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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김씨 시조 김덕지
울산김씨 조회수:222 124.53.120.38
2019-06-20 17:22:43

- 현행 : 울산김씨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의 별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935년 10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천년사직을 양위하려 하자 형인 일(마의태자)과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과 함께 개골산에 들어갔다.~~

- 변경 : 울산김씨 시조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의 별자이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935년 10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천년사직을 양위하려 하자 형인 태자와 함께 이를 극력 반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처자를 버리고 형과 함께 개골산에 들어갔다.~~

※ 참고

1. 신라왕 김부는 두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첫째왕자인 태자를 후대에 마의(麻衣)를 입고 살았다 하여 '마의 태자'(麻衣 太子)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름은 역사서에 전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2. 조선조 말(1784년) 경순왕 4자 《김은열 묘지문》이  개성 어느 산기슭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여기에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 후 고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왕씨를 후배로 맞이하여 8자를 낳았는데, 1자가 일(鎰)이라 합니다.

[▶8자 : 일(鎰), 굉(鍠), 명(鳴), 은열(殷說), 중석(重錫), 건(鍵), 선(鐥), 종(鐘)]

3. 그러나  《김은열 묘지문》에 나오는 아들들의 이름은 『고려사』 등의 문헌(文獻)은 물론이고, 그 어떤 금석문(金石文) 자료에도 찾아볼 수가 없으며, 또 묘지명 형태도 배위(配位) 관계 및 생애 등도 누락되어 있고 단지 형제 서차만 기술되어 있을 뿐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4.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러한 묘지명에 대해 사료(史料) 및 자료로서의 신빙성(信憑性)에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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