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양산김씨시조(梁山金氏),김연(金衍),양산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7 21:40 수정일 : 2018-04-05 16:28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양산김씨(梁山金氏)의 시조(始祖) 김 연(金 衍)은 고려(高麗)에서 통사사인(通事舍人 : 합문의 정 7품 벼슬)을 지냈고, 그의 손자(孫子) 맹(猛)이 목종(穆宗 : 제 7대 왕, 재위기간 : 997~1009)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좌습유(左拾遺)를 거쳐 1020년 (현종 11)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 이부 시랑(吏部侍郞)․중추부사(中樞副使) 등을 지내고, 의춘현(宜春縣 : 양산의 옛 지명) 개국남(開國男)에 봉해진 후 중추원사(中樞院使)․태자소부(太子少부)․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고 크게 명성을 날렸으므로, 후손들이 김 연(金 衍)을 시조(始祖)로 하고 양산(梁山)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양산(梁山)은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동부(南東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신라(新羅) 때 삽량주(揷良州)라 하였다가 고려조(高麗朝)에서 양주(梁州나)로 고쳤으며,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지금의 양산(梁山)으로 개칭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을 살펴보면 맹(猛)의 아들 덕부(德符)가 덕종(德宗 : 고려 제 9대왕, 재위기간 : 1031~1034) 때 음보(蔭補)로 벼슬에 등용되어 1070년 (문종 24) 태자 빈객(太子賓客)을 거쳐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 : 중앙정치 기구인 상서도성의 정 2품 벼슬)에 이르렀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치현(致賢)이 1496년 (연산군 2)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냈으며, 진사(進士) 양(亮)의 아들 응인(應寅)은 명종(明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해남 현감(海南縣監)․문의군수(文義郡守)․능주목사(綾州牧使) 등 외관직을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와 예조 좌랑(禮曹左郞)을 역임하였다.

한편 습독관(習讀官) 응호(應虎)의 아들 경선(景善)은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지냈으며,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한 수남(秀南)과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안선(安善)이 뛰어났다.

그밖의 인물(人物)로는 호조 참의(戶曹參議) 의겸(義兼 : 호조 참판 경선의 맏아들)과 부총관(副摠管) 치련(致鍊)이 유명했으며, 중겸(中兼)과 희(禧)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여 공신(功臣)에 오른 호광(好光)․신광(伸光), 부호군(副護軍) 현추(縣秋) 첨절제사(僉節制使) 상추(尙秋), 사직(司直) 감(鑑), 의금부사(義禁府事) 기정(起鼎)등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결과에 의하면 양산김씨는 전국에 2,61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양산김씨조상인물

김 맹(金 猛) ? ~ 1030 (현종 21)

자는 정고(貞固), 시호는 문정(文定). 목종(穆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 좌습유(左拾遺)가 되고 현종이 즉위하자 중추 직학사(中樞直學士)가 되었다.

1020년 (현종 11)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 이부 시랑(吏部侍郞)․중추부사(中樞副事)를 역임, 왕의 측근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의춘현개국남(宜春縣開國男)에 봉해졌으며, 그 후 태자 소부(太子少溥)에 오르고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더해졌다.

문종때 태자 태사(太子太師)․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었다.

김덕부(金德符) ? ~ 1082 (문종 36)

맹(猛)의 아들. 덕종(德宗) 때 아버지의 공(功)으로 발탁되어 관직에 오르고, 1070년(문종 24) 태자 빈객(太子賓客), 1072년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등을 역임, 뒤에 수사공(守司空)․상서 좌복야(尙書左僕射)가 되었다.

김치현(金致賢) 계공랑(啓功郞)으로서 1496년(연산군 2) 문과(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를 지냈다.

김 양(金 亮) 자는 명중(明仲). 내자시 직장(內資寺直長)을 역임하였다.

김응인(金應寅) 자(字)는 인보(寅甫), 호(號)는 양진당(養眞堂). 1558년(명종 1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해남 현감(海南縣監)․문의 군수(文義郡守)․무안 현감(務安縣監)․능주 목사(綾州牧使) 등을 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응교(應敎)․예조 좌랑(禮曹左郞) 등을 역임하였다.

김응린(金應麟) 조선조(朝鮮朝)에 병마 우후(兵馬虞候)를 지냈다.

김경선(金景善) 자는 자면(子勉).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역임.

김수남(金秀男) 호는 후은(後隱).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을 지냈다.

김안선(金安善) 자는 자행(子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 (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의겸(金義兼) 자는 태현(泰鉉). 참의(參議)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