겸 방어사(防禦使)가 되었으며, 1627(인조 5)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후금에게 안주성이 함락되자 분신자결(焚身自決)했다. 좌찬성(左贊成)에 추증.

김 연(金 沇)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長軍)․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김노희(金魯熙) 조선조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냈으며, 효행으로 이름이 높았고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진성(金震聲)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광경(金光璟) 조선시대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낙용(金落龍) 조선(朝鮮) 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참판(參判)을 역임했으며,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추증되었다.

김 감(金 鑑) 조선 때 한성 판윤(漢城判尹)을 지냈으며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추증(追贈)되었다.

김천석(金天錫) 조선(朝鮮)때 효자로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김약채(金若采) 조선 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효현(金孝賢) 조선때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이르렀으며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김성일(金成鎰) 조선시대에 예빈시 첨정(禮賓寺僉正)을 지냈다.

김휴방(金休邦)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치복(金致福) 조선(朝鮮) 때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역임하였다.

김상순(金相淳) 조선(朝鮮)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김석해(金錫海) 조선 때 연풍 현감(延豊縣監)을 지냈다.

김춘택(金春澤) 조선 시대에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지냈다.

김 전(金 錢) 조선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김이정(金以鼎)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지냈다.

김재진(金載振) 조선 때 호조참판(戶曹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도총부 부총관(都摠府副摠管)을 역임했다.

김 곤(金 坤)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으며 부호군(副護軍)을 역임 하였다.

김시간(金時諫)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종선(金宗善) 조선 때 군수(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수백(金守白)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경택(金璟澤) 조선(朝鮮) 때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역임했다.

김시필(金時弼) 조선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김창수(金昌壽)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고, 좌윤(左尹)을 역임했다.

김구인(金九仁)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구이(金九利) 조선(朝鮮) 때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광원(金光源) 조선 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광묵(金光黙)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대홍 진영장(大興鎭營將)을 지냈다.

김능모(金能謀)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수민(金秀敏) 조선 때 군자감 주부(軍資監主簿)․한성부윤(漢城府尹)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官) 등을 역임하였다.

김형백(金亨白)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용양위 호군(龍驤衛護軍)을 역임하였다.

김대관(金大觀)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용양위 호군(龍驤衛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시풍(金始豊) 조선조(朝鮮朝)에 절충장군(折衝長軍)을 거쳐 첨지중추 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재풍(金載豊)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비서원승(秘書院丞)을 지냈다.

김한영(金漢榮)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대유(金大有)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수의(金守義)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러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하였다.

김한추(金漢秋)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한조(金漢祚)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을 지냈다.

김화풍(金和豊) 조선(朝鮮)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올랐고,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김수명(金壽命)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고,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 겸 오위도 부총관(五衛都副摠官)을 지냈다.

김덕린(金德隣) 조선(朝鮮) 때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렀고,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정일(金精一)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고,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문성진 병마첨절제사(文城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김우손(金祐孫) 조선 때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를 지내고, 조봉대부(朝奉大夫)에 이름.

김 준(金 遵) 조선 때 통례원 인의(通禮院引義)․조봉대부(朝奉大夫)에 이르렀다.

김형일(金衡一)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 관(金 琯) 조선 때 공조참판(工曹參判)을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

김유손(金裕孫)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경원(金敬遠)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경유(金敬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경운(金敬運) 조선때 절충장군(折衝長軍)․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김상일(金尙一)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김대경(金大敬)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참판(戶曹參判)․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완기(金完基) 조선 때 정헌대부(正憲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정기(金廷基) 조선때 무과(武科)에 급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 호(金 琥)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

김우경(金友敬)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 부윤(漢城府尹) 겸 오위장(五衛將)․도총부부총관(都摠府副摠管)을 지냈다.

김윤기(金潤基)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차명(金次命)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거쳐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官)을 지냈다.

김덕순(金德純)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

김이일(金履一) 조선조(朝鮮朝)에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경일(金慶一)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

김 황(金 璜)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후연(金厚衍)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도사(同知義禁府都事)를 지냈다.

김재수(金在洙) 조선때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상호군(上護軍)을 지냈다.

김충일(金忠一) 조선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운봉영장(雲峰營將)을 역임하였다.

김 기(金 琦) 조선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했다.

김도유(金道遊) 조선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김매선(金每善)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러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세우(金世佑)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절충장군(折衝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거쳐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했다.

김광연(金光衍) 조선(朝鮮) 때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재근(金在根)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치봉(金致鳳)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화순현감(和順縣監)을 지냈다.

김규석(金奎錫) 조선때 한성부 서윤(漢城府庶尹)을 지냈다.

김도석(金道錫) 조선(朝鮮) 때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치건(金致乾)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휘석(金徽錫)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주용(金宙容)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 회(金 璯) 조선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주언(金冑彦)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절충장군(折衝長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거쳐 용야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김경흡(金慶洽)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원 참찬관(經筵院參贊官)을 지냈다.

김이옥(金理玉)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김진성(金振聲) 조선(朝鮮) 때 개자현감(開字縣監)을 지냈다.

김유성(金有聲) 조선때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지냈고,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김응구(金應九) 조선 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김순봉(金舜鳳)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역임했다.

김양건(金陽健)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이조참판(吏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거쳐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官)을 지냈다.

김재주(金在鑄) 조선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이조판서 겸 의금부사(義禁府使)․춘추관사(春秋館事)․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官)등을 지냈다.

김 경(金 鏡)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러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官)을 지냈다.

김진헌(金振瀗) 조선때 무과(武科)에 급제, 경원부사(慶源府使)를 지냈다.

김수보(金壽甫)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이산진 병마첨절제사(理山鎭兵馬僉節制使) 등을 지냈다.

김세욱(金世郁)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부호군(副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김봉수(金鳳洙) 조선때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지냈다.

김필광(金弼光)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겸 경연참찬관(硬鉛參贊官)을 지냈다.

김창운(金昌運)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역임하였다.

김홍규(金鴻逵)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호조참판(戶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냈다.

김윤채(金允采)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지냈다.

김중운(金重運) 조선때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사근도 찰방(沙斤道察訪)을 지냈다.

김창우(金昌宇)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기희(金基禧) 조선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석창(金碩昌) 조선때 순충보절공신(純忠補節功臣)이 되고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한성부판윤(漢城府판윤)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部都摠管)을 지냈다.

김중만(金重萬) 조선(朝鮮) 때 자헌대부(資憲大夫)로 공조판서(工曹判書)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部都摠管)을 거쳐 충청도 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를 역임하였다.

김인서(金麟瑞) 조선때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러 충청도 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官)을 역임했다.

김종수(金宗洙) 조선때 무과에 급제, 해남 현령(海南縣令)을 지냈다.

김범행(金範行) 조선때 어모장군(禦侮將軍)․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

김주성(金柱晟)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

김종원(金宗源) 조선때 군위현감(軍威縣監)을 거쳐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냈으며,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주국(金柱國) 조선때 동지돈령부사(同知敦寧府事) 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내고,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종호(金宗浩) 조선때 무과(武科)에 급제,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다.

김응권(金應權) 조선때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냈다.

김의장(金義長) 조선때 무과(武科)에 급제, 주부(主簿)를 역임했다.

김영엽(金英燁) 조선때 수의부위(修義副尉)에 이르렀다.

김석중(金石重) 조선(朝鮮)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김신원(金信元) 조선때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다.

김종선(金宗善) 조선때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 란(金 鑾)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도손(金道遜) 조선때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역임하였다.

김양철(金陽哲) 조선때 명릉 참봉(明陵參奉)을 지냈다.

김만주(金萬柱) 조선(朝鮮) 때 상작원 별좌(尙作院別座)를 지냈다.

김한기(金漢器) 조선때 시정(시正)에 이르렀다.

김덕순(金德純) 조선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매선(金每善) 조선(朝鮮) 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역임했다.

김 동(金 洞) 조선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김천서(金天瑞) 조선(朝鮮) 때 명릉참봉(明陵參奉)을 역임했다.

김수복(金修福) 조선때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다.

김세우(金世祐) 조선때 참봉(參奉)을 지냈다.

김창일(金昌一)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했다.

김순봉(金舜鳳) 조선때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김취련(金取鍊) 조선(朝鮮)조에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했다.

김창우(金昌宇) 조선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경서(金慶瑞) 조선때 영릉참봉(明陵參奉)을 역임했다.

김희채(金禧采) 조선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언수(金彦粹) 조선(朝鮮) 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김일징(金馹徵) 조선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성일(金成鎰) 조선때 예성시 첨정(譽聲寺僉正)을 지냈다.

김계옥(金啓玉)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제학(提學)을 거쳐 호조 판서(戶曹判書)를 역임했다.

김 호(金 壕) 조선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양건(金陽健) 조선때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다.

김두열(金斗烈) 조선(朝鮮) 때 공조 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석두(金錫斗) 조선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이정(金以鼎) 조선조에 좌승지(좌承旨)를 역임했다.

김상림(金商林)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후철(金厚哲) 조선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했다.

김기행(金箕行) 조선때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냈다.

김노일(金魯逸) 조선(朝鮮) 때 부승지(副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재진(金載振) 조선때 도총관(都摠管)을 역임하였다.

김학금(金學금) 조선때 사재감직(司宰監直)을 지냈다.

김봉련(金鳳鍊) 조선때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김 경(金 鏡) 조선때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수운(金授運) 조선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주성(金柱成)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

김석룡(金錫龍) 조선때 좌승지(좌承旨)를 역임하였다.

김현조(金鉉祚) 조선때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를 역임하였다.

김종록(金宗祿) 조선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규환(金奎煥)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상규(金相奎) 조선때 직제학(直提學)을 역임하였다.

김익추(金益秋) 조선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이초(金履初) 조선(朝鮮)조에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김성필(金聖弼) 조선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준철(金俊哲)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도현(金道鉉) 조선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장순(金長淳) 조선(朝鮮) 때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김규현(金奎鉉) 조선때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하였다.

김치현(金致鉉) 조선때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역임하였다.

김석팔(金錫八) 조선때 장사랑(將仕郞)을 지냈다.

김치수(金致壽) 조선(朝鮮) 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택열(金澤烈) 조선때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하였다.

김정열(金整烈) 조선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채호(金采浩) 조선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병호(金秉浩) 조선(朝鮮)조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를 지냈다.

김병식(金秉植) 조선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정하(金鼎夏)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세영(金世榮) 조선때 부사과(副司果)를 역임하였다.

김화영(金華榮) 조선때 천안군수(天安郡守)를 지냈다.

김응열(金應烈) 조선(朝鮮)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영휘(金永徽) 조선때 교서관 교리(校書館校理)를 지냈다.

김영옥(金永玉) 조선때 좌찬성(左贊成)을 역임하였다.

김득수(金得洙) 조선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경해(金璟海) 조선조에 비서원 비서승(秘書院秘書丞)을 지냈다.

김창해(金昌海) 조선조에 혜민원 참서(惠民院參書)를 지냈다.

김갑현(金甲鉉) 조선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깁갑택(金甲澤) 조선(朝鮮) 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인일(金仁一) 조선 때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두일(金斗一) 조선때 호조참의(戶曹參議)를 역임했다.

김갑봉(金甲鳳) 조선조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진옥(金振玉)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진홍(金鎭弘) 조선때 충무위 부사과(忠武衛副司果)를 지냈다.

김인식(金璘植) 조선때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냈다.

김동구(金東九)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영구(金榮九) 조선(朝鮮)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익구(金益九)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인구(金寅九) 조선(朝鮮)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다.

김경구(金景九) 조선때 이조참의(吏曹參議)를 지냈다.

김문구(金文九) 조선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동근(金東根) 조선(朝鮮)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김윤규(金允珪) 조선때 절충장군(折衝長軍)을 지냈다.

김태민(金泰敏)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병순(金昞順) 조선조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규환(金奎煥) 조선때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다.

김병현(金昞鉉) 조선때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도정(都正)을 역임 했다.

김정삼(金鼎三)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長軍)을 지냈다.

김효징(金孝徵)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 우후(虞侯)를 지냈다.

김 철(金 哲) 1679(숙종 5) 정시문과(廷試文科)에 갑과(甲科)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을 지냈다.

김 정(金 珽) 1687(숙종 1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어모장군(禦侮將軍)․충좌위 부사과(忠佐衛副司果)를 지냈다.

김치용(金致龍) 1691(숙종 17)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김극겸(金克謙) 1694(숙종 20)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북청 도호부사(北靑都護府事)를 지냈다.

김홍적(金弘迪) 1711(숙종 37)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예조정랑(禮曺正郞)․나주 목사(羅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김기석(金箕錫) 1734(영조10) 정시문과(廷試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보덕)․사간(司諫)․지제교(地堤敎)등을 역임하였다.

김 주(金 霔) 1737(영조 1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좌승지(左承旨)에 이르렀다.

김익성(金益聲) 1762(영조 38) 정시문과(廷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전적(田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동연(金東淵) 자는 백우(伯愚), 1768(영조 44) 정시문과(廷試文科)에 급제, 사관(史官)을 거쳐 1774(영조 50) 장령(掌令), 1778(정조 2) 헌납(獻納)을 지내고, 북청부사(北靑府使)를 역임하였다.

김석룡(金錫龍) 1885(고종 22) 삼경정시문과(三慶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정언(正言)․지평(持平)을 거쳐 대제학(大提學)․우승지(右承旨) 등을 역임했다.

김덕명(金德明) 자는 준상(俊相), 호는 용계(龍溪). 동학군(東學軍)의 총령관(總領官)으로 의병(義兵)을 일으켰으며, 전봉준(全奉準), 손화중(孫和仲) 등과 함께 순절(殉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