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유래

성씨의 유래

가평간씨시조(加平簡氏),간균(簡筠),가평간씨조상인물

작성일 : 2017-11-09 17:35 수정일 : 2018-04-06 12:41

시조 및 본관의 유래

가평간씨(加平簡氏)는 문헌(文獻)에 중국(中國) 범양(范陽) 간 백(簡伯)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상계(上系)를 정확하게 고증(考證)할 문헌이 없어 연원(淵源)을 알 수 없다.

간씨(簡氏)의 본관(本貫)은「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가평(加平)을 비록하여 남양(南陽)․서산(書算)․경주(慶州)․인동(忍冬) 등 9본(本)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가평(加平)을 제외한 관향(貫鄕)은 미상(未詳)이다.

가평(嘉平)은 경기도 중동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고구려(高句麗)때 근평군이었으나,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때 부근의 조종현(朝宗縣)과 합하여 가평(加平)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高麗) 때는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에 속하였다.

1507년(중종 2) 이 곳에 중종(中宗)의 태(胎)를 묻은 연유로 군(郡)으로 승격하였고, 1895년(고종 32) 다시 경기도로 이속되면서 한성부(漢城府)에 속하기도 하였다.

「가평간씨세보(加平簡氏世譜)」에 의하면 시조 간균(簡筠)은 1164년(고려 의종 18)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역임하고, 1189년(명종19) 벼슬에서 물러나 경기도 풍덕 백후동(豊德栢後洞)으로 낙향(樂鄕)하여 시문(詩文)을 벗삼아 저서(著書)로 일생(一生)을 마쳤다고 한다.

그후 그의 손자(孫子)인 주(株)가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지내며 나라에 공을 세워 가평군(加平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관향(貫鄕)을 가평(加平)으로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인물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고려(高麗) 때 군기감사(軍器監事)를 지낸 유(有)를 비록하여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만호(萬戶)을 지낸 홍(弘:호은 금헌)과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통명(通明)이 유명했고,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는 세종(世宗) 때 통덕랑(通德郞)에 오른 사열(思裂)․공열(恭悅), 통정대부(通政大夫) 충국(忠國),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충기(蟲氣),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기린(麒麟) 등이 뛰어났다.


인 구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에 의하면, 가평간씨는 전국에 총 2,39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역대인물(歷代人物)-가평간씨조상인물

간유(簡 有) 고려조(高麗朝)에 군기감사(軍器監事)를 지냈다.

간홍(簡 弘) 호(號)는 금헌(錦軒). 고려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만호(萬戶)를 지냈다.

간주(簡 株) 고려(高麗) 때 민부 전서(民部典書)를 역임하였다.

간통명(簡通明) 호(號)는 운봉(雲峰). 고려 때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간사열(簡思悅) 조선 세종(世宗) 때 통덕랑(通德郞)에 올랐다.

간경열(簡敬悅) 조선(朝鮮) 때 사직서 도제조(社稷署都提調)를 지냈다.

간공열(簡恭悅) 자(字)는 순창(脣瘡).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간충국(簡忠國) 조선조(朝鮮朝)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간충기(簡忠起)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했다.

간은지(簡殷智) 조선에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간기린(簡奇麟) 자(字)는 치상(致祥). 조선조(朝鮮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간운지(簡雲地) 자(字)는 군경(窘境). 조선 때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간유경(簡惟敬) 자(字)는 성춘(聖春).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간세형(簡世亨) 자(字)는 치백(致伯). 조선에서 통덕랑(通德郞)에 이르렀다.

간세흥(簡世興) 조선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주부(主簿)를 지냈다.

간세웅(簡世雄) 조선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간능언(簡能彦) 조선(朝鮮) 때 부승지(副承旨)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