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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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7-11-09 14:23 수정일 : 2018-02-13 15:09

봉화금씨유래(奉化琴氏 由來)

봉화금씨(奉化琴氏)가 언제 득성(得姓)을 하고 득관(得貫)을 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사성(賜姓)인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신라말(新羅末)에 주농경형관어사(主農卿刑官御使)를 지낸 금용식(琴容式)께서 후삼국(後三國)의 쟁패(爭覇)가 치열해짐에 왕건 태조(王建 太祖)를 도와 삼한통합(三韓統合)에 공을 세웠다고 나온다. 그러니 신라 말에 이미 금씨(琴氏)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관향(貫鄕)은 처음에는 봉성(鳳城)으로 쓰다가 후에 봉화(奉化)로 고쳤는데 봉성(鳳城)은 봉화(奉化)의 고호(古號)다. 고려 초부터 봉성현(鳳城縣)이었다가 그 후 춘양현(春陽縣), 재산현(才山縣), 내성현(奈城縣),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바뀌어서 공양왕(恭讓王) 1년부터 봉화현(奉化縣)이되어 조선시대로 넘어와서 군(郡)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아 득관(得貫)은 고려 초로 추정된다. 지금도 봉성을 관(貫)으로 쓰고 있는 집도 있다. 또 시중의 어떤 책에는 관을 계양(桂陽)으로 쓰는 금씨(琴氏)가 있는 것처럼 나오는데 그 시조는 영렬공의 10세손 휘 진고(振古)로 현재는 봉화로 통합되어있다. 시조설(始祖說)에는 기자(箕子)가 중국에서 동래(東來)할 때 같이 온 금응(琴應)의 후손이라고 하기도 하고,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금뇌(琴牢)의 후손이란 설(說)도 있으나, 모두 근거가 있는 정설(定說)이 아니다.


봉화금씨시조와 중시조

시조(始祖) : 금용식(琴容式)

생몰연대(生沒年代)와 행장(行狀)이 전하지 않으나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에 주농경 형관어사(主農卿刑官御使)를 역임했다. 형관어사(刑官御使)는 조선시대의 직급으로는 형조판서(刑曹判書: 正2 品)에 해당된다. 후삼국(後三國)의 다툼이 치열할 때, 고려 태조 왕건(高麗太祖 王建)을 도와 삼한통합(三韓統合)에 공을 세워서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策錄)되고, 호부상서(戶部尙書: 正3 品)에 증직되었다가 그 뒤 문종 8년(1504), 삼한공신 3,200명에게 차례대로 직책을 추증(追贈)할 때 공에게는 태사(太師: 正1 品)를 증직(贈職)하였다. 그러나 후계세대(後系世代)가 정확하지 않아서 고려 태보(高麗 太保) 영렬공 금의(英烈公 琴儀)를 공의 6세손(世孫)이라고도 하고 8세손(世孫)이라는 설도 있어 중시조(中始祖)인 영렬공(英烈公)을 1세(世)로 정하고 후계(後系)의 세데 수(世代 數)를 셈한다.(參考文獻: 高麗史. 高麗崇義展史. 高麗史列傳: 社團法人 高麗崇義會編)

중시조 : 금의(琴儀)

시조(始祖) 태사공(始祖 太師公)으로부터의 세대수(世代數)가 불분명(不分明)하여 공(公)을 일세조(一世祖)로 모신다. 공(公)의 자(字)는 절지(節之)요, 초휘(初諱)는 극의(克儀)인데 후에 의(儀)로 고쳤다. 23세에 처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청도감무(淸道監務)가 되어 철상공(鐵相公)이란 말을 들었고, 32세에 대과(大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여 내시부(內侍府)에 적을 두어 계속 승진하여 쌍학사(雙學士)와 삼대부(三大夫)를 역임하고 고종 2년에는 상계(相階)에 올라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從1 品), 동 7년에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門下侍郞 :從1 品)과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 판리부사(判吏部事: 從1 品)에 승진된 뒤 퇴임(退任)코자 하니 왕은 벽상공신(壁上功臣: 正1 品)을 가자(加資)하여 치사(致仕)케 했다.

재임 중 일찌기 사마시(司馬試)와 대과(大科)를 여러 번 맡아, 뽑은 사람은 이규보(李奎報) 김인경(金仁鏡) 등 당대의 명사(名士)로서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말하는 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筍門生)은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향년 78세로 서거하시니 고종(高宗)은 김포의 봉황산(鳳凰山)에 예장(禮葬)을 명하고 시호(諡號)를 영렬(英烈)이라 했다.


현황(現況)

세거지(世居地)는 경상북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분포되어있다. 봉화, 안동, 영주, 영양, 문경 등지에서 세거(世居)해 왔고 그 외에는 충북의 옥천, 이원과 전남의 영암, 경남의 양산, 산청 등지에도 살고 있으나 이제는 많이 줄었는데 젊은이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에 더 많이 살고 있다. 인구는 정확히는 모르나 약 3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봉화금씨(奉化琴氏)의 족보(族譜)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목판각(木板刻)으로 처음 간행(刊行)되기는 1739년(己未)이지만, 그 서문(序文)을 보면 부포보(浮浦譜)가 있었다고 한다. 부포보는 도촌본(桃村本: 1659年刊)이라고 일컬어지는 필사본(筆寫本)의 서문에 부포(安東 禮安 浮浦)에 사는 경(憬),업(業),개(愷) 삼 형제가 보첩(譜牒)을 만들어 두었더니 그때 서천군 정곤수(西川君 鄭崑壽)가 명족의 세보(世譜)를 거두어 보는 벽(癖)이 있었는데 이분이 빌려가서 그가 죽자 찾지 못했다고 한다. 영주(榮州)에 사는 진사 휘 시해(進士 諱 是諧)가 경(憬)의 집에서 유고(遺稿)를 찾았으나, 그것이 60년 전의 것이어서 1년 간 수정(修正)을 거쳐 완결된 것이 효종10년 기해년(己亥:1659)이다. 그러니 봉화 금씨의 최초 족보는 그 61년 전의 1598년보다 훨씬 앞서 간행되어,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성화보(成化譜)에는 못 미칠지는 모르지만 문화 유씨(文化 柳氏)의 가정보(嘉靖譜) 보다는 앞선다. 우리 족보의 간행연대는 다음과 같다.

필사본(筆寫本) : 부포보(浮浦譜)-1598년 이전으로 추정(失傳)

인쇄본(印刷本)

도촌본(桃村本)-1659년(失傳)

기미보(己未譜)1739년. 을축보(乙丑譜)1805년

계축보(癸丑譜)1853년. 축기보(己丑譜)-1889년

정축보(丁丑譜)1939년. 계해보(癸亥譜)-1983년

봉화금씨(奉化琴氏)의 특성(特性)

봉화금씨는 천년(千年) 고족(古族)이다. 오랜 연원(淵源)을 가진 성씨(姓氏)이지만 그다지 번창(繁昌)하지 못했다. 신라말(新羅末)에 주농경 형관어사(主農卿刑官御使)를 지

내고 고려의 건국을 도와 태사(太師)에 증직(贈職)된 시조 휘 용식(始祖 諱 容式)이래 중시조 영렬공 휘 의(中始祖 諱 儀)가 고려중엽의 명신(名臣)으로 고려사 열전(高麗史 列傳)에 올라 있지만 그 뒤에는 크게 현달(顯達)한 인물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깨끗한 품격(品格))을 지켜 시속(時俗)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사람이 행해야할 도리를 다하며 정연(整然)한 전통(傳統)을 지켜왔다.

대체로 우리 조상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지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벼슬을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 많은 분이 과거(科擧)를 통해 벼슬길에 나아갔으나 오래 머무르지 아니하고 곧 낙향(落鄕)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덕을 쌓아 여생을 보낸 분이 많고, 둘째로 아예 과거를 단념하고 은거(隱居)하여 세상을 등지고 성리학(性理學)을 연구하고 천리(踐履)에 힘쓰며 학문의 길을 걸어 퇴계급문록(退溪及門錄)에서 단일본(單一本)으로는 봉화금씨(奉化琴氏)가 가장 많으며, 그것을 가업(家業)으로 삼아서, 효자(孝子)로 칭송(稱頌)받는 분이 많고,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敦篤)히 해 왔다. 셋째로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危機)에 처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서 구국(救國)에 앞장섰던 분도 또한 많다. 임진왜란 때는 각처에서 창의(倡義)하여 큰공을 세운 원종공신(原從功臣)과 무명의 의사(義士)도 많고, 그 외 내란(內亂)에도 의병을 일으켜 평정(平定)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의병장이 있고, 병자호란(丙子胡亂)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임을 알고도 적진(敵陣)에 나아가 목숨을 바친 분이 있는가하면 일제(日帝)의 침략에도 의병대장(義兵大將)과 무명(無名)의 의병(義兵)으로 나서서 적과 싸우다가 희생된 분이 많은 것은 우리 금씨의 특성이라 하겠다.

우리 선조들은 전승(傳承)된 가훈(家訓)에 따라 항상 겸손(謙遜)을 지켜 이름 알리기를 지극히 삼갔고 청빈(淸貧)을 누려 왔기 때문에 아직도 한문(寒門)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효제신양(孝悌信讓)이라는 전승가법(傳承家法)을 지켜 어른을 공경하고 가문(家門)의 화합을 도모하며 신의(信義)를 지키고 항상 겸손(謙遜)함은 오늘날에도 일상생활의 지침(指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봉화금씨는 전국에 23,301명이 살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역대주요인물(歷代主要人物)-봉화금씨조상

신라시대(新羅時代)

금용식(琴容式) 봉화금씨(奉化琴氏)의 시조(始祖).

신라말 주농경형관어사(主農卿刑官御使)

고려시대(高麗時代)

금용식(琴容式) 봉화금씨의 시조. 신라말 주농경형관어사. 삼한쟁패시(三韓爭覇時) 왕건 태조를 도와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策錄)되고 태사(太師)에 증직(贈職)됨.

금 의(琴 儀)(1153~1230). 자(字): 절지(節之). 초휘(初諱): 극의(克儀). 시호(諡號): 영렬 (英烈). 봉화금씨의 중시조(中始祖). 32세에 대과(大科)에 장원 급제(壯元及第)하여 내시부 (內侍府)에 적을 두고 순탄하게 승진하여 쌍학사(雙學士)와 삼대부(三大夫)를 겸하고 동지공거(同知貢擧)로 대과(大科)를 여러 번 맡아 당대(當代)의 명사(名士)를 많이 뽑으니 그들이 한림별곡(翰林別曲)에 나오는 금학사(琴學士)의 옥순문생(玉筍門生)이다. 고종 2년에 상계(相階)에 올라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좌복야(左僕射), 보문각 대학사(寶文閣 大學士), 수국사(修國史)를 역임하고 4년에는 수태위(守太尉),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 平章事), 5년에는 수문전 태학사(修文殿 太學士), 7년에는 수태보(守太保), 문하시랑(門下侍郞)과 판리부사(判吏部事)가 되어 인년 퇴임(引年退任)코자 하니 벽상공신(壁上功臣: 正一品)을 가자(加資)했고 78세로 돌아가시니 왕은 김포에 예장(禮葬)을 명하고, 영렬(英烈)이란 시호(諡號)를 내렸다.

금 휘(琴 暉)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폐위된 희종(熙宗)을 복위시키려 했다는 최충헌(崔冲獻)의 모함을 받아 대장군(大將軍) 김희제(金希磾), 노지정(盧之正)과 더불어 충헌의 아들 우(瑀)에 의해 교동도(喬桐島) 해중(海中)에서 침살(沈殺) 당했다.

금응륜(琴應倫) 교위대장군(校尉大將軍: 從三品)

금 훈(琴 薰) 문과(文科). 공부시랑(工部侍郞).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 1267년 삼별초난(三別抄亂)에 제주도에 초유사(招諭使)로 갔다가 원(元)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왔음.

금윤의(琴允義) 통직랑(通直郞), 좌우랑장(左右郞將).

금우공(琴遇工) 중현대부(中顯大夫), 내부사 영윤(內部司令尹), 정용랑장(精勇郞將).

금용화(琴用和) 창신교위(彰信校尉). 비순위령 중랑장(備巡衛領 中郞將).

금이화(琴以和) 통덕랑(通德郞). 통례문 지후(通禮門 祗侯).

금 척(琴 滌) 통훈대부(通訓大夫). 장사현감(長沙縣監)

금 숙(琴 淑) 경상도제찰사(慶尙道提察使)

금극해(琴克諧) 문과(文科). 담양군사(潭陽郡事). 정포은 문인(鄭圃隱 門人).

금극화(琴克和) 옥과 현령(玉科縣令) 창효자(彰孝子)

조선시대(朝鮮時代)

금 휘(琴 徽)(1435~1494). 호 문곡(文谷). 소시(少時)에 태학유학(太學遊學). 문무과(文武科) 합격. 군신간 증답시(君臣間 贈答詩)가 있음. 경산, 영천, 동래 현령, 사온서령(司醞署 令). 충청도 양전도경차(量田都敬差)로 공주(公州)에 출장 중 졸(卒). 문계서원(文溪書院)에 배향. 불천위 봉사(不遷位 奉祀).

금 계(琴 啓) (1439~1497). 음보 통훈대부(蔭補 通訓大夫). 군위현감(軍威縣監). 효행(孝行). 청렴강직(淸廉剛直)

금 곤(琴 崑)( ? ). 세종 32년에 문과(文科). 감찰(監察).

금 숭(琴 嵩)( ? ). 세종 29년에 생원(生員), 동 32년에 문과(文科)에 급제. 관직은 현감을 거쳐 대사간(大司諫)에 이름.

금 유(琴 柔)( ? ).태조(太祖) 5년 문과(文科)에 급제.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을 거쳐 대구부사(大邱府使), 전라감사(全羅監司)를 역임.

금계근(琴繼根)( ? ).원종공신(原從功臣).조봉대부(朝奉大夫).상의원별좌(尙衣院別坐).

금원정(琴元貞)(1472~1557). 호 농수(聾叟). 진사(進士).영해훈도(寧海訓導). 현량천(賢良薦). 기묘사화(己卯士禍)이후 둔세(遯世). 필법(筆法)으로 유명. 문계서원(文溪書院) 배향(配享).

금원복(琴元福)(1480~1563). 음보 통정대부(蔭補 通政大夫). 면천군수(沔川郡守). 육읍역임, 유치적(六邑歷任, 有治蹟)

금원수(琴元壽)(1485~1570). 음보 충순위(蔭補 忠順衛). 충무위 부사직(忠武衛 副司直). 사도시 첨정(司導寺 僉正).

금 간(琴 衎)(1439~1503). 생원(生員). 통훈대부 성주판관(通訓大夫 星州判官).

금맹함(琴孟諴)( ? ). 조산대부(朝散大夫). 전연사 직장(典涓司 直長).

금치함(琴致咸)(1454~?). 무과(武科). 청도, 영천, 거제 현령(淸道, 永川, 巨濟縣令).

금치소(琴致韶)(1460~1568). 정략장군(定略將軍). 중추부 첨지(中樞府 僉知).

금애동(琴愛仝)( ? ). 과의교위(果毅校尉)

금이영(琴以詠)(1447~?). 친시 문과(親試 文科). 한림원 선입(翰林院 選入). 규장각 대교(奎藏閣 待敎). 승문원 교리(承文院 校理). 원종공신(原從功臣).

금이간(琴以簡)( ? ). 선무랑(宣務郞). 전성서 영(典性署 令).

금세정(琴世貞)( ? ). 병절교위(秉節校尉).충좌위부사직(忠佐衛副司直).

금 식(琴 軾)( ? ). 무과(武科). 포이포 만호(包伊浦 萬戶).

금 축(琴 軸)(1496~1562). 호 남계(南溪). 진사(進士)에 급제 후 관직에 불부(不赴). 문계서원 배향(文溪書院 配享).

금응석(琴應石)(1508~1583). 호 종선(種善). 종부시 주부(宗簿寺 主簿). 흉년(凶年)에 기민 구휼(飢民救恤). 퇴계선생이 종선정(種善亭)이란 정호(亭號)를 수서(手書)해 주었다.

금응하(琴應夏)(1520~1607).무과(武科). 무안, 장기현감(務安, 長鬐 縣監). 토적 포획공(土賊 捕獲功)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름.

금응기(琴應期)(1546~1622). 병절교위(秉節校尉). 충순위(忠順衛).

금응시(琴應時)(1550~1625). 절충장군(折衝將軍).

금 인(琴 軔)(1510~1593). 호 송계 또는 송암(號 松溪, 松巖). 진사시(進士試)에서 장원(壯元), 성균관(成均館)에 유학. 향리에서 후학지도에 전념.

금 보(琴 輔)(1521~1585). 호 매헌(梅軒). 생원(生員). 퇴계 문인(退溪門人). 학덕겸비, 서도대가(書道大家). 저서 다수(著書多數).

금 은(琴 隱)(1533~?). 호 고암(高巖). 퇴계문인. 효우돈독(孝友敦篤).임란군공(壬亂軍功)으로 증 통훈대부 공조참의(贈通訓大夫 工曹叅議).

금치담(琴致湛)(1461~1524).생원(生員).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도시 첨정(司導寺 僉正).

금희연(琴希連)(1486~1575).충순위 상호군(忠順衛 上護軍)

금 헌(琴 憲)(1493~1577).부사용(副司勇). 첨지중추(僉知中樞).

금유현(琴有絃)( ? ). 삼사 승지(三司 承旨)

금 로(琴 輅)( ? ).어모장군(禦侮將軍). 충좌위 부사직(忠佐衛 副司直).

금앙성(琴仰聖)(1524~1604). 호군(護軍)

금문순(琴文筍)( ? ). 병절교위(秉節校尉).

금제순(琴悌筍)(1545~1611).호 적암(赤巖). 퇴계문인(退溪門人). 충신독경(忠信篤敬)을 근본(根本)으로 하는 학계일편(學戒一篇) 저술(著述).

금봉서(琴鳳瑞)(1538~1605).호 여강(廬江). 진사(進士). 퇴계문인(退溪門人). 효성지극. 저서 망천시편(著書 輞川詩篇).

금봉시(琴鳳時)(1564~1654).진사(進士). 학자(學者). 수작 호군(壽爵 護軍).

금숙생(琴淑生)( ? ). 임란 원종공신(壬亂 原從功臣).

금숙기(琴淑己)( ? ). 현감(縣監). 임란 원종공신(壬亂 原從功臣).

금복고(琴復古)(1549~1632).호 송음(松陰) 생원(生員). 임란 원종공신(壬亂原從功臣). 증호군(贈護軍)

금윤고(琴胤古)(1558~1641).호 송파(松坡). 조산대부 예빈시 판관(朝散大夫 禮賓寺 判官). 중훈대부 수 군자감 정(中訓大夫 守軍資監 正). 임란중(壬亂中) 기민구휼(飢民救恤)

금학고(琴學古)(1564~1627).계공랑(啓功郞). 제용감 정(濟用監 正)

금 오(琴 梧)(1486~1574).호 죽창(竹牕). 생원(生員). 북문사화(北門士禍)로 봉화 북지(奉化 北枝)에 은둔(隱遯). 효행지극 설화(孝行至極 說話)가 많음.

금 의(琴 椅)(1489~1552).호 해촌(海村) 문과(文科). 한림원 선입(翰林院 選入). 봉시교관(奉侍敎官). 통훈대부 청송부사(通訓大夫 靑松府使). 부모봉양(父母奉養)을 위해 외직(外職)을 자원하여 오읍 역임(五邑歷任). 사관(史官) 때는 사화(士禍)를 당하여도 직필(直筆)을 굽히지 않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 때는 주례요초 일질(周禮要抄 一帙)을 초(抄)하여 왕의 을람(乙覽)에 진상(進上)했다.

금 력(琴 櫟)(1501~1569).통덕랑. 군자감 주부(軍資監 主簿)

금난수(琴蘭秀)(1530~1605).호 성성재(惺惺齋). 생원(生員). 통훈대부(通訓大夫) 봉화현감(奉化縣監). 임란(壬亂) 때에 예안 수성장(禮安 守城將)이 되어 명군(明軍)의 군량미(軍糧米) 조달(造達). 임란원종공신(壬亂原從功臣). 증좌승지(贈左承旨). 퇴계선생(退溪先生)의 선진고제(先進高弟)로 성리학(性理學) 연구와 천리(踐履)에 독실한 학자로 불천위 봉사(不遷位 奉祀)를 받는 학자임.

금순보(琴舜譜)( ? ).선교랑(宣敎郞). 내자시 주부(內資寺 主簿).

금응신(琴應信)( ? ).호 덕운재(德雲齋). 시호 문절(諡號 文節). 조중봉(趙重峰) 선생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다가, 임란 때 선생을 따라 의거(義擧)하여 청주(淸州)에서 대첩(大捷)을 거두어 선략장군(宣略將軍) 훈련원 봉사(訓鍊院 奉事)를 제수하고 금산전투(錦山戰鬪)에서 순국(殉國)하여 초혼반장(招魂返葬)하니 나라에서는 자헌대부 병조판서(資憲大夫 兵曹判書)를 증직하고 시호(諡號)를 내렸다.

금응준(琴應俊)( ? ). 선교랑(宣敎郞). 군자감 판관(軍資監 判官).

금윤선(琴胤先)(1544~1627).임란(壬亂) 때에 창의(倡義)하여 부산(釜山)에서 대첩(大捷). 원종공신 2등훈(原從功臣 2等勳). 훈련원 정(訓鍊院 正) 제수(除授). 임계일기(壬癸日記)가 있음.

금현룡(琴見龍)(1566~1643).판사(判事).

금익룡(琴翼龍)(1585~1652).조산대부(朝散大夫). 예빈시 부정(禮賓寺 副正).

금득룡(琴得龍)(1570~1601).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 정(軍資監 正)

금한룡(琴漢龍)( ? ) 병자호란(丙子胡亂:1636) 때 3형제가 부모 상중에 출병(出兵)하였는데 공(公)이 조정(朝廷)에서 지명한 부장(部將)이 되어 경기도 광주의 쌍령진(雙嶺陣)에 나아가 적진(敵陣)에서 순국(殉國). 증 훈련원 도정(贈訓鍊院都正).

금해룡(琴海龍)( ? ) 중씨(仲氏) 한룡(漢龍)과 함께 병자호란 때 쌍령진에 나아가 싸우다가 계씨(季氏)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중형과 함께 순국(殉國). 증 군기시 첨정(贈軍器寺 僉正)

금영주(琴英奏)( ? ). 훈도(訓導). 임란 때 창의(倡義).

금시수(琴是修)(1592~1659).무과(武科). 우후(虞侯)

금시조(琴是調)(1584~1658).호 신암(新巖). 문과(文科). 4읍 수령(四邑守令) 역임. 통훈대부(通訓大夫), 봉상시 첨정(奉常寺 僉正)과 춘추관 기주관(春秋館 記註官)을 겸임.

금시해(琴是諧)(1587~1668). 호 아양헌(峨洋軒). 생원(生員). 통승정(統勝亭)을 짓고 은거 수양(隱居 修養). 효우돈독(孝友敦篤).

금시양(琴是養)(1598~1664). 호 삼기당(三棄堂). 진사(進士). 병자호란(丙子胡亂) 후 벼슬을 버리고 은거(隱居)한 숭정처사(崇楨處士). 조정에서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증직(贈職)하고 정려(旌閭)를 명(命)함.

금시평(琴是平)(1588~?). 중훈대부(中訓大夫), 군자감 첨정(軍資監 僉正).

금응협(琴應夾)(1526~1597).호 일휴당(日休堂). 생원(生員). 익위사 익찬(翊衛司 翊贊). 하양현감(河陽縣監). 퇴계선생(退溪)의 문인(門人), 오천칠군자 (烏川七君子)의 한 분임.

금응훈(琴應壎)(1540~1617). 호 면진재(勉進齋). 생원(生員). 조산대부 제천현감(朝散大夫 提川縣監). 임란 원종공신(原從功臣). 퇴계문인(退溪門人)이며 10년 간 도산장석(陶山丈席)으로 후진을 양성. 오천 칠군자(烏川七君子)의 한 분. 낙천서원(洛川書院)에 배향.

금 결(琴 潔)(1544~1616). 호 이요당(二樂堂). 무과(武科). 조산대부 선전관(朝散大夫 宣傳官). 임란 창의(壬亂倡義)

금 염(琴 濂)( ? ). 예빈시 부정(禮賓寺 副正).

금 경(琴 憬)(1553~1634). 호 월담(月潭). 생원(生員). 임란에 창의하여 향병(鄕兵)의 군량(軍糧)을 조달하고 경주의진(慶州義陣)에까지 보급. 사섬시 봉사(司瞻寺 奉事).

금 업(琴 業)(1557~1638). 호 만수재(晩修齋). 문과(文科). 사간원 사간(司諫院 司諫). 사헌부 집의(司憲府 執義). 지제교 승지(知製校 承旨). 창원부사(昌原 府使).

금 개(琴 愷)(1562~1630). 호 망월헌(望月軒). 문과(文科). 헌납(獻納). 지제교(知製校) 통정대부(通政大夫), 여주목사(驪州牧使). 청백리(淸白吏).

금 념(琴 恬)(1602~1662). 통예원 인의(通禮院 引義).

금몽상(琴夢祥)(1564~1643). 사재감 정(司宰監 正)

금상현(琴尙絃)(1587~1663). 호 반천(磻川). 문과(文科). 이조정랑(吏曹正郞). 통훈대부(通訓大夫).

금 준(琴 峻)(1595~1658). 무과(武科).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 진해현감(鎭海縣監) 겸 안동진관 병마절제사(安東鎭管 兵馬節制使).

금 헌(琴 巘)(1600~1660). 절충장군(折衝將軍).

금홍달(琴弘達)(1633~1705). 호 애일당(愛日堂). 효성이 지극하여 사림(士林)의 포상(褒賞)으로 효자각(孝子閣)을 세움.

금충달(琴忠達)(1594~1649). 호 사계(泗溪). 문과(文科). 전라 도사(全羅都事).

금학달(琴學達)(1634~1706). 무과(武科). 철산부사(鐵山府使).

금서규(琴瑞奎)(1632~1708). 형제가 함께 문과 합격. 백씨를 엄부와 같이 받들고 계씨의 성취를 도움.

금성규(琴聖奎)(1636~1701). 호 이안당(易安堂). 문과 장원(壯元). 통훈대부(通訓大夫). 성균관 사예(成均館 司藝). 칭 당세명필(稱 當世名筆).

금 할(琴 硈)(1563~1630). 사도시 주부(司導寺 主簿). 첨지중추(僉知中樞).

금 발(琴 撥)(1573~1643). 호 수정재(守靜齋). 일찍 과거 단념(科擧斷念), 극수가업(克守家業). 병자호란(丙子胡亂) 숭정처사(崇楨處士).

금덕음(琴德音)(1611~1692).호 송헌(松軒).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僉知中樞).

금성휘(琴聖徽)(1622~1683). 호 낙포(洛浦). 진사. 행의 문장(行儀文章) 저명

금진강(琴振綱)(1635~1696). 사재감 주부(司宰監 主簿)

금계원(琴繼源)(1645~1693). 무과(武科). 부사과(副司果)

금 경(琴 絅)(1648~1721). 무과(武科). 선전관(宣傳官)

금 옥(琴 鈺)(1678~1734). 통덕랑(通德郞). 1727년 무신란(戊申亂)에 향병(鄕兵)의 의병장(義兵將)으로 출전.

금 채(琴 綵)(1654~1724). 무과(武科). 통훈대부(通訓大夫) 홍원현감(洪原縣監).

금재청(琴再淸)(1630~1682). 호 성당(省堂). 문과(文科). 성현 찰방(省峴察訪). 효도와 우애가 지극.

금재정(琴再正)(1634~1695). 통덕랑(通德郞). 군자감 정(軍資監 正).

금안조(琴顔操)(1653~1737).호 송촌(松村). 서화가(書畵家).

금봉의(琴鳳儀)(1668~1698).호 수경재(水鏡齋). 송우암 문인(宋尤菴 門人).

금봉세(琴鳳世)(1628~1707).호 호예(湖藝). 용양위 호군(龍驤衛護軍).

금봉덕(琴鳳德)( ? ).성균관 진사(成均館 進士)

금 계(琴 桂)(1704~1789).절충장군(折衝將軍).

금이순(琴以純)(1664~1775).자헌대부(資憲大夫). 동지중추(同知中樞).

금우현(琴友絃)(1674~1755).통덕랑(通德郞). 호군(護軍).

금익현(琴益絃)(1678~1741).통덕랑(通德郞). 부사직(副司直).

금애현(琴愛絃)(1696~1757).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同知中樞).

금수천(琴壽天)(1664~1745).호 백인당(百忍堂). 문사필법(文詞筆法) 유명. 효우극진(孝友極盡).

금 섬(琴 暹)(1659~1696).문과(文科). 정자(正字).

금옥심(琴沃心)(1693~1739).호 송간(松澗). 문과 장원(文科 壯元). 벼슬을 버리고 부모 봉양.

금시황(琴時璜)(1721~1806).절충장군(折衝將軍).

금덕화(琴德華)( ? ).문과(文科). 통훈대부. 언양현감(彦陽縣監).

금진호(琴震豪)(1741~1822).훈련원 판관(訓鍊院 判官).

금종구(琴宗九)(1743~1825).효자(孝子). 효행설화(孝行說話)가 많음.

금복원(琴福源)( ? ).절충장군(折衝將軍)

금운협(琴韻協)( ? ).호군(護軍)

금사하(琴師夏)(1676~?).통덕랑. 효행포상(孝行褒賞). 의호총 설화(義虎塚 說話).

금사주(琴師周)( ? ). 통덕랑(通德郞). 백씨와 함께 효행포상 급복(孝行褒賞 給復).

금종윤(琴宗潤)(1738~1821).호 창택(蒼澤). 대유시명(大有詩名).

금기상(琴麒祥)( ? ).군자감 정(軍資監 正). 진위원종공신(振威原從功臣).

금철주(琴哲柱)( ? ).병절교위(秉節校尉). 훈련원 판관(訓鍊院 判官)

금우순(琴友舜)( ? ).선무랑(宣務郞). 군자감 주부(軍資監 主簿).

금경현(琴景見)(1665~?).무과(武科). 감찰(監察).

금진성(琴振成)(1723~1786).병절교위(秉節校尉).

금시술(琴詩述)(1783~1852).호 매촌(梅村). 문과장원(文科壯元). 정언(正言). 문사(文詞)로 유명.

금이선(琴以宣)( ? ).선무랑(宣務郞).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금석조(琴錫祚)(1855~1936).비서감승(秘書監 丞).

금경렬(琴暻烈)(1862~1934).감역(監役).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금사열(琴思烈)(1862~1927).통훈대부(通訓大夫).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

금우열(琴佑烈)(1844~1925).증광 진사(增廣進士).통정대부(通政大夫).첨지중추(僉知中樞).

금기일(琴基一)(1836~1896) 호 초은(樵隱). 효성지극. 경서능통(經書能通).

금익소(琴翼霄)(1878~1941).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

금호충(琴鎬忠)(1847~1929).의금부 도사(義禁府 都事).

금지수(琴志洙)(1858~1937).종사랑(從仕郞).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금현수(琴賢洙)(1846~1922).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금복연(琴福淵)(1887~ ?).한성부 주사(漢城府 主事).

금소수(琴韶洙)(1836~1911).비서감승(秘書監 丞)

금상기(琴相基)(1881~1955).호 석호(石湖). 관찰부 주사(觀察府 主事). 서도가(書道家).

금석주(琴錫柱)(1857~1921).호 운초(雲樵). 의병대장(義兵大將).

금달연(琴達淵)(1875~1914). 의병대장(義兵大將). 헌병대와 경찰지서 등을 습격하여 많은 전과를 올리고 체포되어 옥사(獄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