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양주김씨시조(楊州金氏),김원보(金元寶),양주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8 11:17 수정일 : 2018-03-22 11:39

양주김씨(楊州金氏)의 연원

시조 휘원보공(始祖 諱元寶公)은 신라(新羅) 제56대 경순대왕(敬順大王) 제4자 대안군(大安君) 휘은열공(諱殷說公)의 9세손으로 그는 고려 고종조(高麗 高宗朝)에 중추원사를 거쳐 상서령을 역임, 양주백(楊州伯)으로 봉작(封爵) 경주김씨(慶州金氏)로부터 양주김씨(楊州金氏)로 득관(得貫)750여 성상연면(餘星霜連綿)하고 있다

양주는 경기도 중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고구려(高句麗)때는 매성 또는 창화라 하였고 신라(新羅)때에는 내소, 고려(高麗)초에 견주(見州)로 하다가 서기1018년에 양주(楊州)로 개칭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7세손 휘남걸 호부상서공(諱南傑戶部尙書公)께서 택거 황해도 서흥(瑞興)하다.후손들이 번연하며 산거우, 경기, 황해, 평남,평북,강원하고 이기후 세지창대하니 시위동방망족이라 밀직부사 휘지식공을 파조로 하는 평양파와 대호군 휘견(堅)공을 파조로하는 개천(价川)파로 주종(主宗)을 이루고 있다.

6세손 밀직부사 휘지식공(密直副使諱之植公) 후손들은 서흥, 신계, 곡산, 봉산, 황주, 안악, 평양(平壤), 대동(大同), 강서(江西), 강동(江東) 등지를 복거 지향으로 세거중이며 차자되신는 대호군휘견공(大護軍諱堅公)께서 자산(慈山)땅에 우거(寓居)하시고 공(公)의 5세손 사과(司果)벼슬을 지내신 휘진향공(諱進향公)께서 개천(价川)으로 이주(移住)정착하면서 개천(价川)), 순천(順川), 철산(鐵山), 정주(定州), 선천(宣川), 벽동(碧潼), 의주(義州)등지로 분파, 종지파손이 번창, 집성촌(集姓村)으로 세거(世居)중, 석학(碩學)이 속출(續出)하여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한 많은 후손(後孫)들이 국정(國政)에 등용되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명문화족(名門華族)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통계에 의하면 양주김씨는 전국에 3,88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 - 양주김씨조상인물

김경백(金敬伯) 고려(高麗) 때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역임하였다.

김성달(金成達) 고려 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하였다.

김가구(金可久) 고려에서 병부 상서(兵部尙書)․우문관 제학(右文館提學)에 올랐다.

김 심(金 深) 자(字)는 연보(淵甫). 보령 감무(保令監務)를 거쳐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김지식(金之植) 고려 때 밀직 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였다.

김남걸(金南傑) 고려 충렬왕조(忠烈王朝)에 군기감 판사(軍器監判事)․강원 감사(江原監司)․호부 상서(戶部尙書) 등을 거쳐 통헌대부(通憲大夫)에 이르렀으며, 노년에 서흥(瑞興)으로 낙향이거(樂鄕移居)하였다.

김사의(金思義) 고려 때 상호군(上護軍)을 역임하고, 1338년(충숙왕 복위 7)에 원나라 사신(使臣) 실리미(失里迷)를 영접(迎接)하여 양국간에 국리민복증진(國利民福增進)에 기여(寄與)하였다.

김 견(金 堅) 고려(高麗)에서 대호군(大護軍)을 지냈다.

김기종(金起宗) 고려조에 충무위 부사정(忠武衛副司正)․오위대호군(五衛大護軍)․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역임하였다.

김기형(金起刑) 고려 때 통직랑(通直郞)에 올랐다.

김기균(金起畇) 고려조(高麗朝동)에 감무(監務)를 지냈다.

김천손(金千孫) 조선에서 충무위 부사직(忠武衛副司直)을 역임하였다.

김세영(金世榮)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김윤송(金胤宋) 조선(朝鮮) 때 종사랑(從士郞)에 이르렀다.

김 선(金 銑) 조선조에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역임하였다.

김진상(金進恦) 자는 백단(白檀). 정략장군(政略將軍)으로 부사과(副司果)를 역임.

김인범(金仁範) 조선에서 부사직(副司直)을 역임하였다.

김의범(金義範) 조선때 봉직랑(奉直郞)에 이르렀다.

김충로(金忠老)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국로(金國老)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경로(金卿老)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세창(金世昌) 자는 국양(國詳). 훈련원 주부(訓鍊院主簿)를 지내고 분무원종이등공신(奮武原從二等功臣)이 되었다.

김귀흥(金貴興) 자(字)는 원백(元伯).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상흥(金尙興) 조선에서 분무원종이등공신(奮武原從二等功臣)에 올랐다.

김복흥(金復興) 조선조(朝鮮朝)에 충좌위 부장 (忠佐衛部將)을 지냈다.

김경표(金景杓) 자는 정부(定夫). 1620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고, 찰방(察訪)․진해 현감(鎭海縣監) 등을 지냈다.

김 춘(金 春) 조선 때 부장(部將)을 역임하였다.

김여과(金汝果) 자는 인숙(仁淑). 군자감 판관(軍資監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여준(金汝俊) 조선에서 부호군(部護軍)을 지냈다.

김 익(金 益) 자는 순필(舜弼). 조선 때 선략장군(宣略將軍)으로 부호군(部護軍)을 역임하였다.

김 직(金 稷) 조선(朝鮮) 때 찰방(察訪)을 지냈다.

김기태(金起兌) 조선조에 벽사 찰방(碧紗察訪)을 역임하였다.

김 수(金 琇) 조선 때 회령 교수(會寧敎授)를 지냈다.

김 박(金 璞) 조선 때 용양위 부호군(龍驤衛部護軍)을 지냈다.

김대립(金大金立) 조선조(朝鮮朝)에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역임하였다.

김계조(金繼祖) 조선에서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역임하였다.

김홍업(金弘業) 조선 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다.

김태남(金泰南) 조선(朝鮮) 때 사재감(司宰監)을 역임하였다.

김홍원(金弘原)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정영(金正韺) 조선조(朝鮮朝)에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정호(金正護) 조선 때 계공랑(啓功郞)에 이르렀다.

김대용(金大鏞) 조선 때 사재감정(司宰監正)을 역임하였다.

김진을(金珍乙) 조선(朝鮮)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종렬(金宗烈) 조선에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첨절제사(僉節制使)등을 지냈다.

김영역(金榮譯) 조선(朝鮮)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정만(金正萬) 조선 때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 영(金 盈) 조선조(朝鮮朝)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 하였다.

김철견(金鐵堅) 조선 때 중추부사(中樞副詞)를 역임하였다.

김모성(金模成) 조선조에 종사관(從事官)을 지냈다.

김덕기(金德器) 자는 국순(國旬).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部護軍)을 지냈다.

김덕렴(金德廉) 자(字)는 군성(君聖). 조선(朝鮮)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수정(金壽鼎)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9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처승(金處昇) 자(字)는 윤백(允伯).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였다.

김우정(金禹鼎) 조선에서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진망(金震望) 조선 때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득성(金得成) 1623년(인조 원년) 국정(國政)에 대한 상소문을 올려 의거인(義擧人)으로 많은 공헌(貢獻)을 하고 부사과(副司果)를 역임 하였다.

김운승(金運乘) 자(字)는 대용(大用). 1679년(숙종 5) 전시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監察部監察)․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역임하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운흥(金運興)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운항(金運恒)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처공(金處恭) 자(字)는 경백(敬伯). 1755년(영조 31)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를 거쳐 승정원 주서(承政院注書)를 역임하였다.

김종혁(金宗赫) 자(字)는 군심(君心). 1789년(정조 13) 전시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여 경안 찰방(慶安察訪)을 거쳐 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김내묵(金乃黙) 자(字)는 인향(寅鄕). 1789년(정조 13) 전시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여 영변어천도 찰방(寧邊魚川道察訪)․예조 정랑(禮曹正郞)을 지낸 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두형(金斗衡)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상건(金尙健) 조선에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部護軍)을 지냈다.

김성일(金成鎰)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성실(金成實)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선남(金善南) 조선 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김진원(金珍元)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김내현(金來顯) 1810 (순조10) ~ 1888 (고종 25)

자(字)는 치명(致明). 호(號)는 죽당(竹堂), 양주백(楊洲伯) 원보(元寶)의 21세손(世孫), 종하(宗河)의 아들. 1858년(철종 9) 전시문과(殿試文科)에 급제, 승문원 정자(承文院正字)․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예조 정랑(禮曹正郞) 등을 거쳐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봉상시 첨정(奉常寺僉正)․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통례원 좌통례(通禮院左通禮) 등을 역임하였다. 그후 외직으로 경안(慶安)․유곡 찰방(幽谷察訪)을 거쳐 덕천 군수(德川郡守)로 보임(補任) 되자 개천(价川) 출신으로 인접군(隣接郡)에서 정사(政事)에 공정을 기하기 어렵 다고 사양, 강직한 청백리(淸白吏) 였다.

김국현(金國顯) 자(字)는 선용(善用). 1858년 전시문과(殿試文科)에 급제하고, 보안 찰방(保安察訪)․예조 정랑(禮曹正郞)․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 등을 역임,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김두강(金斗綱)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덕만(金德萬) 조선(朝鮮)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상요(金相堯)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치을(金致乙)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치기(金致琦) 조선조(朝鮮朝) 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홍일(金弘一) 조선 때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역임하였다.

김창주(金昌疇) 조선(朝鮮) 때 양덕 현감(陽德縣監)을 지냈다.

김중상(金仲祥)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추증되었다.

김중정(金重鼎) 조선 때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김규헌(金奎憲) 자는 윤빈(允斌).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김규한(金奎翰) 자(字)는 순상(順湯).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김상함(金相錎) 자(字)는 흠무(欽武).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김용련(金鎔鍊) 자(字)는 중명(仲鳴). 1883년(고종 20)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시독관(試讀官)을 거쳐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장주(金葬冑) 조선조(朝鮮朝)에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천직(金千直) 조선 때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역임하였다.

김 현(金 鉉) 조선에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광일(金匡一) 조선(朝鮮)에서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김낙도(金樂道) 조선 때 훈도(訓導)를 지냈다.

김기관(金基觀) 조선 때 성균관 진사(成均館進士)를 역임하였다.

김교인(金敎鱗) 조선조에 장사랑(將使郞)에 이르렀다.

김석윤(金錫胤) 조선조(朝鮮朝)에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종혁(金宗爀) 조선 때 호군(護軍)을 지냈다.

김성련(金聖鍊) 1870 (고종 7) ~ 1942

자(字)는 중희(仲希), 호(號)는 강암(强菴), 내현(來顯)의 손자(孫子), 규헌(奎憲)의 아들. 독립운동가이자 한말(韓末)의 대학자(大學子)이다. 동문(同門)인 충제(充齊) 김두운(金斗運)․만취(晩翠) 김정업(金鼎業) 등과 함께 전답(田畓) 1만 5천여 평을 매각(賣却) 하여 의암선 생(毅菴先生)의 독립자금으로 제공했으며, 의암(毅菴)이 헤이그(海牙)에서 순국하자 동문인 충제(充齊)․만취(晩翠) 등과 같이 차량을 전세내어 고국(故國)으로 운반안장(運搬安葬) 했다. 또한 전통적인 유교사상(儒敎思想)과 충효전가(忠孝傳家)의 가풍(家風)을 계승시키기 위하여 향리(鄕里)에 별묘(別廟)를 세웠다.

김관성(金觀聲) 독립운동가. 1891년 평양(平壤)에서 출생. 1920년 만주(滿洲)에서 광복단(光復團)에 가입, 평안남북도(平安南北道)에 연락 망을 펴고, 1922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그후 통의부(統義府)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며, 교육기관과 청년회를 조직 산업진흥과 문화향상에 헌신하다 공산당원에게 암살당했다.

김상권(金相權) 조선 때 판사(判事)를 역임했다.

김한영(金漢永) 독립운동가. 최만혁(崔萬爀)․김 연(金 鍊) 등과 독립단을 조직하고 독립 군자금을 모금하여 만주 한인회(滿洲韓人會)에 송금하였고, 독립사상 계몽과 후진양성에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