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동래 김씨시조(東萊金氏),김흥도,동래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5 08:56 수정일 : 2018-04-24 11:02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동래 김씨(東萊金氏)는 조선조(朝鮮朝)에서 이조 참의(吏曹參議)를 지내고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나간 김흥도(金興濤)를 시조(始祖)로 한다.

그는 서기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함경남도 안변(安邊)으로 유배(流配)되었는데, 후손들이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시조(始祖)의 재임지(在任地)였던 동래(東萊)를 관향(貫鄕)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동래(東萊) 지금의 부산(釜山)과 양산(梁山)의 일부지역을 차지했던 행정구역으로 경상남도(慶尙南道) 남동단(南東端)에 위치하며, 삼국시대(三國時代) 이전부터 소국을 이러우 장산국(萇山國) 또는 내산국(萊山國 )이라 하다가 신라(新羅)가 점령하여 거칠산(居漆山)으로 개칭하고, 삼국통일 후에 동래(東萊)로 불렀다.

1922년도 안변(安邊)에서 발간(發刊)한 족보(族譜)에 신라(新羅) 경순왕(敬順王)의 후손(後孫)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중간 계대(系代)가 미상(未詳)이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선무랑(宣務郞 : 종6품 문관의 위계) 구(坵)와 선략장군(宣略將軍 : 종4품 무관의 품계) 응현(應鉉)이 뛰어났고,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 중추부에 소속된 정3품 담상관) 덕린(德麟)은 부호군(副護軍)을 역임한 아들 염(濂), 손자 세진(世珍)과 함께 명성을 떨쳤다.

그밖의 인물로는 효행(孝行)으로 이름난 언제(彦濟)와 절제사(節制使 : 정3품 무관직 벼슬)를 지낸 인성(仁性)이 가문을 빛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동래 김씨(東萊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298가구. 89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동래김씨조상인물

김 구(金 坵) 조선 때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김응현(金應鉉) 조선에서 선략장군(宣略將軍)에 이르렀다.

김덕린(金德麟) 조선(朝鮮) 때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김세진(金世珍) 조선조(朝鮮朝)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종후(金宗垕) 자(字)는 자후(子厚). 도위(都尉)를 역임했다.

김인성(金仁性) 조선 때 절제사(節制使)를 역임했다.

김수함(金守咸) 자(字)는 계광(季光), 호(號)는 용주(龍州). 정랑(正郞)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