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능성구씨(綾城具氏) ,능성구씨시조(始祖),구존유,능성구씨본관,능성구씨조상

작성일 : 2017-11-09 14:36 수정일 : 2018-01-08 14:06

능성구씨(綾城具氏) 연원

능성구씨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 이전의 구씨(具氏)를 찾아보면 고려(高麗) 태조(太祖) 원년(918)에 궁예(弓裔)의 태봉국(泰封國)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나주도대행대시중(羅州道大行臺侍中)에 임명되었고, 후백제(後百濟)의 장군 구도(具道)와 그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었으며, 고려 숙종(肅宗) 6(1101)에 탐라(耽羅=지금의 제주) 성주(星主) 배융부위(陪戎副尉)인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록 전고(典考)가 없어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와 이들과의 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구씨(具氏)가 당시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姓氏)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성씨 (姓氏)로 기록하고 있다.

능성구씨(綾城具氏)는 구존유(具存裕)를 시조(始祖)로 하며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하였던 7()의 인물들을 파조(派祖)로 하여 판사파(判事派)⋅전서파(典書派-无后)⋅시랑파(侍郞派)⋅좌정승파(左政丞派)⋅판안동파(判安東派)⋅도원수파(都元帥派)⋅재신파(宰臣派-在北)⋅낭장파(郎將派)⋅감무파(監務派)⋅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无后)⋅참판파(叅判派)⋅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12개 파()로 분파(分派)하였다. 이 중에서 이북지방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고는 하나 남북 분단으로 인하여 전고(典考)를 알 수 없는 재신파(宰臣派)와 후손이 없어 무후(无后)된 전서파(典書派)와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 3개 파()를 제외한 9개 파()의 후손들이 실존하여 번영하고 있다.

2001년에 능성구씨사적비(綾城具氏事蹟碑)를 시조(始祖) 단역(壇域)에 건립하였다. 글은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회장인 구자경(具滋暻)이 짓고 글씨는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수석부회장인 구왕회(具旺會)가 썼다.

능성구씨본관(本貫) 연혁(沿革), 능성구씨조상

능성(綾城)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綾州)의 옛 지명으로 백제(百濟) 때 이릉부리군(尒陵夫里郡)ㆍ죽수부리(竹樹夫里)ㆍ 인부리(仁夫里) 등으로 불리어지다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때 능성(綾城)이라 개칭되었으며, 고려(高麗) 초 나주(羅州)에 소속시켰다가 고려() 인종(仁宗) 21(1143)에 현령(縣令)을 두었고, 조선(朝鮮) 인조(仁祖) 10(1632)에 인헌왕후(仁獻王后=원종의 비)의 관향(貫鄕)이라고 하여 능주(綾州)로 승격시켜 목사(牧使)를 두었으며, 1913년에 능주군이 화순군에 편입되었다.

능성구씨시조(始祖) - 구존유(具存裕)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는 구존유(具存裕)이다. 그는 고려(高麗) 문괴(文魁=문과 장원)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에 올랐다. 그의 배위(配位)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이며, 장인(丈人)은 송()나라 사람인 청계(淸溪) 주잠(朱潛)이다.

()나라가 몽고(蒙古, 뒤에 원나라가 됨)에게 패망하자 주잠(朱潛)은 고려(高麗) 고종(高宗) 11(1224)에 엽공제(葉公濟)⋅진조순(陳祖舜) 7학사(學士)와 함께 금성(錦城=지금의 나주)으로 망명해 왔으며 원()나라가 이들 망명객을 추적하자 이름을 적덕(積德)이라 고치고 능주(綾州=綾城) 고정리(考亭里)에 숨어 살았다.

구존유(具存裕)는 주잠(朱潛, 호는 淸溪)의 딸과 혼인(婚姻)하여 능성구씨(綾城具氏) 번성(蕃盛)의 기틀을 세웠다. 주자학으로 유명한 회암(晦庵) 주자(朱子=朱熹)는 그의 처고조(妻高祖)가 된다.

능성구씨(綾城具氏)의 시조(始祖)인 구존유(具存裕)의 묘소(墓所)에 대하여 전남 화순군 춘양면 천태산(天台山) 좌측 풍취라대형(風吹羅帶形)이라는 기록은 있으나 실전(失傳)하여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설단(設壇)하고 1979년에 단비(壇碑)를 세웠는데 24대손 구행서(具行書)가 비문(碑文)을 짓고 25대손 구회승(具會升)이 글씨를 썼다. 그 후 1999년에 알기 쉽게 번역한 단비(壇碑)를 위엄을 갖추어 개수(改竪)하였으니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綾城具氏大宗會) 회장인 26대손 구자경(具滋暻)이 개수기문(改竪記文)을 짓고 27대손 구본혁(具本赫)이 글씨를 썼다.

2- 구민첨(具民瞻)

2世 구민첨(具民瞻)은 시조(始祖) 구존유(具存裕)의 아들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주(全州) 고을의 사록참군(司錄叅軍) 겸 장서기(掌書記)를 거쳐 정2품인 동평장사(同平章事)에 올랐다. 배위(配位)는 면천복씨(沔川卜氏)이며, 장인(丈人)은 고려(高麗) 봉정대부(奉正大夫) 복윤량(卜允亮)이고 고려(高麗) 개국공신(開國功臣) 무공공(武恭公) 복지겸(卜智謙)의 후손이다.

구민첨(具民瞻)의 묘소(墓所)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 자좌(子坐)에 배위(配位)와 함께 상하봉(上下封)으로 모셔져 있다. 묘표(墓表)11대손 구봉령(具鳳齡)이 짓고 중건묘표(重建墓表)는 영상(領相) 조현명(趙顯命)이 지었으며 18대손 구택규(具宅奎)가 쓴 것을 2001년에 알기 쉽게 번역한 개수비(改竪碑)를 묘소 입구에 세웠으니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 회장인 25대손 구자경(具滋暻)이 개수기문(改竪記文)을 짓고 능성구씨부산광역시종회 회장인 25대손 구자호(具滋毫)가 글씨를 썼다.

3- 구연(具珚)

3世 구연(具珚)2世 구민첨(具民瞻)의 아들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안동면도감판관(安東面都監判官)을 지냈으며 일곱째 아들인 구예(具藝)의 귀현(貴顯)으로 문하좌정승면성부원군(門下左政丞沔城府院君)을 추증(追贈)받았다. 배위(配位)는 면천한씨(沔川韓氏)이며, 장인(丈人)은 고려(高麗)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한자희(韓子禧)이다.

구연(具珚)의 묘소(墓所)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신좌(申坐)에 배위(配位)와 함께 상하봉(上下封)으로 모셔져 있다. 묘표(墓表)는 부제학(副提學) 이종우(李鍾愚)가 짓고 중건묘표(重建墓表)는 판서(判書) 박규수(朴珪壽)가 지었으며 대사헌(大司憲) 이원명(李源命)이 글씨를 썼다. 1949년에 묘비(墓碑)를 다시 세웠는데 22대손 구행서(具行書)가 묘표추기문(墓表追記文)을 지었다. 그 후 2001년에 알기 쉽게 번역한 묘비(墓碑)를 개수하였으니 LG그룹 명예회장이며 능성구씨대종회 회장인 24대손 구자경(具滋暻)이 개수기문(改竪記文)을 짓고 능성구씨서울특별시종회 회장인 24대손 구자남(具滋南)이 글씨를 썼다.

4- 구의(具宜)

4世 구의(具宜)3世 구연(具珚)의 장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고려(高麗) 충렬왕(忠烈王) 22(1296)에 경주판관(慶州判官)을 거쳐 이듬해인 1297년에 시랑(侍郞)을 역임하고 삼사소윤(三司少尹)을 지냈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충남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에 설단(設壇)하였다.

5- 구해(具㧡)

5世 구해(具㧡)4世 구의(具宜)의 차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좌우위총제(左右衛摠制)를 지냈고 중현대부(中顯大夫)로 감문위상호군(監門衛上護軍)을 역임하였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충남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에 설단(設壇)하였다.

6- 구서진(具瑞珍)

6世 구서진(具瑞珍)5世 구해(具㧡)의 장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영주부사(知寧州府事)를 지냈고 경주판관(慶州判官)을 역임하였다. 장남인 구현좌(具賢佐)는 판사파(判事派) 파조(派祖)이고, 차남인 구현로(具賢老)는 전서파(典書派) 파조(派祖)이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충남 당진군 정미면 봉생리에 설단(設壇)하였다.

4- 구이(具怡)

4世 구이(具怡)3世 구연(具珚)의 다섯째 아들로서 고려(高麗) 때 정헌대부(正憲大夫)로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지냈다.

4- 구천용(具天容)

4世 구천용(具天容)3世 구연(具珚)의 여섯째 아들로서 고려(高麗) 때 직장(直長)을 지냈다. 배위(配位)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며, 장인(丈人)은 고려(高麗) 판도판서(版圖判書) 채기인(蔡器仁)이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설단(設壇)하였다.

5- 구식(具軾)

5世 구식(具軾)4世 구천용(具天容)의 장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찬성사(贊成事)를 지냈다. 배위(配位)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이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설단(設壇)하였다.

6- 구록(具祿)

6世 구록(具祿)5世 구식(具軾)의 차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무과에 급제하여 군사(郡事)를 지냈다. 배위(配位)는 경주김씨(慶州金氏)이며, 장인(丈人)은 김인(金仁)이다. 장남인 구영량(具英良)은 시랑파(侍郞派) 파조(派祖)이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전남 화순군 한천면 정리에 설단(設壇)하였다.

4- 구예(具藝)

4世 구예(具藝)3世 구연(具珚)의 일곱째 아들로서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4(1317)에 구재삭시(九齋朔試)에 장원 급제하여 관직이 중대광판전의시사(重大匡判典儀寺事)에 이르렀으며 면주(沔州)를 사향(賜鄕) 받고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에 봉군(封君)되었다. 배위(配位)는 아주신씨(鵝洲申氏)이며, 장인(丈人)은 고려(高麗) 도염서령(都染署令) 신진승(申晉升)이다. 구예(具藝)가 별세(別世)하자 배위(配位) 아주신씨(鵝洲申氏)는 그의 묘소(墓所) 국내에 암자(庵子, 신암사)를 짓고 인도(印度)에서 불상(佛像)을 모셔와 남편을 위한 극락왕생(極樂往生)의 기도를 올렸다. 지금도 신암사(申菴寺)에는 구예(具藝)와 배위(配位) 아주신씨(鵝洲申氏)의 위패(位牌)가 봉안(奉安)되어 있으며, 인도에서 모셔온 불상(당진신암사금동불좌상)1989년에 보물(寶物) 987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묘소(墓所)는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 자좌(子坐)에 배위(配位)와 함께 상하봉(上下封)으로 모셔져 있다.

5- 구영검(具榮儉)

5世 구영검(具榮儉)4世 구예(具藝)의 장남으로서 초휘(初諱)는 구정(具貞)이다.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중대광전리판서(重大匡典理判書)에 올랐고 선충익찬공신(宣忠翊贊功臣)으로 녹훈(錄勳)되었으며 면성군(沔城君)에 봉군(封君)되었다. 배위(配位)는 죽산안씨(竹山安氏)와 경주김씨(慶州金氏)이며, 장인(丈人)은 정당문학(政堂文學) 안규(安珪)와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 김자장(金子章)이다. 묘소(墓所)는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봉래리 계좌(癸坐)에 모셔졌으나 남북 분단으로 첨소봉영(瞻掃封塋) 할 수 없어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에 모셔진 4世 구예(具藝)의 묘소(墓所) 아래에 망제단(望祭壇)을 세웠다.

6- 구위(具褘)

6世 구위(具褘)5世 구영검(具榮儉)의 장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소부윤(少府尹)을 지냈고 장자인 구홍(具鴻)의 귀현으로 삼중대광문하좌정승(三重大匡門下左政丞)과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지이조사(知吏曹事)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과 문정(文貞)의 시호(諡號)를 추증(追贈)받았다. 배위(配位)는 경주박씨(慶州朴氏)이며, 장인(丈人)은 고려(高麗) 보문각태학사문하시랑평장사(寶文閣太學士門下侍郞平章事) 문정공(文貞公) 박세태(朴世泰)이다. 구위(具褘)는 슬하에 아들 5형제와 딸 9자매를 두었다. 장남인 구홍(具鴻)은 좌정승파(左政丞派) 파조(派祖)이고, 차남인 구성량(具成亮)은 판안동파(判安東派) 파조(派祖)이고, 3남인 구성로(具成老)는 도원수파(都元帥派) 파조(派祖)이고, 4남인 구성우(具成祐)는 형조판서(刑曹判書)와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를 역임하였는데 무후(无后) 되었고, 5남인 구성덕(具成德)은 재신파(宰臣派 - 在北) 파조(派祖)이다. 묘소(墓所)는 경기도 개풍군 남면 율응리 인좌(寅坐)에 모셔졌으나 남북 분단으로 첨소봉영(瞻掃封塋) 할 수 없어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에 모셔진 4世 구예(具藝)의 묘소(墓所) 아래에 망제단(望祭壇)을 세웠다.

6- 구흥(具興)

6世 구흥(具興)5世 구영검(具榮儉)의 차남으로서 고려(高麗) 때 문과에 급제하여 판예의시사(判禮儀寺事) 상호군(上護軍)을 지냈고 중대광문하찬성사(重大匡門下贊成事)를 증직(贈職) 받았다. 배위(配位)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구흥(具興)은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니 장남인 구현보(具賢輔)는 낭장파(郎將派) 파조(派祖)이고, 차남인 구현기(具賢器)는 감무파(監務派) 파조(派祖)이고, 3남인 구충로(具忠老)는 임천군사파(林川郡事派) 파조(派祖)이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하여 충남 서천군 비인면 구복리에 설단(設壇)하였다.

6- 구의(具義)

6世 구의(具義)5世 구영검(具榮儉)의 넷째 아들로서 고려(高麗) 때 상정의대부(上正議大夫)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냈다. 배위(配位)는 함열남궁씨(咸悅南宮氏)이며, 장인(丈人)은 경산부사(京山府使) 남궁찬(南宮贊)이다. 구의(具義)는 슬하에 3남매를 두었으니 장남인 구성미(具成美)는 참판파(叅判派) 파조(派祖)이고, 차남인 구원립(具爰立)은 문천군사파(文川郡事派) 파조(派祖)이다. 묘소(墓所)는 전북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 자좌(子坐)에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