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밀양김씨시조(密陽金氏),김승조(金承祖),밀양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7 09:17 수정일 : 2018-03-02 11:47

시 조

밀양김씨(密陽金氏)의 시조(始祖)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3째 아들 경주군 김명종의 13세손 김승조(金承祖)이다.

고려조(高麗朝)에서 사직(司直)을 지냈으며, 1272년(원종 13) 명장(名將) 김방경(金方慶)의 막하장(幕下將)이 되어 삼별초(三別抄 : 고려 최씨 집권시대에 특수하게 조직된 군대)의 난(亂)을 평정하는 데 공(功)을 세우고 밀성(密城 : 밀양의 옛 지명) 군(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밀양(密陽)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


본관의 유래

밀양(密陽)은 삼한(三韓) 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駕洛國)에 속했으며, 신라(新羅) 법흥왕(法興王 : 제23대 왕, 재위기간 : 514~540)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推火)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밀성(密城)으로 하였다.


氏族史 槪要

고려(高麗) 때 와서는 995년(성종 16)에 밀주(密州)로 하였고, 공양왕(恭讓王 : 제34대 왕, 재위기간 : 1389~1392) 때 밀양(密陽)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빛낸 인물(人物)로는 시조(始祖)의 아들 혁(赫)이 문하부(門下府 : 중앙최고행정관청)의 정2품 관직인 찬성사(贊成事)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희천(禧天)은검열(檢閱)․판관(判官) 등을 거쳐 병부사(兵部事)에 올랐다.

조선(朝鮮) 태종(太宗) 때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밀양 부사(密陽府使)를 지낸 광석(廣碩)은 시랑(侍郞) 영추(英秋)의 둘째 아들로서 평안남도(平安南道) 순천(順川) 및 개천파(介川派)와 함경북도(咸鏡北道) 경원파(慶源派)의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그의 형 수서(秀瑞)는 승지(承旨)를 지냈다.

한편 1465년(세조 10) 문과(文科)에 급제한 문호(文虎)는 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역임했고, 그의 증손(曾孫) 광후(光厚)와 홍준(弘濬)이 뛰어났다.

1553년(명종 8) 문과(文科)에 급제한 광후(光厚)는 군자감정(軍資監正)을 거쳐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지냈고, 홍준(弘濬)은 이등공신(二等功臣)으로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역임한 후 충청남도(忠淸南道) 서산파(瑞山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그밖의 인물로는 인조(仁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을 거쳐 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을 지낸 홍발(弘發)과 진무일등공신(振武一等功臣) 경발(景發) 형제가 유명했으며, 선략장군(宣略將軍)과 옥과 현감(玉果縣監)을 역임한 수발(粹發)은 하동 현감(河東縣監) 상명(尙鳴), 통훈대부(通訓大夫) 시명(始鳴), 통정대부(通政大夫) 중명(重鳴) 등과 함께 이름을 날렸다.

양선(亮善)은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고 강직한 성품과 탁월한 학문(學問)으로 덕망이 높아 칭송을 받았으며, 경기도(京畿道) 고양파(高陽派)의 파조(派祖)가 되었다.

또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 덕령(德齡), 공조 참의(工曹參議) 수주(壽柱), 이조 참의(吏曹參議) 광호(匡昊), 개성부 경력(開城府經歷) 종환(宗瑍), 학자(學者) 상민(相敏) 등이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밀양김씨(密陽金氏)는 남한(南韓)에 9,20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밀양김씨조상인물

김혁(金 赫) 고려에서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했다.

김희천(金禧天) 호(號)는 수림(輸林). 병부사(兵部事)를 지냈다.

김항렬(金恒烈) 고려 때 규정(糾正)․감찰(監察) 등을 역임했다.

김영추(金英秋) 호(號)는 충목(忠穆). 공부 시랑(工部侍郞)을 지냈다.

김수서(金秀瑞) 호(號)는 송곡(松谷). 좌사간(左司諫)․승지(承旨) 등을 역임했다.

김광석(金廣碩) 1412 (태종 12) ~ ?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러 밀양 부사(密陽府使)을 역임했다.

김문호(金文虎) 호(號)는 문진(文進).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의주 부윤(義州府尹)을 지냈다.

김산보(金山寶) 조선(朝鮮) 때 어모장군(禦侮將軍)․통덕랑(通德郞) 등에 올랐다.

김윤신(金潤身) 자(字)는 중인(重寅), 호(號)는 우남(寓南), 장사랑(將士郞)에 올랐다.

김윤옥(金潤屋) 자(字)는 광석(廣碩). 부사(府使)를 지냈다.

김진(金 軫) 조선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장사랑(將士郞)에 이르렀다.

김세창(金世昌) 임진왜란 때의 절신(節臣)으로 공신(功臣)에 올랐고, 판관(判官)을 역임하였다.

김광후(金光厚) 호(號)는 월계(月溪).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러 군자감정(軍資監正)․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등을 역임했다.

김홍준(金弘濬) 1557 (명종 12) ~ ?

이등공신(二等功臣)에 오르고, 병조 판서(兵曹判書)를 지냈다.

김순연(金順連) 조선에서 현감(縣監)을 지냈다.

김순남(金順楠) 조선 때 참판(參判)을 역임.

김견(金 堅) 자(字)는 중실(仲實), 호(號)는 신재(愼齋).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을 도와 당항포해전(唐項浦海戰)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지냈다.

김상금(金相金) 자(字)는 상준(尙俊).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

김철(金 鐵) 자(字)는 숙연(淑延). 선전관(宣傳官)․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 등을 지냈다.

김곽(金 钁) 자(字)는 계실(季實), 호(號)는 선무(宣務). 어모장군(禦侮將軍)․시위부사(寺尉副司) 등을 지냈다.

김홍발(金弘發) 자(字) 백현(伯賢). 호(號)는 운계(雲溪),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훈련원 판관(訓鍊院判官)․군기시 첨정(軍器寺僉正) 등을 역임하였다.

김경발(金景發) 자(字)는 백용(伯庸), 호는 이암(怡菴). 이 괄(李 适)의 난을 진압한 공(功)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에 올랐고, 선전관(宣傳官)․사복시 내승(司僕寺內乘) 등을 지냈다.

김성발(金聲發) 조선 때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러 선전관(宣傳官)․주부(主簿) 등을 지내고 맹산 현감(孟山縣監)을 역임하였다.

김의발(金義發) 조선에서 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주부(主簿) 등을 지냈다.

김신발(金信發) 조선 때 선전관(宣傳官)을 역임.

김수발(金粹發) 호(號)는 물헌(勿軒). 부장(副將)․옥과 현감(玉果縣監) 등을 역임.

김태명(金泰鳴) 조선조에 선교랑(宣敎郞)에 올랐다.

김상명(金尙鳴) 조선 때 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하동 현감(河東縣監) 등을 역임.

김시명(金始鳴) 자(字)는 정이(正爾), 호(號)는 면헌(勉軒). 선략장군(宣略將軍)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수문장(守門將)․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 등을 지냈다.

김중명(金重鳴) 자(字)는 원지(遠之), 호(號)는 송정(松亭). 우후(虞侯)를 지냈다.

김양선(金亮善) 천성이 강직하고 학문이 탁월하며 덕망(德望)이 높아 당대의 칭송을 받았으며,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역임하였다.

김계득(金繼得) 조선 때 통덕랑(通德郞) 에 이르렀다.

김태일(金台一) 조선(朝鮮)에서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덕령(金德齡) 조선(朝鮮)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용양위 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역임하였다.

김수주(金壽柱)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공조 참의(工曹參議)등을 역임.

김수담(金壽聃) 자(字)는 영선(永善), 호(號)는 운담(雲潭).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수규(金壽奎) 자는 성로(星老), 호는 삼호(三湖).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김헌주(金憲柱) 조선 때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김상한(金相漢) 저선에서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이르렀다.

김광호(金匡昊) 조선 때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역임.

김덕운(金德韻) 자는 군익(君益), 호는 낙선(樂善). 한성부윤(漢城府尹)을 역임.

김종환(金宗瑍) 자는 서옥(緖玉), 호는 병암(棅巖). 1846년(헌종 12) 문과에 급제하고 정자(正字)․전적(典籍)․지평(持平)․이조 좌랑(吏曹佐郞) 등을 거쳐, 개성부 경력(開城府經歷)을 지냈다.

김사언(金思彦)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