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김화김씨시조(金化金氏),김경언(金景言),김화김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03-24 20:39 수정일 : 2018-04-14 12:17

시조 및 본관의 유래(始祖 本貫由來)

신라 왕실(新羅王室)의 후예로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 경순왕의 넷째 아들)의 현손(玄孫)인 김경언(金景言)을 시조(始祖)로 하는 김화김씨(金化金氏)는 영광 김씨(靈光金氏) 와 동원(同源)인 것으로 전한다.

시조 경언(景言)은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진 김렴(金 濂)의 둘째 아들로 고려(高麗) 때 시중시랑평장사(侍中侍郞平章事)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충장(忠壯)이란 시호(諡號)와 함께 김화군(金化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그를 시조(始祖)로 하고, 본관(本貫)을 김화(金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김화(金化)는 강원도 북부(北部)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구려(高句麗) 시대에는 부여(夫如)라 했고, 신라(新羅) 때 부평(富平)으로 불렀다가 1018년(고려 현종9)에 김화(金化)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 적인 인물(人物)을 살펴보면 경언(景言)의 두 아들중 장남 강(剛)이 고려 육부(六部)의 정3품 으뜸 벼슬인 상서(尙書)를 역 임했고, 손자(孫子) 동산(東山)은 좌복야(左僕射 : 상서도성에 속한 정2품벼슬)를 지냈다.

한편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태청 (太淸)은 좌복야(左僕射) 기흥(旡興)의 아들이며, 태청의 증손 제진(濟珍)이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올라 참찬(參贊) 형기(形氣 : 평장사 우보의 아들), 판서(判書) 단(鍛)과 함께 크게 명성을 떨쳤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판서(判書) 종신(宗信) 과 판윤(判尹) 인길(仁吉), 판관(判官) 진환(振煥), 군수(郡守) 향정(享鼎),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익서(익서)가 유명했다. 그외 부호군(副護軍) 국빈(國彬)과 중추부사 성추(聖樞)가 뛰어났고, 부호군(副護軍) 이겸(利謙)은 감찰(監察)을 지낸 순경(淳京)과 함께 가문을 대표했다.


인 구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김화 김씨(金化金氏)는 남한(南韓)에 총 1,612 가구, 4,7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인물(歷代人物)-김화김씨조상인물

김 강(金 剛) 고려조에 상서령(尙書令)을 역임하였다. 김동산(金東山)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김후기(金後騎) 고려(高麗)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김선기(金善騎) 고려에 서 좌시중(左侍中)을 지냈다.

김기흥(金旡興) 고려조에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다.

김태청(金太淸) 고려(高麗) 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김성요(金星要) 고려 때 상서(尙 書)를 역임했다.

김서심(金西心) 고려 때 감사(監司)를 지냈다.

김제광(金濟光) 고려에서 시랑(侍 郞)을 지냈다.

김천회(金天回) 고려에서 상서(尙書)를 지냈다.

김우보(金禹步) 고려(高麗) 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역임하였다.

김제진(金濟珍) 고려 때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올랐다.

김형기(金形氣) 고려 때 참찬(參贊)을 역임하였다.

김천중(金千重) 고려 때 시랑(侍郞)을 지냈다.

김처심(金處心) 고려에서 참찬(參贊)을 역임하였다.

김 로(金 輅) 고려조에 태사(太師)를 역임 하였다.

김 단(金 鍛) 고려 때 판서(判書)를 지냈다.

김 명(金 銘) 고려에서 참의(參議)를 역임하였다.

김종신(金宗信) 조선(朝鮮) 때 판서(判書)를 역임하였다.

김덕윤(金德潤) 조선 때 군수 (郡守)를 역임하였다.

김인길(金仁吉) 조선에서 판윤(判尹)을 지냈다.

김 질(金 質) 조선 때 효행이 뛰어나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 찬(金 贊) 조선에서 효행이 뛰어나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김대흥(金大興) 조선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김희일(金僖一)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랑(佐郞)을 지냈다.

김진환(金振煥) 조선에서 판관(判官)을 지냈다.

김영일(金寧一) 조선 때 어모장군(禦侮將軍)에 올랐다.

김재창(金載昌)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김형정(金亨鼎) 조선조(朝鮮朝)에서 군수(郡守)를 지냈다.

김영국(金英國) 조선 때 첨절제사(僉節制使) 를 역임하였다.

김성휘(金星輝)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해창(金海昌) 조선에서 부윤(府尹)을 역임하였다.

김정오(金鼎五) 조선 때 참의(參議)를 지냈다.

김세호(金世鎬) 조선에서 부윤(府尹)을 지냈다.

김익서(金益瑞) 조선 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김초벽(金楚碧) 자(字)는 군화(君華).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복삼(金福三)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김석진(金碩振)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이르렀다.

김대오(金大五) 자(字)는 대호(大浩).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이르렀다.

김인혁(金麟赫) 자는 옥첨(玉瞻).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김국빈(金國彬)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상형(金尙亨) 조선에서 정언(正言)을 지냈다.

김응추(金應秋) 조선 때 장악원정(掌樂院正)을 역임하였다.

김우희(金佑希) 조선 때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이르렀다.

김경량(金敬亮) 조선 때 중추부사(중추부사)를 역임하 였다.

김양수(金洋琇) 조선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올랐다.

김성추(金聖樞) 조선 때 중추부사(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김예남(金禮南) 조선 때 시정(侍正)을 지냈다.

김구정(金九鼎) 조선 때 오위부총관(五衛副摠管)을 역임하였다.

김봉저(金鳳著) 조선에서 시정(侍正)을 역임하였다.

김경주(金景冑) 조선 때 부사과(副司果)를 지냈다.

김이겸(金利謙) 조선 때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김순경(金淳京) 조선 때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